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런 글을 좋아한다. 길고 장황하게 보일 수 있을지라도 읽는 이에게 자신의 상상 속에 펼쳐지는 순간을 공유할 수 있을 정도로 정돈된 설명을 포함한 글을. 자리에 앉아서 글을 읽으면 잠시 눈을 감고 작가가 초대해 준 곳으로 들어가 글을 곱씹으며 느낀다. 설명이 정확하면 정확할수록 작가의 시점에서 모든 것을 내려다볼 수 있는 기분에 마치 알 수 없는 세상에 떨어진 여행자처럼 느껴진다. 헌데 이런 글의 단점이 있다. 정말 공감 가는 상황이거나 작가의 필력이 좋아서 상상 속의 장면을 환상으로 만들어 주지 않는다면 쉬이 무언가를 느끼기 어렵다. 더군다나 작가와 독자의 성향이 달라서 생각하는 부분이 다르다면 작가가 글을 아무리 잘 써도 독자에게 같은 감정이 전달되지 않는다. 무엇보다 느낄 수 있는 것이 한정적이다. 그런 단점을 알고 있음에도 만약 이런 글이 잘 쓰인다면 정말 멋있기에 동경했다. 마치 네이마르가 연습 때나 할법한 개인기를 실전에서 쓰며 멋있게 드리블하는 것처럼.
감성이 짙은 글보다 담백하게 감정을 전달하는 것을 좋아했지만 요즘은 또 짙은 느낌만의 매력이 느껴지는 중이다. 짧은 단어, 문장 속에 내포되어 있는 수많은 감정의 억누름이 너무 감동적으로 다가왔다. 어느 순간부터 인지 모를 정도로 스며들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일까, 최근에 적은 글들에서도 짧은 단어 하나로 마무리하는 듯한 모습을 몇 번 연출했었다. 연인들의 이별에서 ‘잘 지내’ 이 한마디에 담긴 서로의 다른 의미가 부딪히는 순간에 흐르는 눈물에 담긴 또다시 다른 의미들. 마음으로 느껴지는 것을 글로 풀어내려니 뒤죽박죽 되어버려서 똑똑히 전하지 못하는 것이 아쉬울 지경이다. 아무런 내용도 없어 보이는 단순한 인사말임에도 불구하고 장황하게 늘여놓은 글들보다 더욱 많은 것을 느끼게 해주는 감정선. 이것을 이끌어내기 위한 스토리텔링 능력은 글을 길게 잘 늘여 적는 것보다 어려울 것이다. 이 짧은 한 마디에 모든 감정이 떠오른다. 스쳐 지나가던 감정이 어느새 마음에 쌓이기 시작하고 함께 쌓고 쌓다가 사라져 버린 사람에 남은 공간이 없어 터져 버린 감정들이 순간 모두 흘러나가는 것이 이 한 마디에 담긴다. 사실상 이 짧은 대사의 감동을 위해서 앞의 모든 내용들이 존재하는 것이다. 얼마나 아름답고 깊은 감정인가.
현대 미술에서 단 한 획만을 그어놓은 그림을 본 적이 있었다. 그런 예술을 잘 모르는 나에게 고작 이 한 획에 몇억이 불려진다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헌데 나는 지금 단순히 단 한 단어만 존재하는 글에 깊은 감동을 느끼고 있다. 그 단어가 꼭 이전의 배경을 가지고 있지 않고 단순히 존재만으로 알 수 없는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마치 ‘엄마’라는 단어에 왠지 모를 슬픔이 존재하는 것처럼. 문득 예전에 글귀를 써서 올리던 SNS가 떠올라서 한 번 들어가 봤다. 서툴고 말도 안 되는 듯한 것도 많았지만 왠지 그때의 내 생각들과 글에 굉장히 순수하게 접근한 게 느껴졌다. 그와 동시에 분명 감성적으로 적어낸 글임에도 불구하고 강인한 무언가가 느껴졌다. 나는 글이 좋았나 보다. 그냥 그걸 적는 행위자체가 너무 좋았나 보다. 지금 적고 있는 글에서 느껴지는 감정보다 많은 것들이 느껴질 정도였다. 물론 지금의 글이 더 좋고 나에게 맞는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 글에는 단순히 ’ 어떤 감정을 글로 표현해 내겠어.’ 혹은 ‘이런 감성의 글을 적어서 어떤 감정을 이끌어내겠어.’라는 직관적인 목표보다는 ‘이런 글이 너무 좋아.’라는 추상적인 몽글함이 있었으니. 위로를 위해 적은 글에 그뿐만이 아니라 사랑과 응원, 애틋함 같은 감정을 여럿 넣었던 과거에서 지금은 위로를 위한 글에는 위로가 느껴지도록 하는 능력을 길러냈다. 비록 풍부하진 못하더라도 나의 생각을 온전히 전할 수 있는 능력. 이런 글을 쓰는 것이 좋다. 하지만 한 번씩 그때의 내가 그리워지는 것은 사실이다. 분명 모자란 실력이더라도 글에서 만큼은 진심이 느껴졌으니까.
궁금하다. 지금 나의 글에서 사람들은 어떤 것을 느낄까. 한 번씩 공감이 간다, 너무 와닿는다-라는 소리를 들을 때면 스스로 글 실력이 늘었다는 생각이 들지만 정말, 타인의 감정에 가까이 다가선 것일까-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적은 글에서 느껴지는 감정이 하찮지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