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이 끓는
이제야 한풀 꺾인듯한 날씨. 아직까지 무덥지만 이전의 무기력함은 조금 씻어낼 수 있다. 이 시간에 느낄 수 있는 감정은 무엇일까. 시원한 듯 덥고, 활기찬 듯 무기력하며 설레지만 피곤한, 그런 애매모호한 감정의 이름은 무엇일까. 나는 아직까지 정하지 못했다.
내가 아직 정하지 못한 감정이 고작 이것뿐일까. 별다른 일이 없었지만 뜨겁기만 했던 햇빛에서 소중함이 느껴지기 시작할 때 떠오르는 기억들이 몇 가지 있다. 여름에 벌러덩 누워 선풍기 돌아가는 소리를 들으면서 더위를 식히던 어린 시절의 기억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 시절의 여름은 오히려 평화로웠다.
조금씩 불어오는 뜨겁지만 몸을 스쳐 지나갈 때 묘한 시원함을 주던 바람이, 그 바람이 가져오던 향기들이, 그 향기를 나게 하던 여름의 추억들이 모두 떠오른다. 그 여름에 있었던 시간들이 계속해서 지금의 여름에 스며든다. 절대 좋은 기억으로 남지 않을 것 같은 이번 여름에.
그 감정은 무엇이었을까. 태양처럼 뜨거운 것 같지만 계곡물처럼 차가웠던 그 감정은. 마치 계절을 거부하듯 방 안에서 에어컨을 세게 틀어두고 누워서 이불로 꽁꽁 싸매고 있는 듯한 그런 느낌의 감정이었다. 분명 감정의 정체를 알았건만 있는 힘껏 부정하고 있었다.
오후 4시의 여름, 이 시간의 여름은 다른 순간의 여름을 불러온다. 옅게 묻은 기척 속에서 흔적이 느껴진다. 그때 담겨있던 감정의 흔적이. 아직은 이름 붙이지 못할, 그 감정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