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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다훈 Jun 23. 2023

불편러들

일전에 '개인주의 집단'이란 글에서 잠깐 '불편충'이란 단어를 다뤘다. 오늘은 그에 대해 좀 더 세부적인 얘기를 해볼까 한다. 사람들은 각자의 주관적인 시선과 생각으로 평가를 한다. SNS는 이를 혼자 표현해 내기에 적합한 공간이다. 각종 SNS에서 자신이 소비한 콘텐츠에 대해 평가하는 글과 사진이 여럿 올라오는 것은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자신의 주관을 뚜렷하게 펼쳐내주는 것은 결국엔 모두가 콘텐츠에 대한 정보 습득이 늘어나는 것이며 과하지 않은 선에서 모두가 서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하나 이와 동시에 자신과 맞지 않는 의견에 대한 과도한 비판이 나타났다. 소위 '불편러들'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타인의 의견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심지어는 자신의 의견조차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들은 자신들이 만들어낸 분탕질이 얼마나 효과 있는지와 타인의 의견이 무시당하는 것을 즐기는 것이다. 이들에게 진실은 중요하지 않다. 인터넷 세상에서 과도한 루머가 생겨나는 이유는 가십거리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익명성이라는 훌륭한 방패를 쥐어주었기에 자연스레 더욱더 자극적인 내용을 만들어내기 마련이다. 위에서 말했듯 이들에게 진실은 중요하지 않다.


 아이러니하게도 불편러가 생겨난 이유는 잘못된 루머들에 반발하기 위해서였다. 안타까운 사건들을 만들어낸 수많은 악플들과 허황된 루머들이 난무하면서 사람들은 '이런 식으로 말하면 안 돼! 저런 사람은 무조건 나쁜 거야!' 하면서 진실을 알아야 할 사건 속의 내용보다 어떤 사건인지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조금이라도 불편해 보이는 글에는 무조건 적인 공격이 이어졌다. 이들의 입장은 나쁜 사람들을 없애기 위해 우리가 감내한다-같은 느낌이겠지만 또 다른 악인이 생겨난 것이다. 취지가 좋으나 뭐든 과하면 화가 되는 법이다. 이들이 바라던 깨끗한 인터넷 문화가 무엇인지 모르겠으나 이제는 이들이 없는 것이 더욱 깨끗해 보인다. '미투'사건이나 그 외의 여러 루머들에서 거짓이었다는 것이 밝혀지자 '기어 중립'이라는 말이 생겨나면서 진실이 정확하게 드러날 때까지는 비판이나 보호를 하지 않겠다는 모습이 생겨났다. 그러자 불편러들과 이들 간의 싸움이 시작됐다. SNS를 보다 안 좋은 내용에 대한 기사하나가 나오면 그 속에서 수많은 비판과 중립 간의 대립이 생겨나고 그 틈에서 불편러들이 양쪽을 박쥐처럼 부추기는 형상이다.


 그렇다면 인터넷의 익명성을 없앤다면 이런 일이 없지 않을까-? 하는 내용도 이제는 의미가 없다. 한 때는 무수히 늘어난 악플로 인한 사건들로 인해 '익명성'에 대한 논제가 화두가 되었으나 이제는 인터넷 문화자체의 문제가 되었다. 기본적으로 '악플'의 정의는 애매하다. 자유로운 소통의 창구인 만큼 위에서 말했던 주관적 시선과 생각으로 인한 평가는 인정되어야 하는 것이나 그 선이 어느 정도인지 일일이 정확하게 표시할 수 없는 노릇이다. 그 상황 속에서 자신의 의견과 좀 맞지 않는다 싶으면 단순한 질문을 남기더라도 졸지에 '어 이 사람 내 의견에 반박을 하네? 불편러인가?'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고운 시선으로 바라볼 수 없는 문화가 자리 잡은 지금 익명성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사람들이 갈수록 인터넷 문화에서 흘러가는 말에 지나친 예민한 반응을 한다. 예전에 비해 검열되어야 할 것,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이나 말이 늘어간다. 이를 풍자하기 위해 미래의 모습을 개그로 만드는 한 유튜버들은 이런 불편러들 때문에 갓 데뷔한 아이돌 그룹이 모두 금방 탈퇴를 해야 할 정도로 심각해진 모습을 보여준다. 솔직히 몇몇 커뮤니티에서 쓰는 행동들이 모두 규제를 받아야 하는 것은 터무니없는 일이다. 그냥 일상에서 서로 아무 문제 없이 주고받던 얘기나 행동이 갑자기 그런 몇몇의 사람들이 악용하는 것 때문에 제지를 받는 것이 맞을까. 예를 들면 한때 인터넷 문화의 안 좋은 점의 정점이었던 '일베'라는 사이트에서 '노'라는 단어를 비하발언으로 쓰는 것이 화제가 되었다. 필자는 경상도 사람인데 갑자기 자연스레 붙여 쓰던 말이 비하발언이 되어 쓰면 안 되는 말이 되었다. 얼마나 어이가 없나. 평범하게 쓰던 단어가 갑자기 몇몇 사람들 때문에 쓰면 안 된다니. 완전히 주객전도가 아닌가.


 불편러들이 생겨나는 이유는 간단하다. 이들에게 진실이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자신들의 입장에서 나쁜 행동이 아니어야 하는 것이며 자신의 의견과 대립되면 안 되는 것이다. 5살 배기 어린아이 마냥 때를 쓰는 거랑 똑같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단순한 떼쟁이가 아니라 논쟁으로 만드는 것은 인터넷 문화다. 우리는 이런 상황을 타파하기 위해서는 이 인터넷 문화자체를 재정립해야 한다는 말도 안 되는 일이 필요하다.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우리가 이런 보기 싫은 사람들을 안 보기 위해서는 유명한 옛 속담을 따라야 한다. '똥이 더러워서 피하지 무서워서 피하나' 말 그대로 더러우니까 우리가 피하자. 그리고 보다 수용하는 자세를 가질 수 있어야 한다. 서로 간에 대화에서 예의가 있어야 한다. 한 때 그렇게 외치면 '네티켓'은 이제는 단어를 찾아보기 조차 어렵다. 우리의 과제는 이런 불편러를 없애는 것보다는 네티켓을 지키는 사람을 늘려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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