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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의 향기

by 정다훈

날씨에 담긴 추억의 향을 못 맡게 된 지가 얼마인가. 변화에 따라서 떠오르는 그 감각들과 아름다운 추억들이 최소 10년도 지난 기억이라는 것을 깨달은 순간, 지난 내 10년의 기억이 추억이라 부르기에 많이 부끄러운, 또는 아픈 무언가가 돼버렸다.


봄이 다가오는 따스한 날씨의 향은 항상 설렘을 담았다. 추웠던 겨울을 지나서 웅크렸던 몸을 피며 제대로 품을 열고 걷기 시작하는 때. 서리가 내린 듯 얼어있던 잎사귀의 수분이 생명을 머금은 물방울이 되어서 잎에 생기를 불어넣은 모습에 괜스레 푸른 잎에 맺힌 물방울을 건드려보곤 했다. 새해를 맞은 지 2년이란 시간이 흘렀지만 이제야 정말 새로운 1년을 시작하는 듯이 모든 것이 새로워 보이고 새롭다. 새로운 학교에 가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풋풋함이라는 향이 떠오르는 듯한 이 계절에 도전이란 단어는 자연스레 뒤따른다.


여름은 자신의 존재를 뜨거운 햇살로 대신해서 알린다. 추운 날을 지나 겨우 옷을 가벼이 하고 다닌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갑작스레 그동안 억울했다는 듯이 강렬한 빛을 보내며 뜨거움을 선사한다. 그럼에도 그런 뜨거움은 정열을 부르고 반대되는 시원함을 가져온다. 흐르는 계곡물 옆에서 보내는 하루, 그 시원함에 감탄하고 젊음을 표현하는 듯한 바다의 파도소리와 쌓여가는 추억들은 그 순간들에 햇빛이 그대로 담겨있는 듯 밝고 아름답다. 이따금 찾아오는 태풍마저도 무더위 속에 주어지는 하나의 이벤트 같은 기분.


그러다 갑자기 더위가 팍 꺾인다. 언젠가부터 하늘에서 에어컨을 틀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그럼에도 아직 밝고 높은 하늘이 보여주는 푸른 하늘은 추위보단 시원함을 느끼게 한다. 옛말로 천고마비의 계절. 이를 증명하듯이 먹을거리가 늘어난다. 여름에 너무 더운 나머지 먹지 못하던 따뜻한 음식들을 다시금 찾기 시작하면서 이것저것 먹기도 하고 온 세상을 노랗게 혹은 붉게 물들이는 낙엽을 보려고 산에도 가고 이제 들어가지는 못하지만 괜히 바다에 들러서 감상에 빠지기도 한다. 이때 보이는 바다에서 느껴지는 감정은 여름의 것과는 전혀 다르다. 이런 날씨의 변화에 잊고 있던 것들이 떠오르기도 한다. 따스함을 그리워하다 보니 자연스레 지나온 시간을 뒤지고 그러다 마주한 과거의 인연에 아쉬워하기도 하며 이를 달래기 위해서 어디로든 도망가기도 한다. 아마 가을은 계절 중에서 제일 갑작스럽고 부산스러운 계절일 것이다. 그렇기에 더욱더 많은 추억을 만들어 주기도 한다.


그 복잡한 계절이 지남을 알리는 것은 몸을 베어내는 듯한 강한 바람이다. 그 추위는 본능적으로 몸을 웅크리고 안에 숨기게 만든다. 그와 동시에 따뜻함을 가장 원하는 시기, 겨울이 왔다. 겨울이 옴을 느낄 때의 공기는 정말 차갑다. 평소에 아무렇지 않게 들이쉬던 숨을 순간 방심하고 크게 마시면 폐가 얼어붙는 듯한 기분이 든다. 이토록 춥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많은 추억이 생겨나는 날이다. 추위 때문에 더욱더 사람의 온기를 그리워하기 때문인지 혹은 함께 하는 것이 아니면 어려워지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이 추위에도 나와서 누군가를 만나고 함께 무언가를 한다는 그 사실만으로 그 시간은 특별해진다. 봄이 만남의 계절로 설렘을 가지고 있다면 겨울은 이별의 계절로 슬픔을 가지고 도전이었던 것은 포기 혹은 결실이 되는 계절이다. 그렇게 아프기에 더욱더 남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지난 10년간 이 사계에 남은 내 추억은 무엇인가, 하는 고민을 해봤다. 짤막짤막하게 떠오르는 사소한 일들이나 그 당시의 나에게 꽤나 큰 일이었던 것들이 하나 둘 떠오르긴 한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이 내가 계절을 맞이할 때, 그 새로움이 담긴 날씨에 묻어있는 추억이라 부르기에 부족하다. 그저 기억의 저편에 묻어져 있던 조각들일뿐이다. 봄 내음이 맡아질 때면 그냥 새 학기를 시작하던 학창 시절이나 생각나고 여름의 더위가 올 때면 어릴 적 놀러 다니던 계곡과 바다의 물소리가 들린다. 가을이 되면 어릴 적 농사를 하는 조부모댁에서 이것저것 구경하며 돌아다니거나 헤어진 인연들과의 기억, 겨울에는 그 차가운 날씨에 겁먹지 않고 썰매를 타러 다니던 유년시절이나 고소한 냄새의 각종 간식들이 떠오를 뿐이다. 그 어떤 기억도 추억이라 부를 수 있을 만큼 내 향기 속에 남기질 못했다.


더 이상 계절의 변화에 드는 생각이 없다. 여름의 더움에 질색하며 외출을 싫어하고 겨울의 추위에 놀라 급히 두꺼운 옷들을 꺼낼 뿐이다. 봄과 가을은 더 이상 아무런 기억이 남을 수 없다. 그 짧은 기간에 무언가를 남기기엔 하루하루 의미 없이 살아가는 것에 만족하는 급급한 삶이다.


겨울이 왔다. 춥고 시린 바람이 부는 이 계절을 어떻게 견뎌왔는지 생각도 나지 않는다. 오늘 집을 잠깐 나섰을 때 불어온 바람에 몸을 한껏 웅크리고 얼굴을 가리며 바람을 피해 다시 들어왔다. 이 추위를 이기고 나가서 무언가를 해야겠단 생각이 들지 않는다. 흔히들 가는 스키장 같은 겨울 레저를 기피한 지는 오래됐고 하다못해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즐기기 위해 구경을 다닌 지도 오래다. 여름의 무더위 때부터 '더운데 왜 나가?'가 그저 추운 데로 바뀌었을 뿐이다.


스스로가 애석하다. 단순히 기온의 변화에 따라서 이렇게 소극적으로 변하던 사람이 아닌데,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이 날씨에 바닷가도 놀러 갈 정도로 활발했고 보이지 않는 목표가 여럿 있었다. 하나하나 이뤄가면서 모두 해낼 수 있겠지라는 생각을 했지만 조금씩 부족함이나 불확실성이 보일 때마다 알게 모르게 지쳐왔나 보다. 그러다 한 번 큰 일을 겪고 잠시 내려놓은 후부터는 다시 붙잡는 것 자체가 두려워졌다. 누구나 겪을 수 있는 흔한 일들 중에 하나 일 법도 한데 이상하게 회복이 되지 않는 스스로가 더욱 미워진다. 남들도 이런 걸 겪고도 잘 살아갈 텐데, 혼자 이렇게 쓰러져 있으면 뒤쳐지기만 할 텐데 하는 생각들로 가득 차 자기혐오만 가득해진다.


수많은 실패와 좌절감, 상실감을 느끼게 하는 사건이 연달아서 일어났다. 마치 '하늘이 날 버렸어!'라고 외치고 싶은 기분이다. 그럼에도 살아가야 한다면 나는 지금 밖으로 나가 오늘 하루의 날씨를 느끼며 어떤 추억을 만들어 나가야 할까. 내가 정할 수 없겠지만은 약간의 기대감만이 겨우 시 나를 밖으로 끄집어내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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