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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봄비

모든 감정이 말랑해지는

by 정다훈

봄이 왔다는 것을 느낄 때가 언제인가. 햇빛의 따스함이 느껴질 때, 더 이상 아침이나 밤에 패딩을 입지 않아도 될 때, 푸릇한 풀과 나무가 보이고 꽃이 피고 산책하는 사람들이 많이 보일 때. 우리는 많은 것에서 계절의 변화를 느낀다. 나는 처음으로 비 오는 날이 춥게 느껴지지 않는 날, 첫 봄비가 내리는 날이 가장 봄이 느껴진다.


봄이 왔음을 느끼는 순간 얼어있던 세상이 녹아내리고 함께 얼어있던 나의 감성도 녹는다. 그저 추위를 피하기에 급급해서 안으로 파고들고 피하기를 하던 겨울과 달리 맨몸으로 맞서게 된다. 적당히 따뜻한 날씨와 시원한 바람이 밖으로 나오지 않고는 못 배기게 만들어준다.


첫 봄비가 내리기 시작하자 모두들 새로운 세상을 맞이할 준비를 하라는 듯한 소리로 들린다. 길가에 있는, 강변에 있는 풀들의 생기를 깨우고 꽃들이 개화할 준비를 시켜주는 듯한 신호음. 이 비를 실내에서 즐긴다. 이제 무겁던 잠옷이 아닌 좀 가벼이 입고 억지로 마시던 따뜻한 음료가 아니라 시원한 음료를 마시며 내리는 비를 창가에서 여유롭게 즐길 수 있다.


왠지 나가서 길을 걸으며 세상을 구경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밖으로 나섰다. 그래도 아직은 좀 쌀쌀하겠거니 하며 얇은 후드집업을 하나 더 걸치고 우산과 장화를 챙겨 나온 길거리. 분명 비 오는 날인데도 밝았던 겨울보다 더 많은 사람이 거리에 있었다. 분명 비가 오는데도 날이 화창했다. 그런 기분이 들었다.


비 오는 날의 감성은 살짝의 우울감과 평소에 많던 고민거리나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기회였다. 그래서 조금 가라앉은 분위기의 날이었는데 봄비는 다르다. 새로움을 떠올리고 맑은 날을 기대한다. 그래서 굉장히 들뜬, 설렘을 안은 날이다.


봄비, 봄이 왔다. 많은 것을 품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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