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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다훈 Jun 13. 2023

개인주의 집단

 사회가 불편하다. 이전부터 불편충이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로 모든 것에 대해서 어떻게든 불편을 토로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었다. 한 번씩 넷상에서 마주치면 눈이 찌푸려질 정도로 비방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 사람들의 특징은 자신이 알고 있는 선에서 벗어난 방향의 의견이 눈에 띄는 순간 출발선에서 튀어나가는 육상선수마냥 키보드 위를 질주한다. 이들에게 짜증이 날 만한 점은 타인의 주관이나 의견을 존중하지 않으면서 자신이 매너를 지키는 사회적인 사람인 척하는 것이 굉장히 이기적이라 대화가 통하지 않으며 수용의 자세는 없고 또다시 반박할 준비만 한다.


 이런 사람들이 늘어나는 이유는 과거에 비해 소통의 방식이 바뀌었기 때문이 아닐까. 서로 마주친 채 의견을 주고받는 티키타카가 되던 시절에서 이제는 넷상에서 자신의 말을 먼저 늘여놓고 좋아요로 공감을 더 많이 받는 사람의 의견에 힘이 실리는 전형적인 '목소리 큰 놈이 이기는 곳'이 되어버렸다. 사회적으로 눈치 보며 타인의 성향을 생각해 신중히 대화하는 바깥세상과 다르게 타인의 눈치 보지 않고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늘여놓는 곳에서 존중과 배려가 있길 바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세상 사람들이 이상하다. 남일에 공감할 생각은 하나도 없는데 모든 일을 신경 쓰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해석한다. 이것은 각박해진 사회에 타인에 대한 관심을 줄이고 자신을 위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 결국엔 태생적으로 사회적 동물인 자신을 감추지 못하고 표출을 이런 식으로 하는 것은 아닐까. 슬픈 세상이다. 당장 집 문을 나서 넘어지면 코 닿는 거리에 사는 이웃의 목소리와 얼굴조차 제대로 모르는 세상이다. 예전에는 앞집, 옆집에 사는 사람들과 함께 밥을 먹고 놀러 가는 것이 당연했을 정도로 사람과 사람 간의 유대가 쉬웠고 깊었다. 이제 이웃주민과 다정하게 인사하며 동 나이대의 자녀들이 친하게 지내는 것은 만화에서나 볼 수 있는 일이다.


 사회가 병들었다. 더 이상 공동체라는 의미를 찾아볼 수 없는 사회다. 자기 의견에 동조하는 사람끼리 편을 갈라 싸우는 것이 취미가 되어버렸다. 경쟁의식을 강조하고 강조하다 결국 사소한 의견까지도 경쟁을 붙인다. 민트초코가 누구는 좋아하고 누구는 싫어하는 호불호가 갈리는 맛이지 먹는 사람이 이상하다거나 안 먹는 사람이 맛도 모르는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을 이유가 없지 않은가. 나는 민트초코를 먹어-하는 반응에 '너는 민트초코 좋아하는구나, 내 취향은 아니야'가 아니라 '나는 그런 거 안 먹어'가 당연한 세상이다. '정'따위는 사라져 버린 지 오래다. 최근 논란이 된 전통과자 사건만 봐도 그렇다.


 올바르게 굴러갈 수 있는 곳이 있을까. 모두가 바라는 방향이 다르고 생각이 다르면 조율이 필요하며 자신의 의견을 굽힐 줄 알아야 하는 것이 민주주의적 결정방식이 아니었나. 언젠가부터 다수결을 이용한 독재가 이어지고 다수를 위한 소수의 희생이 당연시되었으며 자신의 의견이 채택되지 않으면 다른 의견을 비방하기만 한다. 단순히 게임에서만 보아도 자신이 팀의 주축이 되지 않는다면 흥미를 잃어 타인을 헐뜯고 마음에 들지 않아 흔히 말하는 트롤링을 하는 사람이 많다. 어쩌다 정보다 화가 많은 사회가 된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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