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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다훈 Jan 12. 2024

취기에 속아 배고픔을 잊다

사탕 같은 성공이 잊게 만든 것

 2002년 월드컵, 아시아는 축구 변방지였다. 그런 와중에 동북아시의 작은 나라에서 열린 월드컵에서 주최국이 4강에 오르는 기염을 토한다. 당시 감동인 거스히딩크는 우리나라를 사상 처음으로 8강에 올려놓고도 ‘나는 아직 배고프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처음에는 이게 무슨 뜻인지 몰랐다. 배고프단 표현을 왜 저기서 쓰는 걸까-하는 생각이 들어서 어른들에게 물어봤다. 정말 배가 고파서 고프다고 한 것이 아니라 아직까지 채우지 못한 자신의 목표에 대한 갈망이라는 설명. 이조차 너무 어려워서 몇 년간 이해는 못하고 아무렇게나 썼다.


 그냥 친구들과 무언가를 하다가 나에게 뭔가 하고 싶은 게 있다면 농담처럼 그것을 이루기 전에 이런 표현을 종종 쓰곤 했었다.


 그러다 쉽게 이룰 수 없는 목표들을 하나씩 마주하기 시작했다. 내 노력과 성실만으로 해결되기 어려운 것들. 흘러주어야 하는 시간과 따라주어야 하는 운이 맞을 때까지 기다림이 필요한 목표들.


 나는 그제야 배고프다는 뜻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내가 아직 도달하지 못한 것에 대한 갈망이 무엇인지도 이해하기 시작했다. 눈앞에 잡힐 듯 말듯이 아른거리는 많은 목표들은 나를 미치게 만들 지경이다.


 분명 못 이룰 리 없다고 생각했지만 한편으로는 불가능한가 싶은 생각도 든다. 그렇기에 더욱더 원했다. 실패할 가능성을 마주하지 않으려 애써 성공한 결과를 바라봤다.


 그러다 나는 취해버렸다. 일전에 맛보았던 자그마한 성공들과 내놓아진 결과들에 자신을 맡겨버렸다.


 목표에 손이 닿지 않는 순간부터 그러지 않고서는 견딜 수가 없었다. 스스로를 저보다 높이 올려놓지 않으면 밑으로 추락해 버린 듯한 기분이 들었다.


 분명 아무것도 먹지 않았고 마시지도 않았는데 나는 취해버렸다. 대체 무엇에. 기껏해야 먹었던 것이라곤 잠깐 달콤하고 마는 작은 사탕들 뿐이었는데.


 그 사탕에 속아버렸다. 나는 내가 아직까지 배고픔을 느껴야 하지만 적어도 이 정도의 성공에 만족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래서 이 기분이 마냥 즐거웠다.


 어느 순간, 나는 붉은 진실을 깨달아버렸다. 내가 먹었던 사탕들은 나에게 잠깐 찾아온 행운에 불과했던 것. 나에게 남아있는 것은 거의 없다는 사실을.


 그렇다면 나는 더욱더 배고파져야 한다. 원하는 바를 갈망하고 미칠 듯이 달려들어야 한다. 하지만 그럴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만취해 버렸다. 이 기분으로 살아갈 수 없으리라 생각하고 나는 대단한 사람이라고 되뇌며 세상을 원망하기 시작했다. 내가 이뤄낸 것들이 빛을 보지 못하는 이유는 더 이상 나에게서 찾기 싫었다.


 마음이 편해졌다. 아무런 느낌이 들지 않는다. 세상의 수많은 풍파가 나에게 달려와 부딪혀도 고통은 느껴지지 않고 스스로 불구덩이에 걸어 들어가도 타오르지 않았다. 결국 드러누워버렸다.


 누워서 한참을 울었을 것이다. 아무리 취하고 취해도 결국 찾아오는 현실의 고통은 감추지 못했다. 애써 모른 척하던 것들이 하나 둘 다시 느껴지기 시작한다.


 모든 것을 토해냈다. 그 작은 사탕이 아직도 녹지 못하고 목에 걸려있었던 것인지 고통스럽게 했다. 끝끝내 모든 것을 뱉어내고 나서 옅은 빛을 띠며 그 더러움 속에서 빛나는 사탕을 보고 분노가 올라 밟아 찌그러트렸다.


 이제야 다시 배가 고프다. 이번 갈증의 목표가 나의 배를 채워주리란 보장은 없다. 이 길을 걸어가다 맛보는 작은 행복들에 취하지 않으리란 보장도 없다. 그럼에도 끝끝내 토하고 정신을 차려 다시금 달려가는 나에게 그 목표는 다가와 줄 것이다.


 행운을 꾀하지 말고 행복을 위해 달려 나가야 한다. 잠깐의 행운에 눈이 속아 스스로를 취하게 만들지 말고 자신이 하나하나 정성스레 만들어낸 행복이란 요리를 먹고 배를 채워야 한다.


 현실이란 길고 긴 장정을 위해서라도 든든한 배는 필수가 아닐까. 중간에 마셔야 할 것은 분명 술이 아니라 물일 것이다. 배고픔은 시간을 더디게 만들지만 취함은 시간을 빠르게 만든다. 내가 주저앉는 다면 따라잡지 못할 지경으로 흘러가버릴 것이다.


 갑작스레 인생의 목표 같은 거창함을 세우리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렇게 하지 못한 위인임을 알고 있다. 하나하나 이뤄가는 작은 목표들에 쉽게 취할 성공에 미쳐있는 목마른 사람인 것도 안다. 아, 어렵다.


 겨우 시 만들어낸 내 요리보다 달콤한 사탕을 거부하기도 목 넘김이 힘든 물보다 쉬이 넘어가서 기분 좋게 만들어 주는 술을 거부하기도 너무 어려운 일이다.


 지금 당장의 한 끼를 기가 막히게 만들어보아야겠다. 다 먹고 나서 마시는 물 한잔이 달콤할 만큼. 그런 삶을 살아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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