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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다훈 Feb 15. 2024

스스로 버린 취미는 사랑이었다

취미가 처음으로 나에게 돈을 벌어다 준 순간, 나는 더 이상 그 취미를 사랑할 수 없었다.


취미란 무엇인가. 사전에는 ‘전문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즐기기 위하여 하는 일’이라는 뜻이 1번으로 나온다. 그냥 단순히 우리가 생각하는 취미란 무엇인가. 피곤하고 힘든 일상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내 삐걱대는 삶에 스스로 윤활제를 바르는 행위가 아닌가.


세상에 수많은 취미가 존재한다. 그중에 사진 찍는 사람들이 수백만 원짜리 카메라 렌즈를 사고 이유 없이 피곤한 몸을 이끌고 주말에 어디론가 향하는 것 따위에 시간과 돈을 쓰는 걸 아깝게 여기지 않는다. 왜? 그 행동이 피곤하고 힘든 나한테 휴식보다 더한 기쁨과 편안함을 불러오기 때문에.


운동하는 사람들은 지친 자신의 몸을 이끌고 헬스클럽에 가는 것이 또 다른 노동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오히려 몸에서 근육통이 느껴지지 않는 것에 화가 날 지경이다. 게임하는 사람들은 고작 데이터조각이라는 소리를 듣는 것에 돈을 쓰는 것을 아끼지 않는다. 시간은 신경도 쓰지 않는다. 그런 취미가 끝나고 나면 피곤함과 육체의 고통이 밀려올 때도 있지만 자신이 하는 취미 내에서 이뤄낸 성과들과 재밌었던 기억들이 이를 견뎌내게 한다.


작은 렌즈 안에 풍경을 담아 사진 속에서 자신이 느낀 것을 표현할 수 있을 때까지 열심히 찍고 싶다는 취미가 있던 친구는 전혀 관련 없는 아르바이트를 몇 개월을 해서 돈을 모아 비싼 카메라와 렌즈를 구입했다. 이윽고 무작정 버스를 타고 떠난 여행에서 정확한 명칭도 기억이 나지 않는 곳의 야경을 찍어서 SNS에 올렸었다. 헌데 아름다운 풍경에 그 지역의 홍보 관계자가 사진을 자신들에게 팔아달라는 부탁을 했고 생각보다 꽤 되는 돈을 받았다. 자신이 재밌는 일을 하면서 돌아다녔더니 돈이 따라온다. 얼마나 설레고 재미있는 경험인가.


이 친구는 그 이후에도 여러 곳을 다니며 사진을 찍어 올렸다. 종종 들어오는 사진 판매 혹은 사진 요청에 자신의 취미에 더욱 활력을 불러일으키는 부수적인 요소들이라 생각하며 모든 것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렇게 순탄하게만 흘러갔다면 꽤나 유명한 사진가가 되었을 것이다. 한두 번씩 오던 제의는 한 달에 한 번 오거나 말거나 하는 정도로 변했다. 분명 처음에는 취미활동을 하는데 따라오는 수입에 행복해했지만 지금의 친구는 수입이 있는 활동에 집중한다.


그에게 사진이 더 이상 취미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일까. 사진을 찍을 때 가장 먼저 생각하는 것은 ‘돈이 되는가?’가 되었다. 사진 속에서 느껴지는 것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어떤 구도가, 채도가 사람들이 제일 좋아하고 선호하는 지를 알아내려 노력하지 그 속에 담긴 감성 따위는 자신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건 돈이 안되니까.


사진을 찍으러 가는 길이 즐겁지 않았다. 오늘은 대체 어디에 가서 무엇을 찍어야 사람들의 관심을 모을 수 있고 다른 곳에서 제의가 들어올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유명하거나 인기 많은 지역을 가서 사람들에게 부딪히며 사진을 찍는 것이 마치 휴일의 출근 같았다. 차를 타고 멀리 나갈 때 차비를 신경 쓰기 시작했고 더 비싼 장비를 구매하자니 저번달에 사진으로 벌어들인 수익은 그만큼이 되지 못한다.


그는 이미 자신이 하는 모든 행동이 취미에 대한 자신의 즐거움을 위한 현명한 소비라는 명목보다 이를 통한 수입을 얻기 위한 투자로 생각하고 있다.


한 달 정도 그의 SNS에 사진이 올라오지 않는다. 오랜만에 연락해서 물어보니 더 이상 사진을 안 찍는다고 한다. 자신에게 들어오는 제의도 없고 세상에 많은 재능 넘치는 전문가들에 밀려나서 재미가 없단다. ‘이제 재미없어서.’ 같은 대답이 아니었다.


그는 분명히 사진을 찍고 자신에게 감명 깊은 풍경을 마주하는 것이 즐거웠던 사람이었다. 지금 와서 그런 성격이 변했을 리는 없다. 하지만 더 이상 사진은 그에게 그런 취미가 되지 못했다. 자신이 진정으로 즐거워하던 것이 돈벌이가 되어버린 순간 그는 자신이 평생에 걸쳐서 사랑할 수 있었던 것을 하나 잃은 것이다.


아 얼마나 두려운가. 내 인생의 전반기에 맞이한 재밌는 놀이가 평생을 함께 할 것처럼 수많은 시간을 보내고 돈을 투자하며 쌓아온 그 기록들이 고작 그 어려움 한 번에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는 꼴이라니.


단순히 수단이었다. 눈앞에 놓아진 힘들고 어렵기만 한 현실의 벽들을 마주하다 옆으로 돌아서서 잠시나마 잊게 해주는 고작 잠깐의 유흥들이었다. 그랬던 작은 일들이 만들어내는 행복과 만족감은 점차 쌓이고 쌓여서 무시하지 못할 만큼의 크기가 되었다. 내가 쌓아 올린 것이다. 벽으로 보이지 않았고 그 벽을 넘어서게 해주는 발판으로 느껴졌다. 어떻게 사랑하지 않겠는가. 홀로 상대해내야 했던 커다란 벽을 넘어서게 해주는 도우미 같은 존재가 나의 곁에서 떠나가지 않는데.


그렇기에 더더욱 미운 것이다. 쌓아 올린 것에서 이질감이 느껴지는 순간 내 발판은 또 다른 커다란 벽이 되어 버릴 뿐이다. 나는 무엇을 바란 것인가. 내가 넘고자 했던 것은 무엇인가. 정말 내 눈앞에 놓아진 것이 나에게 행복을 전해주던 것은 맞는 것인가.


아 눈앞이 깜깜해진다. 이제 와서 다른 것을 둘러보려 옆을 보아봤자 지나온 시간들에 남은 아직 쌓아 올리지 못한 벽돌들이 눈에 밟힐 뿐이다. 조금만 더하면 이 판을 밟고 벽을 넘어설 수 있었을 것인데 넘어져버린 자신이 원망스럽다.


고통을 잊게 해 주었고 행복을 주었고 의지를 했다. 사랑이라고 부르지 못할 이유 따위는 없다. 분명 그랬다. 내가 사랑을 시작했고 변한 것도 나다. 하지만 원망스러운 것은 쌓아 올려진 시간과 돈이다. 우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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