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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다훈 Apr 17. 2023

아름다운 글의 유혹

가와바타 야스나리-설국

일전에 ’ 노벨문학상 필독서 30‘이라는 책을 읽고 있다 했는데, 그 속에서 나온 추천 책 중 하나인 ’ 설국‘을 구매했다. 종이책에 비해 전자책이 저렴하기도 하고 한 권만 택배배송 시키기에 아까워서 ebook으로 읽었으나 조만간 종이로도 한 권을 살 예정이다. 그 정도로 이 책은 매력적이었다. 여러 추천서 중에 콕 집어 구매한 까닭은 아무래도 다른 많은 이들 또한 극찬한 이 책의 첫 문장, ’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신호소에 기차가 멈춰 섰다.‘라는 책만큼 유명한 구절 때문이다. 뭔가 알 수 없는 쾌감이 느껴지는 글이다. 나는 평소 소설 같은 글을 쓸 때에 내가 상상해서 쓰는 이 장면이,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 똑같거나 비슷하게나마 보였으면 하는 마음이 있어서 묘사에 대해 신경 쓰고 싶어 하고 보다 상황을 자연스러우면서 부분의 디테일을 미적으로 전하고 싶어 하는데 내 이런 마음을 알고 있었다는 듯이 문장이 흘러 들어왔다. 내가 적길 원하는 글이었다. 솔직히 책의 내용에 대해서는 평가하고 싶지 않다. 스토리 적으로 매끄럽게 이어진다는 느낌이나 기승전결이 확실함을 바라는 책이 아니다. 내가 보기에도 이 작가님은 등장인물들의 심리와 상황의 묘사에 대해 많은 신경을 쏟았다는 것이 느껴졌는데 다 읽고 나서 번역가분의 작품해설에서도 이와 같이 설명하고 있다. 한 번에 적어 내린 글이 아니라 생각날 때마다 이어 쓴 것을 잡지에 실었던 책이라는 설명이 있는 것으로 보아 아무래도 전개내용의 흥미진진함이나 이야기를 좋아하는 분들에게는 읽기에 거부감이 들 수 도 있을법하다. 그럼에도 만약 책을 읽을까 말까 하는 고민이 있다면 한 번쯤은 읽어보시기를 권하고 싶다. 책의 작가분이 노벨문학상을 받을 당시에 평가 내려진 문장은 ‘자연과 인간의 운명이 지닌 유한한 아름다움을 우수 어린 회화적 언어로 묘사했다.’ 일 정도로 글에 상황의 모든 것을 아름답게 담아 읽는 순간 본인도 눈의 나라에 빠져 등장인물들의 심리에 녹아내린다. 처음에는 개연성이 중요한 책이 아님을 알고 있었기에 문장 하나씩 천천히 읽어야겠다는 생각이었으나 문장에 빠져 산 이후에 바로 끝까지 다 읽어버림에 아쉬움을 느끼고 있다. 그런 마음에 좀 더 깊이 느끼기 위해 종이책으로 구입해 문장 하나하나를 천천히 음미해 볼 생각이다.


 이 책에 대한 찬양의 글을 쓰는 것이 아니다. 나는 이 작가가 적어 내린 아름다운 글의 표현이 너무 마음에 깊이 다가왔다. 무엇보다 내가 적어내고 싶다-라고 생각한 형태와 많이 닮아있기 때문에 앞으로 내가 적을 글에 많은 영향을 줄 것 같다. 한데 조금 황당하다 생각할 수 있지만 평소에 철학책을 읽으며 각 생각에 대한 느낀 점이 있던, 소설책을 읽더라도 개연성과 스토리 자체에 느끼는 바가 있었던지라 이 책을 읽고 나서 느낀 바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면 그냥 글에 빠졌다-뿐이다. 정말 오랜만에 아무 생각 없이 책 자체에 집중한 것 같은, 책보단 글에 집중한 것이지만은. 허나 그 이상으로 얻은 것만은 확실하다. 내가 적고 싶은 글의 방향을 정했다. 가와바타 작가님의 표현처럼 미적이면서도 깊은 울림을 가진 묘사를 적어 내릴 자신은 없다마는 문학성을 닮고 싶어졌다. 평소 짧은 단편이나 소설을 쓸 때 그 장면을 상상하면서 적는 만큼보다 명확히 나의 상상을 마치 예전 영화필름처럼 떠오르게 해주고 싶다. 단순히 내용을 읽는다라는 느낌이 아니라 글을 느낄 수 있도록. 나의 글이 그저 읽어내리는 검은색 글자가 아니라 다채로운 색을 지닌 그림처럼 느껴지기를 바라며 이런 방향성을 알려준 ‘설국’과 가와바타 문학에 감사를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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