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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다훈 Jan 14. 2024

모래시계 속의 검은 사막

 태어나 마주한 세상은 초록빛의 풍요로움이었다. 배고픔 따위는 알고 싶어도 알 수 없는 그런 아름다움만이 존재하는 세상. 이곳에서 나를 향한 불평등이나 불합리함 따위를 생각하는 것에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다.


 세상의 아름다움을 하나씩 곱씹을수록 느껴지는 것은 달콤함이어야 할터인데 어느 순간부터 느껴지는 쓴맛은 잘 구운 고기에 달라붙은 자그마한 탄 부분이 씹히는 정도의 불쾌감이었다.


 그 작던 불쾌함이 내 삶에 가져올 불행함을 생각하기에는 아직까지도 너무 아름답고도 풍요로운 초록빛의 세상이 나를 감싸 안아주었다. 그저 이빨 사이에 끼는 때 따위로 생각했을 찌꺼기일 뿐이다.


 이 초록색 세상을 유지하게 해 주던 푸른 호수에 불쾌한 어둠이 드리운다. 아름다움에 묻은 작은 어둠에서 느껴지는 이질감은 심히 불쾌했으며 구역질이 나올 것 같은 냄새도 함께 올라왔다. 나에게 달콤함을 시원함을 안겨주던 물은 더 이상 없고 쓰고 역겨운 향이 나는 오수가 있을 뿐이다.


 그 오수는 내 세상을 순식간에 잿빛으로 바꾸었다. 나에게 그늘을 주어 휴식을 취하게 하던 나무는 모두 말라죽어 쓰러졌으며 편히 앉아 쉬게 해 주던 푹신한 잔디는 모두 썩어버렸다.


 형형색색의 아름다움은 찾아볼 수 없으며 내 세상에서 모든 것을 유지하게 해 주던 따스한 햇살은 나를 녹여버릴 듯이 내려 쬐이는 뜨거운 존재가 되었다. 나에게 편히 쉴 공간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고 시원한 마실 것도 달콤한 먹을 것도 찾아볼 수 없었다.


 삶을 위해 먹고 마시는 것에 쓴맛이 느껴지지 않는 것이 없다. 어느새 모두 썩어버려 세상이 검은 사막이 되어버렸다. 이곳에서 벗어난다면 나는 또다시 새로운 초록빛 세상을 맞이할 수 있을 거란 생각에 걷고 또 걸었다.


 얼마를 걸었을까. 한참을 걷고 나서야 뒤를 돌았고 주위를 둘렀다. 이곳이 어디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어디서 시작해서 어디를 보았고 어디까지 걸었는가.


 순간 느꼈다. 해가 사라졌다. 급히 눈을 뜨고 돌았다. 주변에 수많은 세상이 있다. 나에게만 존재한다 생각했던 초록빛 세상, 아니 잿빛의 사막이 수백, 수천 개가 보인다.


 모두 고작 자그마한 모래시계 안에 갇혀서 걷고 걸어서 시간이 지날 때마다 돌아가는 똑같은 사막에서 새로움을 찾고 깨끗한 물을 찾고 있다.


 돌아가는 순간에 보이는 하늘의 아름다운 햇살과 행복한 초록빛의 세상이 미치게 만든다. 저곳에 닿지 못한 나를 원망하게 만든다. 이 모래시계를 깨고 나갈 이유를 만든다.


 존재하는 세상의 전부라 생각했던 이 잿빛의 사막이 고작 모래시계 안에 갇힌 체 위아래로 굴러다니는 한 개의 삶일 뿐이었다. 나는 초록빛의 세상에 눈이 멀어 다가오는 검은빛을 무시하다 집어삼켜졌다.


 세상을 뒤덮던 나란 존재가 언제부터 이렇게 작아졌는지 알아채지 못했다. 언제부터 이런 작은 세상 안에 스스로를 가두었는지 알아채지 못했다.


 이 모래시계의 천장을, 아니 바닥인가. 어딘가를 뚫고 나간다면 나에게 다시 저 초록빛 세상을 뛰어갈 자격이 쥐어지는 것일까.


 하지만 오늘도 그저 돌려지는 모래시계 안에서 똑같은 곳을 걷는 것에서 크게 불만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잠시 보이는 세상의 행복에 모든 것을 만족한 채로 돌아가는 시간을 버티는 것이다. 이 세상에 만족하면서.


 아무리 쓰고 역겨워도 끝끝내 살아감에 스스로를 위로한다. 내게 주어진 이 세상은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크기의 불행이겠거니 하면서. 이제야 깨닫는 것이다. 자신이 세상이 커다랗고 아름다워 보였던 것은 그저 작았던 시절의 스스로가 주위를 둘러보지 못했음이기에.


 모두에게 주어진 것은 불행이며 그 속에서 느끼는 자그마한 행복들에 자신을 위로하는 것에 그치는 작은 세상임을. 그렇게 주저앉아 버린다.


 작은 모래굴에 떨어진 개미 때가 각자의 방을 만들어 그 속을 돌아다니는 듯한 모습이다. 이렇게 하찮은 이들을 굴리는, 모래시계를 돌려놓는 자는 누구인가. 나아가 나를 이 작은 모래시계 안에 넣어둔 것은 누구인가.


 나만의 세상에 갇혀 사는 것은 자의였는가 타의였는가. 이 잿빛의 세상에 갇혀서 바깥의 푸른 초원을 구경하는 것은 진정 행복인가.


 너무도 작아진 내가 밉다. 고작 이런 세상에 지내기 위해 달려온 지난날의 시간이 밉다. 고작 이런 생각에 사로잡혀 이 세상을 뚫고 나갈 용기를 가지지 못하는 내가 밉다.


 그렇게 나를 미워하고 미워하다 손에 잡히는 잿빛의 모래를 수십 번을 던지고 날렸다. 벽면에 달라붙은 검은 알갱이들은 더 이상 밖의 행복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아, 나였구나. 내가 방관했구나. 내가 걸었구나. 내가 자랐구나. 내가 썩었구나. 내가 가뒀구나. 내가 돌았구나. 이 모든 것을, 작은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나뿐이구나.


 주변에 수많은 모래시계들에 나 같은 사람들이 가두어져 만족하고 산다고 생각했던 것은 단순히 오만이었다. 이 모든 모래시계 안에 갇혀 있는 것은 매 순간 속의 나였다. 이 수많은 내가 모아져서 만들어내는 내 인생이란 잿빛이었다.


 고작 이런 잿빛의 작은 세상에 가두어진 삶을 가지고 있는 스스로가 불쌍하고 불행하게 느껴진다. 스스로에게 안쓰러움을 느끼고 동정하는 꼴이라니. 나란 존재는 결코 이곳에 오아시스를 불러올 수 없는 놈일터. 누군가 나에게 물 한 바가지를 가져다 주기를 기다리고 있는 미련한 모습 따위. 그것을 만들어낸 잿빛의 검은 사막.


 주저앉아라. 지옥이 따로 없을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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