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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다훈 Feb 08. 2024

따스함을 내려놓고 간 강아지

기분이 우울하다. 강아지를 한 마리 받았다. 별다른 생각은 없었다. 얘 때문이라도 산책을 가고 몸을 움직여 밥을 챙기고 화장실을 봐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집에 데려왔다.


나에게 너는 동기에 불과했다. 삶에 지친 내가 또다른 활력을 넣어줄 동기가 되어줄 것이라 믿고 수단으로 사용하려 했다.


너를 볼 때 자그마한 모습에 귀엽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귀엽게 보이지는 않는다. 아무데나 변을 봐서 치우게 만드는 것, 밥을 주고 나면 꼭 산책을 가자고 졸라서 편히 있게 못하는 것, 대뜸 다가와서 침을 묻히면서 핥는 것. 나한테 애정을 표하는 것은 알겠지만 조금 더러웠고 귀찮았다.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같이 지내다가 너가 조금 아프거나 사고를 많이 친다면 버릴 생각도 했었다. 세상에 수많은 유기견과 유기묘에 대한 질타와 애완동물이 아닌 반려동물이라고 떠들며 동물을 보호하라고 하는 위선자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냥 내 마음대로 데려왔으니 마음대로 내놓을 수도 있는 거잖아. 물건이랑 다른건 움직이는 것 뿐이잖아. 오히려 물건보다 번거러운게 많으니 더 버릴만 하잖아.


그러다 너가 진짜 아팠다. 내가 들어오면 뛰어다니며 반기고 당장에 달려와서 매달리던 녀석이 나오질 않고 낑낑거리고 있다. 그때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모르겠다. 정신을 차려보니 이미 너를 데리고 동물병원에 들어와 있다.


너가 진료를 받는 동안 당황스러웠다. 동물병원이 비싼 것을 알고 돈을 걱정하며 진료비를 검색하고 약값을 보면서 통장 잔고를 확인하고 있었다. 만약 수술을 해야 하는 거라면 어떻게 할까-하는 고민이 들었다.


진료가 끝나고 너를 다시 봤다. 앞의 의사 선생님이 뭐라고 하는지 제대로 들리지 않는다. 축 처진 모습으로 있는 너가 너무 낯설다. 순간 손으로 너를 쓰다듬었다. 너는 좋다고 옅은 웃음을 지으며 헥헥 거렸다. 선생님이 나를 부르고 중성화와 예방접종에 관한 얘기를 했다. 다 하겠다고 말했다.


하루 입원을 하게 돼서 혼자 집으로 돌아왔다. 집이 넓어보였다. 귀찮게 하는 녀석도 없고 자유로웠다. 오랜만에 깨끗하게 치운 방이 유지되는 모습을 봤다. 슬프다. 집이 깨끗해서, 조용해서, 편안해서 마음이 아프다.


뜬 눈으로 밤을 새웠다. 동물병원이 열 시간이 다되갈 때 병원앞으로 가서 기다리고 있었다. 의사선생님과 인사를 하자마자 안으로 들어가 너를 찾았다. 이름을 지어주지 않았던 탓에 강아지라고 적혀있는 너의 병실이었다. 이제 조금 살만한지 꼬리를 흔들며 덜 깬 눈으로 내쪽으로 와서 나오려고 하는 모습에 너무 기뻐서 눈물이 났다.


선생님께 감사 인사를 하고 너를 데리고 집으로 향했다. 까먹고 케이지를 들고 오지 않은 탓에 초여름인데도 혹시나 추울까봐 품에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오니 나도 땀에 젖고 너도 땀에 젖어 있었다. 급히 물을 먹이고 처음으로 목욕을 시켜줬다. 짜증이 나보였지만 잘 참아주는 것이 보였다.


이름을 짓고 강아지 용품을 사고 싸구려 사료에서 좀 비싼 사료를 사고 각종 간식을 사고 장난감을 샀다. 통장을 보지 않았다. 대신 너를 위한 계좌를 하나 새로 만들었다. 집으로 돌아와 산책을 데리고 나왔다. 신이 나서 뛰어가다가 멈춰서 나를 보고 다시 뛰어가다 나를 본다.


집으로 돌아왔다. 너를 가두던 울타리를 치웠다. 갑자기 사라진 울타리에 당황하며 그 주변을 맴돌았지만 이내 내가 부를 때 마다 달려오고 달려오다 내 옆에 붙어서 떨어지지 않았다. 더이상 자신을 막을 것이 없다고 생각했을까, 온 집안을 누비기 시작했다.


집이 조금 더러워지고 내것이 아닌 물건들로 채워지고 내 공간과 시간이 줄어들었다. 행복했다. 이 불편함이 미친듯이 행복하다. 그래, 나는 이제 너를 사랑하나보다.


나는 밝아졌다. 주변에서 좋은 일 있냐고 물어보는 일이 잦았다. 나에겐 별다른 변화가 없다. 너와 함께하는 것이 익숙해진 어느날, 너는 나를 떠났다.


급작스럽다. 아무런 증상도 없었고 별다른 문제도 없었다. 정기적으로 병원에 가서 검사도 받아봤지만 이상이 없었다. 근데 너는 나를 떠났다. 대체 왜, 무엇 때문에.


내가 잘못한게 있는 걸까. 사실 너는 나에게 사랑이 아니었던 걸까. 함께 했던 시간들이 모두 거짓말인 것 처럼 느껴졌다. 나에게 따스함을 주던 너는 차갑게 늘어져있다. 무언가 빠져나간 것처럼 느껴진다. 아직도 부드러운 털을 가지고 있는 너는 차갑다.


마치 건전지가 빠진 로봇같다. 눈물을 흘릴 새도 없었다. 병원에서도 원인을 명확히 모르겠단다. 이미 죽은 너에게 할 수 있는 조치는 없었고 나는 너를 화장해서 집으로 데려왔다.


너무 따뜻하다. 화장을 마친 너의 함에서 느껴지는 따스함이 거짓말 같았다. 그래, 너는 차갑지 않았는데. 함이 식어서 차가워질 때 쯤, 눈물을 그쳤다.


짧은 시간이었다. 그 시간에 나를 얼만큼 바꿔놓았는지 모른다. 너가 나에게 가져다 준것은 단순한 행복이 아니었을 것이다. 너가 나를 떠난 것도 단순한 슬픔이 아닌 것 처럼.


사랑하는 법을 알려줘서 고맙다. 다시 또 사랑할 기회도 줬으면 좋겠다. 더 해줄게 없어도 못해준게 많다. 보고싶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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