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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오, 여름

뜨거운 태양과 무기력

by 정다훈

덥다는 말이 부족한 여름의 햇빛이 가장 높은 곳에 떠있는 시간이 왔다. 여름의 정오에 나는 무엇을 느낄 수 있는가. 무기력. 이 말 외에는 생각나는 것이 없다.


미치도록 뜨겁다. 분명 가장 높이 떠 있어야 할 시간인데 바로 옆에서 나를 놀리듯이 따라다니는 기분이다. 점심을 먹을 시간에 가장 활기차게 뛰어야 할 터인데 입맛조차 떨어진다.


정수리 바로 위에 떠있는 태양은 모든 그늘을 사라지게 만들었다. 뜨겁게 웅크린 공기막이 나를 그 속에 꼭 껴안고 있는 기분이다. 밝고 활기차게 느껴졌던 여름은 어느샌가 반대가 되었다.


느려진 발걸음과 멈춰버린 생각회로, 여름의 뜨거운 태양이 만들어낸 기이한 현상이다. 지독한 무기력.


피곤해서 그런 건가? 아니. 힘들어서? 아니. 정말 뜨거워서. 한낮의 열기가 가져오는 뜨거움의 압박은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만든다.


보이지 않는 그림자, 기껏해야 발밑에 겨우 있는 작은 그림자에 보이는 내 옅은 모습. 이 뜨거운 햇빛은 내 존재감마저도 지워버린 기분이다. 분명 사람은 밝은 시간에 움직여야 할 터인데, 이 여름은 감히 하늘 위의 태양 앞에 존재를 드러내지 말라고 한다.


나는 이 여름의 무기력함을 미치도록 피하지만 금세 받아들인다. 그저 쓰러져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누구의 비난을 들을 수 있겠는가. 이토록 뜨거운 날에 감히 어떤 시도를 하겠는가. 함부로 뛰어들었다간 혼자 녹아내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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