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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다훈 Apr 04. 2024

빠르게 찾아와 느리게 사라지는 이가 남긴 것

사랑을 위해서 노력한다. 이는 좋아하는 사람이 생겨서 일수도 있으며 나를 좋아해 주는 이를 위해서 일수도 있으며 누군가의 마음에 들었으면 하는 마음일 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모든 사랑에는 노력이 들어간다. 스스로의 노력일 수도 있고 타인의 바람에 의한 노력일 수도 있다. 사랑은 그렇게 아름답다.


누군가에게 단순히 감정의 변화가 아니라 사람 자체의 변화를 불러일으키는 감정, 이 얼마나 숭고하고 존경스러운가.


나는 변하기 시작했다.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다. 스스로의 노력이다. 타인의 바람에 맞춘 사람이 되기 위한.


그 사람의 바람은 소박했지만 거대하며 단순하지만 어려웠다. 그야말로 모두의 인식 속에서 제각각인 좋은 사람들 중에 최선을 모으고 모아서 만들어진 듯한 모양새였다.


나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 했다. 사랑하는 사람이 원하는 모습이 되어서 완전한 사랑을 느끼고 받으며 나의 사랑 또한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 사람이 어떻게 나를 이렇게 까지 변화하게 만들었는지는 모르겠다.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짧은 찰나에 내 삶의 의미가 되었다. 이런 걸 운명이라고 하는 것일까-하는 생각도 하며 그 사람에 대한 사랑에 감탄했다.


우선 단정히 꾸밈을 시작했다. 청결하게 씻기, 꾸준한 손, 발톱관리부터 로션을 바르고 향수를 뿌린다. 눈썹도 정리하고 머리도 평소에 집 앞에 가서 대충 자르던 것이 아닌 유명한 미용실에 예약해서 찾아가 잘랐다. 아무 관심이 없었던 옷도 꾸며 입고 운동도 시작했다.


나를 조금 가꾸는 것 만으로 자신감은 올랐다. 그리고 그것에 근거도 명확했다. 그 사랑의 결실을 이뤄내는 성과를 거두었으니 어떻게 부정할 수 있는가.


내가 사랑하는 이와의 연애는 행복하다-라는 단어만으로 부족했다. 모든 행복이 나를 향해있는 기분이다.


나는 이런 행복을 그녀도 누렸으면 하는 마음에 노력했다. 좋은 남자친구가 되기 위해서 계획적인 삶을 살기 시작했다.


그녀와 함께 데이트를 할 생각에 미리미리 모든 것을 알아두고 예약했으며 그 상황에서 변수가 생기더라도 그녀를 위해 배려했다.


그녀의 의견을 존중했으며 언행에 친절을 담았고 매사에 배려심을 깊이 넣었다. 그녀는 이런 나를 좋아했다.


나는 좋은 사람이 되었다. 좋은 남자친구가 아니라 좋은 사람. 우습게도 사람의 이상형이란 고작 이런 단어로 정해질 수 있는 것이 아닌가 보다. 똑같은 행동을 해줬음에도 사람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 그녀를 위해 해 왔던 모든 행동이 그녀를 위한 나의 사랑에서 나온 감정이지만 그녀는 아니었다.


지친다는 말을 들었다. 변화를 경험하지 못하겠고 완벽한 내 옆에 있을 때 피곤함이 몰려온다고 말했다. 그녀를 위해서 하는 행동이라 생각했던 나의 완벽함은 조금 부담으로 다가왔나 보다. 나는 말했다. 너를 위해서라면 이마저도 고칠 수 있다고.


‘너의 그런 점이 질려. 내가 만나는 것이 입력값을 받아들이는 컴퓨터인지, 진실된 감정이 담긴 사람인지 구분이 안 갈 정도야’


충격. 나는 쓰러질뻔했다. 그녀를 위해 노력하는 모습만 보여준 나인데 이런 내 모습이 가짜로 느껴져서 싫어졌다니. 어떻게 이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나는 떠나는 순간에도 그녀에게 배려했다. 나는 너에게 좋은 사람이니까. 이 마저도 존중하며 친절히 배려하는 것이 좋은 기억으로 남아주리라 믿었다.


그리고 그녀는 끝내 눈물을 보였다.


떠난 이후에 나는 그녀를 놓지 못했다. 스스로를 가꿀 이유를 잃었다는 생각에 모든 것을 내려놓고 살까도 싶었다.


하지만 나는 이미 바뀐 채로 남았다. 오늘도 자연스레 일찍 자고 일어나 운동을 하고 깨끗이 씻고 로션을 바르고 꾸며 입은 체로 집을 나섰다. 목적지는 모른다.


밖에서 만나는 모든 이에게 나는 좋은 사람일 것이다. 네가 만들어놓은 사람이다. 그렇기에 내가 이런 행동을 할 때마다 떠오르는 네가 미치도록 미워서 잊고 싶었다.


그래서 아무것도 하기 싫었는데 나는 이미 그런 사람이다. 아, 나에게서 떠나간 것이 너지 내가 떠나보낸 것이 네가 아니었다. 나에게 넌 남아있는 사람이다. 어떻게든.


너를 위해서 한 행동들에 진심이 보이지 않는다고 했던 것은 왜일까. 나는 이미 이런 행동에 진심을 가득 담아서 애써 돌아오지 않은 이임을 알면서도 너의 자리를 닦아 빛내고 있다.


사랑이란 터널에 들어갈 때에는 아무것도 모르고 무작정 달려들어갔지만 그 터널의 끝무렵에 마주한 빛은 나를 주저하게 만들었다. 이제 나에겐 그 터널 속의 어둠이 더 포근하다.


여기에 남은 좋은 사람은 깨달았다. 나에게 남은 그녀의 흔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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