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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다훈 Nov 11. 2023

불행을 내세우지 말자

 사랑에 관련된 얘기를 담은 새로운 브런치북을 시작했다. 도전을 함에 앞서 이전에 적었던 글들을 둘러보다 보니 ’사랑‘이란 주제로 적은 글도 많지만 적지 않게 ’행복‘에 관련된 주제도 많이 적었다. 오늘은 현대사회에 나타난 ’불행어필‘에 대해서 얘기해보려 한다. 오늘 적는 글은 필자 본인의 주관이 100% 들어간 것이다. 고로 불편하게 느껴질 수 있는 의견이 많을 수 있다. 다만 타인의 생각을 부정하거나 맞다는 주장이 아니라 스스로는 이렇게 생각한다-정도의 글이기 때문에 다른 의견을 말해주시는 것은 괜찮지만 ’뭐가 맞다. 뭐가 아니다.‘같은 논쟁을 벌이고자 적는 글이 아님을 말하고 시작하겠다.


 나는 불행을 내세우는 사람들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 세상은 타인의 불행을 이해하고 공감해주어야 한다고 말했지 타인이 불행하다면 너의 희생을 감내하라고 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그런 사람들을 싫어한다. 이런 생각을 가지게 된 데에는 그동안 봐온 이런 특성의 사람들에게서 받은 영향이다. 보통 이런 사람들의 특징은 피해의식, 과장된 망상, 자신의 불행이 세상에서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들이 이런 생각을 가지게 되는 것에 어떤 불가피한 일이 있었을 수도 있고 그 옳지 못한 이유로 인한 피해자일 수 있다. 그럼에도 이런 이들을 싫어하는 이유는 고치거나 나아질 생각이 없다-는 것이다. 왜? 편하다. 자신의 의견을 내놓는 것에 있어서 본인의 안 좋은 일에 대한 예시를 들어버리면 소위 말하는 갑분싸를 일으키거나 강제로 모두의 공감을 이끌어내고 타인의 대화를 막아버린다. 그 순간부터는 모두의 의견을 꺼내는 대화가 아닌 위로하는 여러 명과 위로받는 한 사람이 생길 뿐이다. 그런 와중에서 분위기를 깨기 싫다며 별 일 아니다-라고 말하면서 본인이 대인배인 것처럼 행동하는 것은 위로조차 하기 싫게 만든다. 세상에 힘들어하는 모든 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말이 아니다. 그런 상황을 이용하려는 이들에게 하는 말. 타인에게 ‘나는 제일 불행하고 불쌍한 사람이니까 너는 나에게 위로를 해야돼.’라고 가스라이팅을 하는 것에 가깝다. 이들은 자신들 스스로 그 상황을 벗어나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이전에는 이들이 일전의 사건으로 인한 의지박약 상태가 되어서 그렇겠거니 했지만 그게 아니다. 이를 이용하는 것이 그렇게 편한데 포기할 이유가 없었던 것. 그들은 자신이 맞은 칼에 생긴 상처를 치료하지 않고 그곳에서 뽑아낸 칼을 그대로 들어 무기로 사용한다. 터무니없다. 결국 그 상처에서 계속해서 흘러내린 피가 불러오는 것은 자신의 죽음임을 모르는 것인가. 혹은 자신이 들고 있는 칼이 정말로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하는 것인가. 그 칼은 결국 남에게 휘두르지 못하고 계속해서 손에 붙들린 체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자신을 보게 할 것이다.


 이런 사람들과 얘기를 나누는 것은 너무도 해롭다. 먼저 위에서 말한 것처럼 대화 자체가 성립이 되지 않는다. 그 상황을 벗어나고 싶어 상담을 하는 이들은 자신의 상처에 붙일 약과 밴드를 원하지 그것을 들이밀지 않는다. 들이미는 이들은 단순히 자신의 상처가 가진 아픔을 공감하고 위로하길 바라는 것이다. 우스운 것은 그런 행동으로 찢어진 자존감을 붙이려 드는 것이다. 타인의 자존감을 긁어모아서 자신의 빈 곳에 붙이는 것이 어떻게 딱 맞을 수 있을까. 결국 무너질 모래성에 불과하다. 스스로의 아픔을 아무렇지 않게 꺼내 들고 이에 대해서 해결방안을 모색하는 이들과는 다르다. 단순히 자신의 아픔을 보여주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뜻이 아니다. 치료에 대한 책임을 남에게 부과하는 이들이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나는 타인의 아픔을 들어주는 것을 싫어하지 않는다. 도움이 될 수 있는 부분은 도움을 주고 싶고 만약 그렇지 못해도 곁에서 응원을 해줄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의 아픔을 나에게 넘기려는 이는 곁에 두지조차 않는다. 삶은 내 혼자의 감정을 감당하기에도 힘든데 어떻게 남의 일까지 감당해야 하는가. 들이는 노력과 시간에 비해서 돌아오는 것은 그에게서 옮겨진 흉터일 뿐이다.


 나는 이런 이들에게 감히 말하고 싶다. 필자도 그렇게 힘든 일을 겪은 적이 있다. 불행의 크기는 모두가 다른 것이며 그에 대해 받아들이는 태도 또한 다르지만 정말 순수히 치료를 바라는 목적으로 하는 말이다. 그 일을 견뎌낼 자신이 생기기 전에는 함부로 남에게 다가서지 않았으면 좋겠다. 자의가 아닐지라도 은연중에 스스로를 내리는 유형의 말이나 행동은 타인을 힘들게 하는 것과 별개로 스스로의 상처를 더욱 벌리는 것 밖에 되지 않는다. 이미 잃어버린 것이 많은데 더더욱 많은 것을 잃어갈 것인가. 결국 본인 스스로가 변하지 않는다면 결코 바뀌는 것은 없다. 자신에게 생긴 상처를 돌볼 생각을 해야지 남의 건강함에 눈을 흘기지 마라. 자신이 불행하니 너도 같이 불행해-같은 말은 사이코패스와 같다. 도움을 구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다. 마음을 바꿔 잡아 요청하란 뜻이다. 스스로를 불행히 여기지 않고 행복해지고 싶단 마음으로 도움을 청한다면 모든 이들이 도움을 아끼지 않을 것이다(그래도 만약 심적으로 힘들다면 특정 사람들을 과하게 신뢰하지 말기를 바란다.). 부디 스스로를 좀 더 소중히 여겨달라. 칼을 찌른 이를 욕하고 치료해 주려는 이들을 감사해라. 찌른 이 가 남겨둔 칼과 상처를 이용하려 하지 마라. 복수는 복수를 낳듯이 당신의 아픔을 이어간다면 또 다른 아픔을 낳을 뿐이다. 건강이 최고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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