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다훈 Nov 27. 2023

삶의 의미가 아닌 이유

 우리는 아무런 계획 없이 태어난다. 태어나면서부터 자신의 역할과 할 일이 정해져서 태어나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 부모가 바라는 이상은 부모의 계획일 뿐이다. 만약 태어나기 전부터 무언가를 계획하고 태어날 수 있다면 대단한 예술가의 자제로 재능을 타고나거나 살아보고 싶은 나라의 부잣집에서 태어나고 싶었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면서도 우리는 매일같이 삶의 의미를 찾는다. 자신이 태어난 이유는 무엇일까-하면서 멋대로 의미를 부여한다. 아무런 계획 없이 세상에 나타난 작은 한 생명인 주제에 자신의 눈에 보이는 모든 시점을 주인공처럼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나 스스로가 세상의 중심이며 세상의 의의를 만들어가는 사람이 될 것이라는 생각. 틀렸다. 정작 그런 사람들처럼 보이는 이루어낸 자들은 이미 자신의 삶의 의미 따위는 실존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것이다. 그들은 자신만의 계획을 만들어 내어 삶의 의미를 찾는 자들이 아닌 삶의 이유를 만들어가는 자가 되었다. 그래, 또 쉬운 깨달음 하나를 얻었다. 길고 길었던 고민 시간의 끝에 도달한 결론은 항상 허무하다. 이제 다시 어려운 고민에 빠져야 한다.


 나는 어떤 계획을 할 것인가. 그들은 어떻게 계획을 세웠는가. 김연아가 인터뷰에서 그냥 해야 되니까 하는 거지 했던 훈련은 아무런 계획이 없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피겨를 시작하기부터 모든 훈련에 임하는 자세와 어느 목표에 도달할 것인지에 대한 모든 계획이 기반으로 있기 때문에 그 훈련은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 됐다. 우리가 별다른 생각 없이 이거 해봐야지 하고 뛰어드는 곳에는 기반 따윈 없기 때문에 중간에 하지 않아도 무언가 틀어진 것이 아니다. 왜? 이미 그곳에 도전한 이유 따위는 없기 때문에. 그렇다면 계획을 세운 이들은 어떤 근거로 자신의 길을 정했을까. 나는 이 사실이 미치도록 궁금하다. 대체 세상 사람 모두는 어떤 이유를 가지고 살아갈까. 아무런 이유 없이 살아가기만 하는 사람들에게는 받을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 자신만의 신념과 목표를 위해서 계획하고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에게선 분명 다른 것이 느껴진다. 그들은 어떻게 그런 목표와 신념을 가지게 된 것일까. 나도 저런 것이 있었다면 좀 더 계획하고 실천하고 노력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그래, 다시 처음으로 돌아갔다. 결국 또 만들어가는 이가 되려고 하지 않고 의미를 찾으려는 사람이 되었다. 아, 허무한 결론이 허무한 실패로 돌아가는 중이다.


 사람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 목표하는 바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미쳐야 한다, 죽을 듯이 노력해야 한다-하는데 우리가 바라는 것은 그런 노력을 들이기 위한 것을 어떻게 찾느냐다. 하지만 그것은 세상이 찾아줄 수도 정해줄 수도 없다. 분명히 '자기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아야만 한다. 어떻게요. 삶은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은 없지만 요구하는 것은 많다. 우리는 먹어야 하고 자야 하며 숨을 쉬고 돈을 써야 하니 돈을 벌어야 한다. 사람을 만나고 관계를 만들고 활동하고 어울리며 배척하되 수용해야 한다. 이 모든 과정 하나하나에 주의를 기울이다 보면 지나가는 것은 세월이다. 사회에서 바라는 '평범한 사람'의 기준치는 굉장히 높다. 오히려 특별한 사람의 허들이 낮을 지경이다. 이전에 사치였던 것들은 이제 하나쯤은 들고 있어야 하는 것이 됐다. 세상이 변해서 요구하는 것이라고? 아니다. 스스로 그런 곳에 의미부여를 할 뿐이다. 고작 명품 하나 들고 있는 것이 우리의 삶에 어떤 계획이 되는가. 명품을 가지기 위해서 어떻게 돈을 모을 것 인가를 생각하고 노력하는 것이 더욱 계획적인 것이다. 우리에게 명품이란 단순히 돈의 가치여서는 안 된다. 그 품(品)에 담긴 그들의 노력과 계획이 보여야 한다. 왜 항상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다 말하면서도 가지고 있는 것으로 판단하는가. 어떻게 아는데. 그들의 노력이 계획이 옳은 것인지 그릇된 것인지 쉬이 판단하는 것이 결과 아닌가. 정당하게 일해서 연봉 4천을 받는 사람과 불법사이트로 연봉 1억을 찍는 사람이 있다. 만약 절대로 잡히지 않는다면 누가 더 노력했고 계획적인 사람이라 불리는가? 세상의 가치는 돈이 되어선 안된다. 분명 자본주의 세상에서 바라는 최고의 가치이지만 고작 그 수치만으로 정하는 것이 최선이어서는 안 된다. 이미 사회는 돈에 미쳐있다.


 나는 어떤 계획을 가지고 싶은가. 지금까지 해오던 작가를 위한 도전, 이모티콘 제작자를 위한 도전, 이 모든 것들이 나에게 삶의 이유를 불러일으켰는가. 그렇다면 지금에 와서 목표에서 도망쳐서 억지로 만들어낸 휴식처에서 돈을 벌며 평범하게 사는 곳에서 계획을 만들어 낼 수 있는가. 나는 내가 밉다. 스스로 바라는 바도 명확히 모르고 꿈을 외치는 주제에 꿈 따위를 믿지 않는 내가 밉다. 그 누구보다 이상을 바라고 모든 곳에 스스럼없이 도전하면서도 누구보다 현실적이며 타협하는 자세를 가진 내가 밉다. 그래, 나는 잃는 것이 두렵다. 세이노여, 당신의 말이 또 하나 옳다. 가장 밑바닥에서 시작한 이들은 잃는 것이 두렵지 않지만 애매한 곳에서 시작한 우리는 그 무엇이라도 잃는 것이 두렵다. 지금의 삶에서 좀 더 나빠진다고 해서 살아지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의 편안함과 안락함을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렇기에 도전하지 않는다. 결코 변하지 않을 삶에서 튀어나고 싶은 생각만으로 살아가다니. 나의 계획에 허점은 없을 것이다. 허나 그 계획에 목표도 없을 것이다. 그래, 이딴 것이 계획이라고 뱉고 이뤄보겠다고 말한 것은 오만이다.


 또 하나 깨달음을 얻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하찮지 않은 글이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