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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다훈 Mar 15. 2024

초콜릿 하나와 사탕 하나

2월 14일, 이 설레는 날에 나에게 남은 것은 딱 초콜릿 하나였다


아무런 사이가 아님을 알고 있었음에도 굳이 우정 초콜릿이라도 하나 받는다면 설레는 마음을 주체하지 못할 것 같았던 그런 날이다.


발렌타인 데이, 좋아하거나 연인사이에 초콜릿같은 것을 전하며 마음을 전달하는 날. 주로 여자가 남자에게 준다.


오늘 내 목표는 그냥 초콜릿 한 개였다. 기왕이면 의미도 담겨 있고 마음도 담겨 있으면 좋겠지만 그건 내 욕심인 것을 알아서 그냥 그거 하나면 됐다.


은근슬쩍 내 마음을 너에게 비치거나 사소한 것 하나하나 신경쓰면서 챙겨주고 아무렇지 않은 척 하려고 애쓰던 날들에 대한 보상으로 그거 하나면 계속하기에 충분했다.


차라리 내가 준비해서 줘볼까-했지만 그랬다간 내가 너를 좋아한다는- 주변에 자자하던 소문이 기정사실화 되어서 너에게 피해를 줄 것을 알아서 마음을 접었다.


캠퍼스에 다와가니 학생때와는 달랐다. 커플 한 둘이나 팔짱을 끼고 종이가방 같은 것을 들고 있던 때와 다르게 대부분이 커플들이 붙어서 초콜릿을 주고받고 있었다.


차라리 학생 때면 받은 놈 한 둘을 부러워하거나 놀리고 말았지 이제는 못 받은 내 자신이 초라해질 지경이다. 이런 와중에도 우리는 서로서로 뭐 없는 놈들끼리 하나씩 주고 받았다.


주변에서 우정 초콜릿이라며 천원짜리 초콜릿 하나, 초콜릿 바 하나 이렇게 주고 받으며 커플들을 저주하고 있던 와중에도 나는 오직 너의 등장을 신경쓰고 있었다.


어제 오랜만에 초콜릿을 만들어 본다면서 녹이고 모양을 만들고 굳히는 것을 하나하나 말해주고 사진을 보여주던 것 때문에 나의 기대감은 더 커졌다. 개강을 앞두고 오랜만에 모이는 오늘이 우연히도 발렌타인 데이인 것은 아마 나에게 이런 설렘을 느끼게 해주려는 하늘의 뜻은 아니었을까.


약속 시간이 다가올수록 하나 둘 모이기 시작했다. 아무렇지 않게 초콜릿을 몇개씩 사들고 와서 나눠주는 친구들과 아무것도 들고 오지 않아서 나중에 답례하겠다거나 그냥 잘 먹겠다고 말하는 애들. 나도 그 중에 한 명이었다.


그러다 한 친구가 집에서 만들어 왔다면서 상자를 하나 건냈다. 다른 친구들에게도 하나씩 주고 있었지만 봉투에 담아주는 것과 달리 나에게는 상자를 주었다. 순간 부담스러워 거절할까- 싶었으나 이 노력에 대한 보답이라면 보답일수도 있고 다른 이들 앞에서 무안을 주게 될까봐 싶은 것도 있어서 받아들었다.


기다리던 너가 보였다. 멀리서도 환한 미소로 자신의 존재감을 확실히 보이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자리에 없던 다른 친구와 함께 오고 있었다. 그 친구의 손에는 작은 상자가 하나 들려 있었다. 그리고 너는 우리에게 봉지에 포장된 초콜릿을 나눠주었다.


쟁취하지 못했다? 선택받지 못했다? 같은 개념의 따위가 아니었다. 넌 떠났다. 내가 잡지 못할 곳으로. 내 눈앞에서 웃는 너의 모습을 보는 것이 행복했던 과거는 온데간데 없고 타인을 보고 환하게 웃는 모습이 나를 괴롭게했다.


넌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이 행복한 모습을 보였고 우리는 모두 놀라서 물었다. 언제부터 이렇게 된 것인지. 그리고 나는 그 속에 끼지 못하고 멋쩍은 웃음을 짓고 있었다. 아마 그 친구도 이런 내 모습을 보고 무언가 느꼈을 것이다.


2월 14일 하나의 사랑이 끝이 났다. 그리고 또다른 사랑이 얼굴을 내비쳤다. 하지만 그걸 신경쓸 여력따위는 없었다. 사람은 사람으로 잊는 다는 말은 믿고 있다만은 지나온 사람을 내려놓을 시간은 필요하지 않겠나.


고민했다. 어떻게 나를 떠날 수 있게 해줄 수 있을까. 힘들었다. 지금 당장 나도 아픔에 사로잡혀 마음에서 떠나보내지 못할 이를 잊으려 애써 눈을 가리고 있는 와중에 다른 이를 직접 마주보고 돌려놓아야 할 노력이라니.


어영부영 시간을 보냈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2주정도였다. 개강을 앞두고 있는 지금 학교에서 둘 중 누구라도 마주치면 곤란한 나 자신을 숨길 수 없을 것 같았다. 다행히도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탓인지 나에게 연락이 오지 않았다. 너와 공유하는 것이 줄어가면 줄어갈 수록 더욱 밀어내려고 노력할 수 있었다. 불행히도.


미안하게도 이런 나의 상태를 아마 짐작하고 있을 또 한 친구는 애써 나에게 연락을 하지 않았다. 고맙게도.


어느덧 개강을 했고 아무렇지 않게 견뎌내려 노력하고 있었다. 어쩌다 마주치는 너를 보고 인사를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었고 애써 웃는 모습을 보일 수 있었다.


이런 내 모습을 보고 살금살금 내 곁으로 다가오는 이를 밀어내지 못하고 있었다. 아무렇지 않은 척 하기 위해서는 그냥 마음도 모른체 할 수 밖에 없었다.


그 일로 한 달이 지난 오늘, 화이트데이가 됐다. 발렌타인데이에 대한 답례를 해야 한다. 나는 평범한 사탕을 여러개 사서 똑같이 주었다. 내가 사랑했던 너에게도 사탕을, 나를 사랑해준 너에게도 사탕을.


3월 14일, 이 설레는 날에 너에게 남긴 것은 딱 사탕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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