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원한 맥주, 뜨거운 외로움
여름의 밤은 더위가 한풀 꺾인 시원함이 찾아오는 시간이었다. 시원함이라기엔 애매하지만 음, 아마 그냥 미지근한 날씨 정도가 되겠다. 에어컨을 틀자니 한물간 더위에 아까운 전기세가 생각이 나고 그렇다고 선풍기를 틀자니 이미 에어컨을 쓰며 안 쓴 지 꽤 되어 먼지가 쌓여있다. 열어둔 창문으로 들어오는 바람은 그야말로 미지근함의 정수.
참다 참다못해 냉장고로 달려가 시원한 물이라도 마셔야겠다 생각했다. 하지만 냉장고를 연 순간 눈에 들어온 시원한 맥주캔에 사로잡혀 자연스레 꺼내 들었다. 금세 캔 표면에 맺히는 물방울은 나를 시원하게 만들어주겠단 포부를 말하는 듯했다.
캔을 따는 소리마저도 나를 시원하게 만들었다. 마시는 순간엔 몸속에 에어컨을 넣은 것과 다를 바 없을 정도로 나에게 시원함을 가져왔다. 조용해진 사회. 하나 둘 불이 꺼지며 어두운 모습으로 변한 거리와 사라진 사람들. 거리마저도 더위를 잊고 새로운 해를 맞이할 준비를 한다.
이 맥주의 시원함과 밖에 보이는 식어가는 거리는 한 계절의 끝을 말해주는 듯하다. 그 끝이란 단어 하나에 떠오르는 것은 어떠한 공허함. 뜨겁게 타오르는 태양 아래에서 차갑게 씻어 내린 나의 순간들. 이번 여름의 나는 여름이지 못했다.
냉철했다. 이성적이었다. 단 한순간도 감정을 우선시한 적이 없었다. 그렇게 감정을 드러낼 일도 만들어내지 못했다. 사람의 삶을 산 것이 아닌 사회에 등록된 자로서의 삶을 살았다. 나는 그렇게 또 이번 여름의 끝을 미적지근하게 보내고 있다.
밤 11시, 여름의 끝자락. 아직까지도 다 누리지 못한, 돌아오지 않을 한 해의 한 계절. 나는 태양을 놓쳤다. 떠오른 달에 차가움을 느낀다. 나는 결국 또다시 잡지 못했다. 그렇게 한 계절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