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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다훈 Sep 25. 2023

담배 한 까치

 담배를 물었다.


 최근 자격증 시험이 있었다. 다른 시험을 준비할 때 보다 불안한 점이 많았고 시험 치기 직전까지 확신이 없는 것은 거의 처음이었다. 헌데 이상하게 아무런 긴장이 되지 않았다. 분명 준비가 부족했음에도 시험의 합격과 불합격에 대한 걱정이 없었고 시험장을 빨리 벗어나고 싶은 마음만 가득했다. 시험 결과는 합격이었지만 나는 당연하다는 듯이 빠르게 시험장을 나섰다. 기쁘지도 않았고 누군가에게 자랑하고 싶지도 않았다. 시험을 치는 것을 알았던 주변에서 물어봤을 때나 붙었다고 덤덤하게 말하는 것이 다였다. 애써 기쁜 척을 하며 말하는 동안 무언가 이상함이 느껴졌던 것 같다. 큰 허무함이 밀려온다. 불도 붙이지 못하고 가만히 앉아서 입에 물고 있는 담배는 연기조차 나지 않지만 내 정신을 멀리 날려 보내고 있었다.


 불을 붙였다.


 허무한 마음을 뒤로하고 왜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인지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열심히 준비한 자격증 시험을 합격했음에도 왜 기쁨보다는 허무함이 몰려오는 것일까. 내가 이 시험을 준비한 이유는 무엇인가. 숨을 들이마시자 담배 끝이 붉게 타올랐다. 머릿속에 수많은 생각이 지나갔고 일이 해결이 될 듯이 자연스러운 시간의 흐름을 느끼고 있었다. 그 찰나에. 다시 숨을 뱉는 순간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동시에 그 모든 생각을 잊었다. 붉게 타오르던 불은 회색의 담뱃재가 되어 있었다. 마치 내가 떠올린 해결방안들이 버려져야 할 존재들인 것처럼. 나는 이 시험을 친 이유가 보험뿐이었다. 꿈도 목표도 없이. 이렇게 사는 사람이 많은 것을 알고 있다. 현실을 버텨내기 위해서 스펙을 쌓으려 갖가지 자격증과 시험을 치르며 앞으로 나아가려고 노력하는 것을. 이런 삶을 부정하고 싶은 것은 아니지만 묘한 허무함이 맴돈다. 사회부적응자처럼 이런 것을 부정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그냥 마음이 그렇다.


 담배를 버렸다.


 어쩔 수 없는 것 아닌가. 이미 알고 있다. 나는 도저히 글을 놓지는 못하겠으나 분명 이 길로 가는 것이 너무 자신이 없다. 포기하고 다른 것을 시작할 용기가 나지 않아서 놓지 못하는 것 같다. 주변에 작가가 되겠다며 호언장담하던 과거의 자신감이 그립다. 살면서 웬만한 일을 후회한 적이 없다. 지나온 것은 지나온 대로 그런 일이 있었지 하며 이랬으면, 저랬으면 그랬으려나-하는 생각을 가져본 적은 있어도 슬픔으로 후회해 본 적은 없다. 헌데 요즘 후회되는 일이 하나 있다. 글을 시작하고 보다 열심히 빠지지 않은 것이 후회된다. 다 핀 담배를 버릴 수 있는 이유는 분명 처음부터 시작해서 끝까지 모든 것을 들이 마신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버릴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글은 그러지 못했다. 분명 손에 꺼내 들었고 불을 붙여보았지만 비라도 내리는 것인지 계속해서 불이 꺼졌다.


 새로운 담배를 꺼내야 할까.


 담배를 한 번에 한 대만 펴야 하지 않겠나. 불이 붙지 않는 담배를 끝까지 쥐고 못 놓는 듯한 내 모습이 어느새 처량해 보이기 시작했다. 내 꿈은 단순히 담배 한 까치로 표현할 수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 한 까치를 위해 들어가는 불과 숨이 가볍지 않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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