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말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런 만큼 말하는 습관이나 사람에 따라서 쓰는 단어와 표현이 모두 다를 정도. 이점은 스스로 정한 관계에 대한 철칙과도 연관되어 있다. 짧게 설명하자면, 나는 소위 말하는 바운더리를 굉장히 구체적으로 나눈다. 사람 한 명, 한 명마다 주기적으로 울타리의 크기와 접근성이 달라지며 그들의 크기와 접근성에 따라 허용되는 범위도 천차만별로 달라진다. 통나무 하나만큼의 차이로 나에게 *발-이라는 말을 해도 되는 사람과 하면 안 되는 사람이 나뉘는 정도? 스스로도 굉장히 피곤하게 접근하는 부분이 있지만 개인적인 자기 방어와 인간관계 관리를 위한 효율성이 좋다고 생각해서 유지하는 중이다. 다시 돌아가 이렇게 세세히 대하는 내가 대화를 할 때 곧장 ‘아, 이 사람과는 대화가 너무 하기 싫다’라고 느낄 때가 있다. 몇 가지가 있는데 개중에 오늘 다룰 내용은 ‘책임을 전가하는 말하기’이다.
책임, 단어 자체가 무겁게 느껴진다. 이것이 무거운 만큼 신경과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헌데 날이 갈수록 본인의 권리와 타인에 대한 배려의 부재가 이 책임을 지워간다. 우리가 공동체,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사회인 이상 문화적으로, 인간 대 인간으로서 지켜야 될 것이 법만은 아니다. 도덕성, 이는 인간집단의 질서나 규범을 정하고 그것을 엄격하게 지켜나간다는 뜻으로 시작되었으나 보다 포괄적으로 보자면 바람직한 행동-이라는 말이 된다. 이 바람직한 행동은 무엇이냐. 본인의 의무와 책임을 다하며 타인에게 해가 되지 않고 남을 존중함에서 나오는 것이다. 이렇게 말하니 무슨 공자처럼 말하려 드는 것 같아서 스스로를 낮추기 위해 쉽게 설명하겠다. 단순히 착하다-라는 개념의 뜻이 아니다. 사람들은 모든 순간에 선택을 한다. 타인과 말을 할 때도 머릿속에 떠오르는 수많은 단어와 표현들 중에 선택하여 말을 하는 것이고 그 표현에 따라 그 사람과의 대화가 달라진다. 만약 그 표현이 남에게 잘못된 것이라면 사과를 할 줄 알아야 하고 좋은 것이라면 계속 응용할 줄 알아야 한다. 이를 세 문장정도로 줄여보자면
선택을 위한 생각, 생각에 따른 행동, 행동에 따른 책임
이 된다. 최종적으로 우리가 사회인으로서 가져야 할 것은 본인 스스로의 행위에 대한 책임이다.
요즘 사람들은 책임전가를 위해 노력한다. 대학교 조별과제에서 죽어도 조장을 하지 않으려 하고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며 좋게 넘어갈 수 있는 것을 자신의 권리를 앞세우며 우겨댄다. 극한의 이기주의. 이기주의는 이전에도 여러 번 다뤄왔던 내용이기에 깊게 들어가지 않겠다. 다만 나는 이렇게 책임을 벗어나려고 하는 이유가 지나온 선례들과 경험들에서 나오는 것을 어쩔 수 없다 여기지만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방패의 끝이 남을 찌르는 용도가 되어버리면 안 된다는 것이다. 남에게 불필요한 책임을 넘기는 언행이 너무 불편하다. 기본적으로 배려가 기반이라면 본인이 하기 싫은 것을 남에게 강조해서도 안 되는 것 아닌가? 이런저런 핑계로 본인은 안되지만 이런저런 억지로 남은 책임을 지게 만든다니,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
인간이 현대사회에서 가장 주의해야 할 것은 뭐니 뭐니 해도 혀다. 자신의 혀를 어떻게 놀리느냐에 따라서 사람의 모든 것이 바뀐다. 말 한마디로 천냥빚을 갚는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등 수많은 속담들 속에서도 말에 대한 중요성을 가르치며 지나온 역사에서 말 한마디 실수로 목이 날아간 사람과 말 한마디를 잘해서 모든 권력을 얻는 모습도 나온다. 당신이 내뱉는 말에 책임이 뒤따르는 것을 모른 척하지 마라. 그렇게 계산적으로 살아가는 사회에서 왜 말에는 계산이 붙는 것을 생각하지 못하는가. 타인에게 무언가를 부탁할 때나 본인이 아쉬울 때는 머리를 숙이며 공손하다가 나중에 돼서는 그저 모르쇠로 일관하거나 뻔뻔함을 내세워 저급스러운 사람이 되어 버리는가. 타인의 부탁을 들어줄 때 본인의 책임이 생기는 것이 들어주는 이 또한 마찬가지다. 그를 상처 주지 않는 선에서 과하지 않은 최대한의 방패를 마련해 두어라. 만약 자신의 방패를 만들려는 과정에서 타인이 상처를 입게 된다면 도움 자체를 하지 마라. 그는 자신의 부탁에 책임을 질 생각이 없는 것이다.
말을 조심하자. 우리는 혼자 살아남아야 하지만 혼자 살아갈 수 없는 존재다. 모든 순간에 지켜보는 이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