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2.01
잠시 잊고 있던 일기를 적는다. 어느덧 한 해의 마지막 달이 찾아왔다. 12월. 사실 이 날이 찾아오는 순간부터 이미 올해는 끝났다. 아직 31일이라는 시간이 남아있지만 내년, 새로운 해가 떠오르는 날을 준비하는 시간밖에 되지 않는다. 손과 귀가 얼어버릴 것 같은 추위가 찾아왔다. 지독한 햇빛이 잠시도 내버려 두지 않고 따라오며 치근덕 거리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차갑게 뒤돌아섰다. 나에게 다가오지 않는 해가 미울 지경으로 춥다.
올해의 시작은 휴식이었다. 19살부터 5년간 자질구레한 일을 쉬어본 적 없던 내게 오랜만에 휴식을 부여하고 싶었다. 2월에 떠나기로 한 일본 여행이 시작이었다.
처음에는 불편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나의 나태함이 걱정되었고 시간을 죽이는 듯한 낭비가 두려웠고 사라져 가는 통장 잔고가 무서웠다. 그래서 애써 의미를 부여해 보려고 준비하던 자격증과 학업과정을 마무리 짓기 위해 열중했다. 그런 와중에 나의 목표를 위해서 글을 놓지 않았고 그림을 놓지 않았다. 비록 이렇다 할 성과를 만들어 낸 것은 없으나 처음으로 글에 대해서 진중히 도전을 이어가고 있으며 전혀 재능이 없어 보였던 그림으로 돈을 벌어보고 행사에도 초청되어 봤다. 아무것도 없어 보였던 내 재능이 나의 노력에 자그마한 보답을 하나 가져다주었다.
나무를 심고 처음 나는 과실은 잘라내어야 한다. 꽃이 피고 과일이 자라는 순간 나무는 더 자라지 못한다. 나무를 더욱 크고 굳건하게 만들어 더 많은 과실을 얻어내기 위해서 꼭 해내야 하는 작업이다. 나는 그림으로 얻어낸 첫 과실을 만끽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 기회는 분명 잘라내어 다시 뿌리로 돌아가 영양이 되어 줄 것이란 확신으로 더욱더 매진하기 시작했다. 나에게 더 많은 과실을 가져다줄 하나의 무기일 테니까. 글은 첫 수확이라고 하기에 민망할 정도의 결과물이 하나 있었다. 이 또한 영양으로 삼기 위한 동기부여제로 남겨두었다. 내가 처음으로 만들어본 책을 책상에서 볼 때면 이상한 기분이 든다. 언젠가 다른 사람의 책상에 내 이름이 적힌 책을 볼 날이 오기를 기원하며.
아마 내년부터는 글작업과 그림연습에 열중하지 못할 것이다. 나는 지독히 현실적이며 자기희생적인 성격인지라 도저히 부모님에게 나라는 짐을 남겨두기 싫다. 집을 나와서 내가 돈을 벌어서 내 생활을 하며 나의 성장을 이끌어내고 싶었다. 무엇보다 이대로 있다가는 더더욱 나태해져 버릴 것만 같은 천성이 나를 심각하게 만들었다.
2023년은 나에게 휴식으로 다가왔지만 이상하게 많은 결과를 만들어내게 해 줬다. 정작 이전의 삶이 더 많은 사람을 만나고 더 많은 곳을 봤던 것 같다.
어떻게든 나의 삶에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2023년의 24살의 나야. 행복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