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부신 거리, 그 사람과의 거리
왔다, 와버렸다. 미치도록 뜨거운 태양이 멈출 줄 모르고 끝없는 에너지를 땅에 쏘아붙이는 날이. 아침부터 느껴진 더운 공기에 짜증이 섞여 일어나 겨우 끌고 나온 몸이 녹아내리기 시작한다. 땅에서 올라온 열기에 발을 구르고 정수리를 뜨겁게 만드는 햇빛에 머리를 흔들며 그늘을 찾아다닌다. 기껏 도착한 그늘에서 맞이하는 것은 이미 그 자체로 뜨거운 공기뿐.
맑아서 좋았던 하루가 이제는 맑아서 짜증이 난다. 집을 나와서 거리를 걸을 때면 정말 아스팔트 불판 위에 올려진 고기 덩어리가 되어버린 기분이다. 눈부시기만 했던 거리의 빛들은 나의 몸을 짜증스럽게 더듬는다. 온몸이 땀에 찌들어 끈적한 물속에 빠진 기분이다.
이런 불쾌함은 자연스럽게 거리를 피하게 만들었다. 최대한 그늘로 이동하고 실내에 들어가고 어떻게든 햇빛을 피하려 애를 썼다. 최대한 누군가와의 접촉을 피했고 어디 하나라도 살이 닿으면 온갖 짜증이 몰려왔다. 가만히 있어도 사람을 성격파탄자로 만들어버리는 그 계절이 왔다.
고작해야 아직 오전인데 벌써부터 이렇다니. 이제야 시작했는데 벌써부터 이렇다니. 말도 안 되는 날씨다. 매해마다 올해가 역대급 더위라는 말을 들은 것이 몇 년째인지 모르겠다. 이런 뜨거운 날씨에 누군가를 만나러 간다는 것이 사랑이 아니면 뭐겠는가. 기껏해야 출근 빼고 더 붙일 게 있을까.
하지만 이런 더위는 자연스럽게 그를 피해서 거리를 만들었다. 서로가 힘든 시기. 만나러 가는 것도, 닿는 것도, 이런 날씨에 굳이 굳이 노력해서 보았다가 오히려 서로의 짜증 섞인 하루로 남아버릴 기억이 짙게 묻어버릴까 무서워서. 그렇게 이 더위는 사랑을 이겼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 그랬다. 몸이 멀어져서 쾌적함을 좀 더 누릴 수 있었고 이 관계의 멀어짐은 내 삶의 온전함을 느끼게 해 주었다. 자연이 만들었다. 자연스러운 멀어짐을.
오늘 하루도 눈이 부시다. 창문을 투과해서 들어오는 빛마저도 뜨겁다. 우리의 관계보다 이 빛이 뜨거웠을 뿐이다. 그런 간단한 이유로 멀어진 거리다. 거리에서 멀어진 거리다. 딱 그 정도. 그 정도가 적당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