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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다훈 Mar 07. 2024

아버지가 지고 있던 책임이란 것은

거실 소파에 앉아서 어머니가 늘여놓는 얘기에도 별다른 반응 없이 고개를 끄덕이시거나 짧은 대답이 전부신 아버지. 경상도 남자의 표본으로 삼아도 될 정도로 무심하고 표현이 없으시다.


아마 그 시절에 살아온 기성세대에게서 숨길 수 없는 모습일 것이다. 가부장적인 모습으로 보이는 상황들이 자주 일어나서 절대 아버지를 닮지 않겠다는 다짐도 많이 했었다.


말을 많이 하지 않고 표현도 잘하지 않는 모습도 너무 서투르고 가족을 배려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평소에 말도 많았고 표현도 스스럼없었던 나는 아버지와 닮을 일은 없을 것이라 생각했었다.


시간이 흐른다. 세월이 지나고 나이를 먹고 강산이 변하듯 사람도 변한다. 바뀐 생각의 변화에서 아버지에 대한 것은 간단했다. 원래는 아버지로서의 책임감을 다 하시는 모습을 존경했다면 지금은 그가 살아온 삶에 대한 존경이 조금씩 자리 잡는다.


이와 함께 감정을 숨기고 말을 아끼는 모습에 부정적이기만 했던 내가 점차 그를 닮아가고 있다.


말을 해서 많은 것을 공유하기보다는 적게 해서 최대한 숨기는 것이 편안하고 감정을 내비쳐서 나를 표현하는 것보다 감정을 죽여서 모든 상황에 공정히 대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게 됐다.


또한 가까운 이와 편해지면 편해질수록 이들에게 나의 불만이나 스트레스를 쉬이 표현하게 되는 자신이 싫어서 혹여라도 또다시 쉽게 그들에게 상처를 주거나 나의 짐을 분담하게 할까 봐 아끼게 됐다.


기쁨을 나누는 것은 함께 행복하기 위한 것이다. 슬픔을 나누는 것은 이를 나누어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곱절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의 슬픔을 주변에 나눌 이유가 없지 않은가.


나는 슬픔을 나누어 함께 고민하고 아파하고 위로한다면 견뎌내기 쉬울 거라는 생각이 있었지만 스스로 견뎌내고 이겨낸 다음에 응원과 격려보다 칭찬과 존경이 더 효율적임을 알게 됐다.


최근에 유행하는 허락을 구하기보다 용서를 비는 것이 빠르다는 것처럼 나만의 일을 스스로 먼저 처리해내고 나서 이러한 일이 있었다는 것을 간단명료하게 말하는 게 스스로도 타인에게도 좋지 않을까란 생각이 깊어진다.


또한 얄팍한 책임을 가지고 있는 지금, 이보다 더 큰 책임을 지게 된다면 스스로 어떠한 행동을 하고 어떤 마음가짐으로 자세를 잡을지를 고민할 때면 곧장 떠오르는 것은 아버지다.


그가 해온 방식과 견뎌내는 모습이 나에게 있어서 유일한 교과서와 같았다. 그렇기에 조금씩의 책임이 주어지면 주어질수록 그를 닮아갈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가 살아온 길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나 모든 것이 옳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도 인생이 처음이고 아들이 처음이며 누군가의 오빠, 형, 동생이 처음이고 남편이 처음이고 아버지가 처음이다. 어떻게 모든 길에 정답을 택할 수 있을까.


그가 선택한 길에 정답이 아닌 길이 있었을지라도 그 길이 오답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의 선택에 대한 결과가 단순히 O, X 따위로 나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나는 오히려 그가 선택한 정답이 아닌 길을 존중한다. 단순히 정답을 고르기보다 그 외의 길을 택함으로써 스스로 인내하고 견뎌낸 것들이 더욱 늘어났다. 그럼에도 스스럼없이 그 길을 걸을 수 있었음은 확실한 책임감이 존재했기 때문 일터.


무심코 자신을 다치게 하고 스스로 상처 입으며 다른 이들을 지켜내는 모습이 미련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그가 어떤 마음으로 그런 선택을 한 것인지 알 수 있는가.


나는 쉬이 그런 선택을 하기 어려울 것 같다. 나 자신을 포기하고 남을 위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두렵고 그 이후의 일을 온전히 책임져낼 자신이 없다. 하지만 아마 그렇게 할 것이다.


이런 나의 모습을 싫어하는 이들이 있을지라도 나의 상처를 보고 스스로 아물게 하는 것이 남의 상처가 언제 아물지를 지켜보는 것보다 마음 편할 것이다. 이런 내 행동에 나의 주변인이 나에 대한 걱정과 불안을 조금 가지게 될지라도 아무렇지 않은 척하기 위해 입을 다물 것이다.


그런 책임을 이고 나아가는 것에 덤덤함을 보여준 것이 나의 아버지니까. 하지만 아버지, 딱 하나만큼은 못 배울 것 같다. 난 나 자신의 존재를 아예 지워내진 못할 것이다. 누군가의 아들로, 누군가의 남편으로, 누군가의 아버지로 살아가더라도 나, 자신으로서의 삶도 지켜내기 위해 아등바등 노력할 것이다.


그러니 당신도 이제는 자신의 삶을 생각해주셨으면 한다. 그동안 이고온 많은 고통과 책임들 일부에서 도망쳐 낸 만큼 마음 아프지 말고 자신을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당신의 자식을 위한 아버지의 마음으로 라도 이제는 행복하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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