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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다훈 Sep 06. 2023

자극인가 무딤인가

 세상은 군자가 되기 어렵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며 항상 스스로의 정진을 위해 공부하고 예를 갖추고 효도하며 올바른 성품을 가지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되는 것들이지만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알고 있으면서도 실천하지 않는 것은 무지한 것이지만 알고 있는 것을 실천하는 이는 극소수이며 우리는 그들을 난사람이라고 말한다. 하는 사람들이 난사람인데 왜 하지 않는 사람들은 무지한 것이 되는가. 이렇게 간단히 대단한 사람이 될 수 있음에도 우리는 한심한 일에 쉬이 빠져든다. 책을 읽을 시간에 웃긴 영상을 보고 운동을 할 시간에 게임을 하고 건강한 식습관 보다 간편하고 자극적인 음식을 선호한다. 현 사회에 나타난 인간의 여가생활이나 자기만족을 위한 컨텐츠의 증가가 원인일까? 결국 공급은 수요에 따른다. 인간이 이런 공급을 원한 것이다. 단순히 게임이나 영상시청 같은 일들이 한심하다는 뜻이 아니다. 자기 발전을 위하지 않고 현실에서 도망치는 행위의 예시를 들기 위한 간편한 설명일 뿐. 술이 몸에 좋지 않음을 알면서도 더군다나 조절하지 못하고 과하게 마시는 것과 같은 말이다. 그야말로 감성의 시대다. 자극에 미친 사람들. 게임이 가져다주는 성취감과 쾌락에서 나오는 자극에 매콤하고 기름진 음식이 가져오는 짜릿한 자극에 재미난 영상을 보면서 웃는 시간에 나오는 자극에 빠져서 헤어 나오지 못한다.


 필자는 담배를 피운다. 예전에는 악취로 느껴지던 담배냄새 탓에 대체 몸에도 안 좋고 저런 냄새가 나는 것을 뭐가 좋다고 그렇게 피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사춘기에 접어들었을 무렵 주변 친구들의 권유로 한 번 펴보았던 담배는 지독했다. 첫 모금을 마셨을 때는 어떻게 피는지도 몰라서 아무렇지 않았다. 친구들이 웃으면서 한번 더 마셔보라고 하는 순간 목이 따가웠고 머리가 어지러웠다. 충격적인 경험에 연달아 기침을 하며 억지로 침을 뱉었다. 다시는 안 펴야지 하면서 돌아서서 나올 때 의외로 그렇게 싫어하던 냄새는 나지 않았다. 그리고  왠지 모르게 우월감이 새어 나왔다. 길에 지나가는 같은 교복을 입은 친구들 사이에서 어른들의 상징으로 보이는 담배냄새가 나는 것이 묘한 기분을 불러일으켰다. 그때부터 친구들이 담배를 피우러 갈 때 따라가기 시작했다. 성인인척 담배를 사고 혹여나 걸릴까 봐 숨어서 피지만 냄새를 지우지는 않았다. 그때는 멋으로 폈다면 시간이 지나온 지금은 중독보다는 습관이 되어 버렸다. 굳이 피지 않아도 계속해서 생각이 나거나 금단증상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무언가 하고 나서 혹은 이동할 때 잠깐의 시간에 왠지 담배를 피우는 시간이라는 인식이 생겼다. 지금도 여전히 몸에 좋지 않은 것을 알고 피고 나서 나오는 가래와 입 속의 텁텁함은 불편하게 느껴지고 굳이 왜 계속 피는 건지 하는 의문이 든다. 그럼에도 쉽게 놓치기 어려운 자극인 것이다. 담배 한 대를 핌으로써 얻는 몸의 안 좋음 보다 그 순간이 가져오는 상쾌함과 자극이 더욱 커서 놓지 못한다.


 그래 우리는 안 좋은 것과 좋은 것을 구분할 수 있게 배우고 자란다. 그럼에도 쉬이 좋은 것만 선택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디기 때문이다. 당연히 변화가 적고 위험성이 낮으며 조용하고 안전한 것이 좋은 선택지이다. 하지만 우리가 즐기는 것은, 자극을 받는 것은 이와 반대인 것. 나는 좋은 생활의 자극을 찾아볼 생각을 가져봤었다. 책을 다 읽고 얻은 지식의 성취감, 공부를 해서 자격증을 따내는 기쁨, 깔끔한 음식을 먹어 더부룩하지 않은 속을 가지고 편하게 지내는 안락함, 건강히 운동을 하며 상쾌하고 맑은 정신으로 또렷이 살아가는 즐거움을 찾아보려고 했다. 이 모든 자극은 고작 담배 한 까치에도 미치지 못했다. 그러다 지친 나는 점점 자극도 싫어지기 시작했다. 그저 무색무취의 삶이 좋은 것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한데 무딘 것도 자극도 싫어진 나는 졸지에 아무것도 하기 싫어지는 상황에 이르렀다. 이러면 재미가 없어서, 저러면 재미가 과해서 이미 아는 것들을 다시 찾아보고 이미 해본 것만 다시 해보는 사태에 이르렀다. 그렇다면 내가 다시 나아가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과연 색다른 자극일까 혹은 무딤에 적응하는 것일까. 어떤 것이 더욱 효율적이며 나에게 도움이 될까. 아무도 모를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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