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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다훈 May 15. 2023

계산

이상형을 찾는 법

 오랜만에 친구들과 함께 술을 마시고 있었다. 남자끼리 모여서 하는 얘기야 뻔했다. 똑같은 레퍼토리를 반복하는 과거의 이야기와 게임 이야기, 그리고 결국에는 여자 이야기를 하고 있다. 요즘 썸을 탄다는 친구의 말에 흥분해서 다들 득달같이 달려들어 이름과 얼굴 공개를 반 강제로 시켰고 친구는 못 이기는 척 자랑을 했다. 예전에야 비꼬거나 장난을 쳤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부러운 마음이 더욱 커진다. 연애를 안 한 지 꽤 오래된 나에게 이목이 집중됐다.


"그럼 VS게임 한 번 해보자."


 나의 이상형을 찾아내어 연애를 시켜주겠다며 질문을 시작했다. 넓게는 성별을, 좁게는 손톱모양을 물어보며 장난치며 웃다가 그래서 어떤 여자가 좋냐는 말에 진지하게 답을 했다.


"좋은 사람."


 온갖 야유가 쏟아지며 소주를 새로 한 병들고 와 벌칙으로 다 마시라느니 지갑에서 당장 카드나 꺼내서 계산이나 하고 오라며 짜증을 받았다. 웃기지만 살짝 당황스러워 어색한 웃음으로 눈썹을 긁적이다 말을 하려고 입을 벌리다 다시 삼켰다. 어차피 지금 당장 뭘 말해봐야 이놈들의 놀림거리에 그칠 것 같은 생각이 들어 그럼 예쁜 사람이나 소개해주던가- 하며 장난을 쳤다. 자리가 끝나고 나서 집으로 향하는 길에 곰곰이 생각했다. 나의 이상형을 비교를 통해서 보다 나은 쪽을 뽑아내서 만드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에 그냥 좋은 사람이라는 말을 뱉었다. 그래서 과연 내가 말할 수 있는 이상형은 뭘까- 하는 고민. 지나간 사람들을 토대로 떠올렸다. 외형적으로는 간단히 머리가 짧든 길든 상관없이 하고 싶은 것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딱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보다 내면적인 모습을 많이 떠올렸다. 내가 베푸는 호의가 크던 작던 진심으로 기뻐하고 단순히 받아들이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이상으로 돌려주려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는 사람. 친절하고 예의바르나 자신의 철학이 뚜렷하여 옳지 못하다- 보이는 이에게는 냉철한 사람. 긍정적인 감정을 밖으로 뿜어내는 것을 좋아하지만 부정적인 감정은 티 내지 않으려 애를 쓰는 사람. 그렇게 삭힌 감정을 억지로 가두지 않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천천히 녹이며 의지할 수 있는 이에게 의지할 줄 아는 사람. 모든 분야에 있어 자기 자신을 다룰 줄 아는 사람.


 이런 사람을 어떻게 비교를 통해 나은 사람으로 뽑아낼 수 있을까. 결코 만들어 낼 수 없는 사람이기에 나의 이상형으로 만드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나는 찾은 것이다. 내 과거의 시간에서, 혹은 나의 철학에서 맞는 사람을. 이런 것이 좋고 이런 것이 싫다 같은 단순한 YES OR NO가 아닌, 이랬으면 좋겠고 이런 면모가 있으면 좋겠다는 LIKE로. 시간이 지나거나 다른 일이 생겨 나의 가치관이 바뀐다면 얼마든지 새로운 사람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또 하나 발견한 것이겠지. 날이 갈수록 사람을 만나기 어려워진다. 단순히 분위기와 감정에 빠져서 만나던 전과 달리 조건이 늘었다. 사랑만으로 할 수 없는 것이 많은 것을 느끼면 느낄수록 쉬이 시작할 수 없어진다. 웃긴 건 그럴수록 비교할 것이 늘어난다. 보다 적은 이해가, 다툼이, 배려가 필요한 사람이 더욱 좋게 느껴지는 만큼 사람과 사람을 비교하며 감정을 투자한다. 사랑이란 감정을 점점 더 계산적으로 사용하게 된 것이다.


 상황이 만들어 낼 사랑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런 사랑에 한 번 빠지는 순간 아마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초등학생으로 돌아간 듯이 정신 놓고 달려들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순간 멈칫멈칫하게 되는 것이 시간이 쌓아 올린 방지턱이다. 이런 점은 조금 불편할지도, 이런 것은 고쳤으면, 이렇게 좀 해줬으면, 하는 마음이 하나 둘, 생기다 모든 것을 맞추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 때 멀어지는 것이다. 항상 사랑만큼 평범하면서 특별한 감정이 없다는 말을 했었다. 사랑은 평범한 만큼 쉬이 찾아오지만 특별한 만큼 소심히, 보다 자세히 생각하게 만드는 법이다. 어떻게 사랑을 맞이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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