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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다훈 Feb 01. 2024

부모님의 사랑에 이유가

우리의 인생이 처음이듯이 부모도 부모의 삶이 처음이다.


사랑은 당연한 거라 생각했다. 부모의 사랑이 자식에게 오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며 무조건 적인 거라 생각했다. 내 엄마, 아빠니까 나를 사랑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에 이유 따위가 필요한가.


이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이유 따위는 필요 없는 것이 맞았다. 단순히 자신들의 삶에서 부부의 연을 맺고 자식을 낳음으로써 책임을 가지게 됨이 나에 대한 사랑에 이유는 아니다.


하지만 주어진 책임은 분명한 것이다. 나에 대한 무조건적인 사랑을 주는 것이 당연히 아니라 그들 스스로 나에 대한 책임을 지는 행동이었다. 또한 그 책임과 의무가 불편함으로 생각하시진 않는다. 그것이 바로 내가 배운 부모의 사랑이었다.


나도 당연했다. 자식으로서 부모를 사랑하는 것은 단순히 윤리와 효심 가지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 하지만 나는 책임이라기보다는 이유가 있었다. 나에게 주시는 사랑에 대한 보답과 무엇보다 나에 대한 책임을 지어 주시는 것에 대한 감사함. 이건 내가 익힌 자식의 사랑이었다.


어릴 땐 아버지는 나를 사랑하지 않으시는 줄 알았다. 그때는 나에게 직접적으로 가까이서 챙겨주고 말해주는 어머니가 주는 것이 사랑인 줄 알았다. 누가 봐도 나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나에 대한 애정을 눈으로 보여주시는 것은 어머니였으니까. 그래서 나도 어머니를 사랑했다. 어릴 적에 아버지를 사랑했었냐고 물었다면 뭐라고 답했을지는 모르겠다.


모두를 일반화하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아무래도 아들이다 보니 자라면 자랄수록 아버지의 사랑이 얼마나 대단한 것이었는지 깨닫는다. 어머니가 집안에서 우리에게 따스함을 주었다면 아버지는 집 밖에서 우리에게 안락함과 안전함을 주었다. 어머니의 온기가 온전할 수 있었던 것은 아버지의 그 사랑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또한 모두가 그렇다기보다는 내가 본 바로는 딸은 조금 달랐다. 아버지의 사랑이 굉장했음을 느끼는 것은 맞지만 어머니의 희생에 대한 연민이 더욱 생겨나는 듯했다. 당장 우리 윗 세대까지만 해도 가부장적인 시대였다. 그런 사회에서 엄마가 여자로서, 어머니로서 겪고 견뎌야 했던 희생이 더욱 와닿는 듯했다.


모두가 알 것이다. 우리의 부모, 아버지와 어머니가 자신들의 삶이 아닌 누군가의 아빠, 엄마로서 살기 위해서 포기해야 했던 수많은 것과 견뎌내고 짊어진 책임의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았음을. 대체 어떻게 그런 삶을 지금까지 살아오셨는지에 대한 존경심이 생겼을 것이다. 그건 분명 우리에게 ‘부모’라는 말을 들을 자격이 있는 분들이기 때문이다.


그렇지 못한 이들도 많다. 심심치 않게 들려오는 아동학대에 대한 소식들은 충격적이다. 자신이 낳은 아이를 소중한 생명이 아닌 성과물로 보는 이들 혹은 자신에게 떠 안겨진 짐으로 생각하는 이들, 또는 자신의 소모품정도로만 생각하는 이들. 이들은 각각의 방법으로 한 생명을 짓밟는다.


아이를 위한 것이라며 행하는 아이를 억압하는 행동과 자신에게 피해를 준 것은 아이라며 아이를 증오하는 행동과 결국 자신의 아이고 자신이 부모라며 그 권리를 왕처럼 행하는 이들. 이 사람들은 부모를, 부모의 사랑을 논할 자격이 하나도 없다.


하지만 자식은 어떠한가. 부모는 결혼과 출산으로 얻어내는 성취지위라면 자식은 태어남으로써 가지게 되는 귀속지위다. 이렇다 저렇다 하더라도 결국 나의 부모라서 가지게 되는 연민은 어쩔 수 없는 법.


나는 이들이 부모로서 행하는 행동임에 자부심을 가지고 사랑이라 말하는 모습이 너무 싫다. 이들이 말하는 사랑 하니까-라는 말이 얼마나 증오스러운가. 모든 사랑은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는가.


아름다운 감정으로 생각해서 파고들었던 감정은 점점 그 밑바닥을 보이게 한다. '사랑'이란 감정을 이기적으로 사용할 때에 나타나는 추악함은 그 어떤 것도 따라잡을 수 없었다. 제일 아름다운 감정인만큼 제일 추악한 감정이기도 하다.


부모님께 감사한다. 그 모든 길이 정답이라 부를 수는 없었지만 나에게 있어서 만큼은 최선이었고 최고의 선택이라고 믿는다. 결코 나에 대한 감정에 거짓은 없었던 사랑을 말로 다 감사할 수 없다. 내가 감히 부모님의 사랑을 평가하기엔 한참 모자란 자식이지만 분명 내가 느끼는 것이 제일 확실한 것 아닐까.


차마 사랑한다는 말을 앞에서 직접 해드리진 못하지만 나 또한 부모님을 사랑한다는 말을 당연하게 할 수 있다. 정말 아무 이유 없다. 나에게 '부모'라는 자격을 완벽하게 갖추고 계신 분들이기에 그냥 그런 감정이 자연스레 나온다.


자식으로서의 사랑도 다 알아차리지 못했다. 언젠가 부모로서의 사랑을 알게 되는 날이 올까. 온다면 나는 우리 부모님처럼 자식에게 부모의 사랑을 온전히 느끼게 해 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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