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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다훈 Jun 27. 2023

4분의 해외여행

노래로 꺼내든 마음속의 행복

 살면서 두 번의 해외여행을 다녀왔다. 첫 번째는 어릴 적 10살경에 다녀온 동남아. 워낙 어릴 적이지만 아버지와 함께 갔다 온 여행으로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그때의 나를 위해 아버지가 얼마나 힘드셨을지도 공감이 되어 감사한 기분이 든다. 그때의 여행은 패키지여행이라 가이드의 안내를 따라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등의 나라를 구경했었는데 뭐랄까, 여러 곳의 아름다운 경치와 맛있는 음식을 먹긴 했지만 여행이라기보다는 시간에 맞춰 미션을 하나하나 해 나간 기분이었다. 물론 그 미션 속에서 얻어내는 행복한 순간과 눈으로 얻은 즐거움은 존재한다. 성인이 되고 나서 친구들과 함께 제주도 여행을 다녀왔을 때는 단순히 노는 지역이 바뀐 채로 다 같이 놀았다는 기분이었다. 원래도 자주 만나 놀던 친구들끼리 다른 지역에 가서 잠시 구경하고 놀다 온 느낌이라 막 여행을 다녀왔다기보다는 친구들과 더 깊은 놀이를 했다 하는 기분. 그 이후에 친구들과 일본 여행을 다녀왔다. 길었던 코로나 시기가 거의 끝나서 해외여행이 가능해져 떠난 일본은 비행기를 타러 가는 순간부터 기분이 달랐다. 비행기, 숙소, 액티비티를 예약하면서 뭔가 색다른 설렘이 찾아왔다. '내가 정말 해외여행을 가는구나-'하는 기분에 싸여 준비하는 긴 기간 동안 행복을 깔아 두고 살아가는 듯했다. 여행의 시작부터 우여곡절이 많았으며 예상보다 힘들게 잡은 일정에 모두 매일 녹초가 되었지만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어떻게 흘러간 것인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즐거움이 가득했다. 이번에도 여행이라기보다는 여정이란 느낌이 들 정도였지만 분명한 것은 색다른 깊은 경험을 했다는 것이다. 낯선 타국에서 겪은 문화와 다른 느낌의 풍경들이 모두 신기하고 즐거웠다. 단순히 길을 걷는 것만으로도 '이게 일본이지-'하면서 흔한 골목길의 사진을 찍어 남겨두었다. 힘들다는 생각을 많이 했지만 정말 행복하기도 했다. 그 여행에서 얻어온 것은 우습게도 일본에 대한 향수다. 일주일을 있다 온 곳에 대한 향수라니 우습지만 이보다 지역에 대한 그리움을 잘 나타낼 수는 없는 것 같다.


 나는 원래도 일본의 애니메이션도 많이보고 노래도 종종 들었다. 이번에 새로이 꽂혀 듣고 있는 '베텔기우스-유리'는 정말 나를 일본으로 데려가주는 기분이다. 길을 걸을 때 에어팟을 꽂고 노이즈캔슬링이 되어 오직 일본어의 노래만 들려오는 순간 걷는 길이 일본이 되어버린 기분이다. 다른 일본노래를 들을 때는 이런 기분이 들지 않았는데 묘한 기분이다. 장마가 시작되어 비가 많이 오는 요즘에 비 내리는 길을 우산을 들고 이 노래를 들으며 걸을 때 나는 마치 일본 속에 들어온 기분이 든다. 늘 보던 거리가 다른 느낌을 가져온다. 어이가 없다. 이곳은 20년을 넘게 살아오며 변천사를 보아온 나에게 완벽한 고향이다. 그 무엇보다 익숙하고 몸이 편안하며 나와 관련된 것이 제일 많은 곳. 안 가본 곳보다는 가본 곳이 많은 그런 곳에서 매일매일 똑같은 길을 걷는다. 한데 이 노래를 귀에 꽂는 순간 길이 영화의 장면 안으로 바뀌는 기분이다. 세상이 나를 위해 연기하는 기분이다. 노래를 듣는 4분이 안 되는 시간 동안 나는 잠시 나만의 세상을 가진다. 4분의 해외여행, 나는 요즘 이 재미에 푹 빠져서 이 노래를 매일같이 듣는다.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경험을 한다. 그리고 또다시 다른 경험을 하는데에 있어 그 기억들을 자양분 삼아 발전하거나 선택하는 것에 도움을 받는다. 행복했던 기억이나 불행했던 기억은 마음에 깊이 남아 문득 튀어나와 그 속에 잠기게 만든다. 이 4분의 노래는 나의 행복했던 기억을 쉽게 꺼내주는 스위치다. 나는 노래하나를 들으면서 행복을 찾아냈다. 이 모든 것은 일본의 길을 걷던, 일주일의 여행, 여행을 준비하던 두 달, 함께 간 친구들과 쌓아온 거진 10년의 시간이 만들어낸 것이다. 나는 오늘도 길을 나서며 곧장 노래를 틀었다. 행복을 만끽하기 위해서, 비 내리는 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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