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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다훈 Feb 22. 2024

마냥 무겁기만 한 감정

가벼운 사랑

사건과 언행, 아무것도 아닌 의미부여 따위에 일희일비하며 흔들리는 것 따위를 사랑이라 부르는 것을 싫어했다.


참 잘났다. 남들이 어떤 생각인지도 모르면서 가벼이 말하는 사랑과 애정에 혐오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모든 것은 내 기준에 맞춘 생각이다. 물론, 내 입장이니 주관이 확실한 것은 맞으면서도 그런 것을 감정에 대한 정의처럼 생각하는 행위 따위가 정당화되진 않는다.


과거의 내 생각에 대해서 질타하거나 후회하진 않는다. 난 어렸다. 그래서 누릴 수 있었다. 세상의 주인공이자 나의 생각이 곧 정답이라고 말하는 알량한 폭의 세상을.


그리고 조금 여러 어린 세상을 보게 됐다. 처음에는 말도 안 되는 세상이 넘쳐나는 것에 적응하기 어려웠다. 무엇보다 무겁고 어려운 감정이라 신중히 접해야 된다고 생각한 사랑을 가볍게 다루는 이들이 많았다.


아무런 감정 없이 연애를 시작하고 아무것도 느끼지 못할 '사랑해'라는 말을 내뱉는다. 마치 자신이 정말 사랑을 하는 것처럼. 그렇게 문자를 보내면서도 무표정으로 주변에 언제 헤어질까 하는 고민을 뱉는 모습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런 감정으로 왜 연애를 지속하는 것인지 묻기도 했다. 상당히 무례할 수도 있지만 어린 나이의 특권이었다. 친구는 이미 시작해 버린 연애에 대한 책임이 있지 않을까-라는 답을 했다. 혼란스럽다. 그 책임은 온전히 사랑함으로써 져야 하는 것이지 있지도 않은 감정을 연기하며 대하는 것이 맞는 것인가.


물론 지금도 그런 상황을 만드는 것을 좋아하진 않는다. 다만 이해는 할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은 큰 차이였다.


사랑이라는 경험이 없어도 그 세상 자체는 자라났다. 나는 타인의 사랑에서 보고 배웠으며 나의 사랑에서 배우고 느꼈다. 사랑이라 부르기 민망할 정도의 경험일지라도 그때의 감정에 이 단어를 붙이는 것이 이제는 아무렇지 않다.


고작 이게 뭐라고 어려워해야 하는가. 외출복이었다가 이제는 목도 늘어나고 색도 바래 잠옷으로 쓰는 반팔 따위라도 편히 입고 잠에 들 수 있음에 그 옷을 사랑하는 것이다. 그래, 사랑은 그냥 내 편의에 맞춰 넣을 수 있는 간편한 감정이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 말하는 것에 있어서 생각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 '나는 너를 사랑해' 같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명제로 두고 나의 지침으로 삼아야만 하는 것이 사랑인가. 그냥 하는 것이다. 분위기에 휩쓸려서라도 혹은 단순히 외모만 보고라도 반대로 오랫동안 지켜보고 사람의 됨됨이를 보고 나서라도 하는 것은 모두 동일한 사랑이라 부르는 감정이다.


그 깊이의 차이를 가늠하며 생각하는 것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짓인가.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마음은 모른다 했다. 그런데 감히 이런 사랑은 얕아서 의미가 없고 이런 깊은 사랑만 인정받을 수 있다고 마음대로 판단했던 치기.


에로스적 사랑으로 단순히 서로를 탐하기만 하는 것을 부정할 수 있는가. 아가페적인 사랑으로 타인을 위한 희생을 감내하며 자신을 갉아먹는 것만이 진심이 담긴 사랑인가. 그렇다고 필리아적인 사랑만을 추구하며 서로에 대해 순수히 쌍방적인 마음을 가져야만 사랑인가.


사랑에 대한 종류를 정의할 수는 있어도 감히 사랑이다 아니 다를 나누기란 어렵다. 일부의 사랑이란 핑계를 대는 치사한 부류를 제외하곤 말이다.


나는 무겁게 사랑했다. 사랑이란 감정은 쉬이 생겨서는 안 되며 그 감정이 생겨났으면 정말 시간이던 노력이던 정성을 다해 들여야 한다는 생각이 가득했다. 이는 모든 것에 적용됐다. 이성에게도 가족에게도 물건에게도 취미에게도.


물건 하나 쉬이 버리지 못했다. 이 물건을 가지게 된 계기와 가지게 되었을 때의 행복, 사용하던 기억들이 달라붙어서 떨어지지 않아 죽음(고장)을 맞이하지 않는다면 버리지 말아야 할 것 같았다.


점점 그런 빈도가 줄었다. 물건에 대한 애정보다는 중요성과 필요성으로 구분하기 시작하고 취미에 대한 애정보다는 실용성에 대해 구분하고 가족에 대한 무조건적인 애정보다는 좀 더 자신을 챙기기 시작했다. 이상하게 이성에 대해서는 이 생각이 쉬이 변하지 않음이다.


사랑이 존재하지 않는 관계는 부적절하다-라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운명론자처럼 서로의 사랑이 확실하게 느껴져야만 하는 사랑이라니, 나는 아직까지 드라마 속 세상을 꿈꾸는 듯하다. 이를 벗어나기 위해 아무렇지 않은 연애를 몇 번 해보았으나 사람 참 쉬이 변하지 못한다.


이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뜻은 아니나 좀 더 가벼운 마음을 가지지 못한다면 내가 바라는 사랑을 만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은 든다.


이렇게 떠드는 와중에도 떠나보낼 사랑은 몇 명이고 몇 개인가. 나는 수많은 사랑을 쏟았지만 정작 사랑을 받고 있음을 느끼지 못한다. 아직까지도 사랑은 나에게 너무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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