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다훈 Mar 21. 2024

털어내지 못해 떨어지는 자

나는 운 좋게도 세상에 태어난 이유를 금방 찾았다. 누구나 하는 공부로 생각됐지만 나에게는 달랐다. 어릴 적 부모님이 사다 주신 전집에 있던 과학책들을 읽으면서 자신만의 연구를 통해서 원하는 것을 만들어내고 알 수 없었던 것들을 밝혀내는 이들이 너무 멋졌다.


닮고 싶었다. 나도 그중에 한 명이 되고 싶었다. 나도 퀴리부인처럼 노벨상을 타고 아인슈타인처럼 세상을 바꿔놓을 정도의 연구를 내놓고 싶다. 캐리어처럼 나의 필요에 의해 필요한 것을 만들어내고 싶다.


어릴 때 입버릇처럼 말한 것이 있다. 꼭 훌륭한 과학자가 되어서 엄마한테 필요한 물품을 만들어주겠다고. 자동으로 청소를 해주고 빨래를 해주고 설거지를 해주는 기계를 만들어서 편하게 해 주겠다고.


기본적인 욕구를 깨닫고 결핍욕구를 알아채기도 전에 나는 성장욕구를 갈망했다. 어쩌면 이는 나의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끼쳤을지도 모르겠다. 남들과의 관계에 대한 필요성을 크게 느끼지 못했고 타인에게서 받는 인정과 사랑을 생각하지 않았다. 오직 나만의 목표가 중요했다.


이 성격은 나를 자기 주도적이고 도전적인 성격으로 자라게 도와주었지만 반면에 이기적이고 반사회적인 성격을 쥐어줬다. 그래도 크게 문제는 없었다. 주위에 친구가 없는 것보다는 과학 시험에서 문제 하나를 틀리는 것이 더 신경 쓰였다.


자라면 자랄수록 나의 모난 성격은 타인에게서 멀어지게 만들었고 이로 인한 따돌림과 괴롭힘도 생겼다. 여느 또래 아이들처럼 함께 만나서 놀고 무언가를 하는 일상이 부러워지는 순간, 나는 점차 느끼기 시작했다. 난 범인이다.


상상하는 이들에게 닿기엔 너무 멀어져 있었다. 끽해봐야 몇 안 되는 어릴 적 호기심으로 바라던 것 만으로 닿을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그래서 대학을 너무 가고 싶었다. 대학에서 이에 대해 더욱 깊이 배우고 분야에서 성공한 교수의 밑에 들어가 연구를 하면서 나의 실력을 키우고 싶었다.


성적이 좋았던 덕에 우리나라에서 이름 높은 교수의 밑에 들어갈 수 있었다. 효율적이진 못하더라고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에 나를 마음에 들어 하셨다. 비록 내 대학생활에 남은 것은 남들과 잘 어울리지 못한 아싸의 높은 학점밖에 없었지만 다른 것 없이 성실함덕에 대학원을 들어갈 수 있었다.


대학원 생활은 나 혼자서 하는 것이 아니었다. 나의 성격이 이렇더라고 학창 시절에는 나만의 공부를 하고 나만을 위한 행동을 해도 이해되고 충분히 이뤄낼 수 있는 것들이 많았지만 대학에 온 순간부터 혼자서 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더더욱 절실히 느꼈다.


타인들과 쉽게 교류하고 의견을 조율하는 모습에서 나는 스스로 소외되었다. 쉽사리 어울리지 못하는 나의 모습에 원망스럽기도 했다. 지독하게 피곤하고 의미 없는 일이지만 관계를 얄팍하게나마 쌓고 조율하는 것을 신경 쓰고 있었다. 대학원은 이보다 깊어야 했다. 정말 고통스러운 삶이다.


하지만 내려놓을 수 없었다. 난 아직 나의 연구를 해내고 싶다는 욕구에 가득 찬 열정 넘치는 청년이다. 고작 이런 일 때문에 포기할 수는 없다. 억지로라도 교수의 비위를 맞추고 다른 연구원들과의 소통과 합작을 이뤄냈다. 그 과정에서 나의 생각과 다르게 흘러가는 수많은 일들에 화가 치밀어올라 가끔 미친 듯이 술에 취해 토하곤 했지만 괜찮았다. 나의 이름은 점점 내가 바라던 이들에게 닿을지도 몰랐으니까.


대학원을 졸업하고 우선은 연구직으로 취직에 성공했다. 나를 애써 꾸미고 아무것도 한 것 없이 그저 공부만 하던 놈이 자기소개서를 애써 꾸며내고 거짓된 모습을 연기해서 붙은 곳이다. 다시 나의 모습으로 돌아가 다닐 수 있을 리 없다. 이를 위해서는 결국 나는 사회적인 놈이 되어야 한다.


사회는 더욱 차가웠다. 내 의견 따위는 쉽게 묵살당했고 때론 내놓지 못하는 것에 질책당했다. 적응이 되지 않았다. 어느 순간에 말하고 어느 순간에 말아야 하는지를 모르겠다. 연구하는 일 외에도 상사에게 해야 하는 행동과 말, 연계되어 있는 다른 연구실과의 공유에 대해서 매 순간 필요한 것은 커뮤니케이션이었다. 내가 제일 못하는 것.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것을 위해서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것을 해야 했었다. 점점 둘이 겹쳐져 보이기 시작했다.


그때부터일 것이다. 나는 내가 태어나 얻은 가장 소중한 욕구, 일에 대한 사랑을 잃었다. 단순한 호기심으로 만들어낸 다이아몬드 원석 하나를 갈고닦아 반짝이게 세공을 해내고 싶었으나 열심히 하면 할수록 정체 모를 더러운 오물이 덕지덕지 달라붙었다.


이제 빛나는 보석 따위는 보이지 않는다. 과거의 나는 상상했다. 매일 늦은 새벽까지 연구를 계속하다가 도저히 안 되겠어서 지쳐 쓰러져 잠에 들었다가도 일어나 다시금 설레는 마음으로 연구를 시작하는 나 자신을 꿈꾸며 행복함을 느꼈다.


지금의 나는 후회한다. 매일 늦은 새벽까지 관심도 없는 분야에 대해 알아보고 연구하면서 시간을 때우다가 도망치듯 나와서 잠에 들 때면 내일이 오지 않았으면 했다. 연구실로 향하는 내 발걸음에 가벼움이나 행복을 기대하기란 사치에 가깝다.


내가 사랑했던 일에 달라붙은 것들을 떼어낼 수 없다. 사실 원래부터 붙어있던 것들인데 키가 작았던 나에게 보이지 않았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깔끔해 보이는 부분만을 보고 쫓았다. 빙산의 일각에 불과했던 부분이 나를 사로잡았고 그 외의 면들이 나를 괴롭게 했다.


모든 것이 사라졌다. 나는 그저 숨만 쉴 줄 아는 놈에 불과하다. 쫓던 꿈 따위는 잊은 지 오래고 스스로 원하고 쟁취하고 싶은 것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은지는 얼마가 됐는지 세지도 못한다. 원하는, 필요한 것을 만들어 내고 싶다고 다짐했던 나는 지금 세상을 도망치는 방법을 알아내고 싶다.


나의 사랑이 더러운 것으로 물들여진 것에 화가 나 사랑을 되찾고 싶은 마음이 아니라 내가 사랑했던 것이 상상하던 모습이 아님을 깨닫고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아, 어떤 삶이었던 걸까. 고작 이런 다짐 하나 이뤄내지 못할 얕은 놈이었다.


그래, 내가 도망친 이유는 사랑인 줄 알았던 것이 더러움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더러움으로부터 도망치는 것이지 두려움에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나의 사랑은 틀렸던 것이 아니라 몰랐던 것이다. 그러니 나는 잘못되지 않았다. 그럴 것이다.

이전 18화 초콜릿 하나와 사탕 하나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