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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10시, 봄

아무 일이 없어서 괜찮은 날

by 정다훈

하루가 끝이 나는 것을 느끼는 시간 밤 10시. 이렇게 또 한 번 지나간다. 아침에 뭘 했는지는 이제 희미하고 점심을 뭘 먹었는지 고민하고 저녁에 있었던 일을 가볍게 얘기한다. 이런저런 일이 있었던 것 같지만 정작 기억나는 것은 없다. 그냥 가볍게, 하루가 지나갔다는 얘기를 할 뿐.


오늘은 그런 날이었다. 조용히 아무렇지 않게 지나가는, 뒷 날 생각했을 때 떠오를 리 없는, 그냥 나의 나이를 하루 늘린 그런 날. 아침의 새로움도 점심의 뜨거움도 저녁의 시원함도 모두 지나가버리고 밤이 되어 가라앉은 공기의 무거움이 자연스레 몸을 뉘이게 만드는 그런 날. 그렇게 보냈다.


이런 날에 나는 생각을 비운다. 아무런 의미 없이 시간을 보내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특별히 유의미한 시간을 두지도 않았지만 내 삶에서 가장 중요한, 평범한 일상을 채워주었던 그런 날일 뿐이다. 그러니 이 날은 어떻게 보면 나에게 있어서 가장 소중한 날이다. 내 인생의 대부분을 차지해 줄 그런 날이니까. 그래서 나는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았던 오늘의 하루를 괜찮게 여기며 깊은 잠을 잘 수 있을 것이다.


이제는 따스함을 느끼기엔 조금씩 불쾌함이 몰려오는 날씨가 찾아왔다. 조금씩 다가오는 줄 알았던 여름의 태양은 이미 우리 곁에 있었다. 아침에 집을 나설 때의 시원함은 이제 찾아보기 힘들다. 점점 물속에 잠기는 듯한 찝찝함이 깊어지기 시작했고 점심의 산책은 나가기 싫어진다. 아직까지 활기가 남아있어야 할 저녁은 기운이 쏙 빨린 채로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가기 바빠졌다.


그렇게 또 하루가, 또 한 번의 계절이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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