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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다훈 Jun 01. 2023

병 걸린 사회

분노와 좌절

 지나친 솔직함은 죄가 되었다. 정직과 솔직함은 다른 것이다. 사회적 생활이 필수인 공동체에서 우리는 사회적 감정과 표현을 학습한다. 심지어 상대방이 이런 반응에 대한 뜻을 알고 있음에도 사회적으로 언어라는 약속을 한 것마냥 같은 반응을 내비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 뻔한 밥 한번 먹자, 얼굴 한 번 보자- 같은 의미없는 인삿말처럼, 감정없는 웃음과 사과, 감사가 넘쳐나는 세상이다. 사랑마저도 마찬가지다. 내가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이 그 사람에게는 피해가 될 수도 있잖아요-라는 말을 어디선가 듣고 나서 밈으로 불리지만 굉장히 의미깊은 말이라는 생각을 했다. 결국 사랑하는 감정 자체를 남의 동의없이 품기 어려운 것이다. 내 감정이지만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다니 아이러니하다. 물론 표현하지 않는다면야 사랑을 모르겠지만은 마음이 마음대로 될리가.


 우리는 지나치게 솔직하던 때가 있었다. 거침없이 나의 마음을 말하고 거기에 대해 또다시 거침없는 부정적 혹은 긍정적 답변을 들을 수 있었던 시절. '나는 너가 좋아', '나는 너가 싫어' 이 두가지로 상대에 대한 감정을 정리할 수 있었던 시절이 있었다. 우리는 그 시절을 그리워한다. 어른들의 '좋을 때다-'하는 말에 대해 이해가 가지 않던 세월이 지나간다. 점점 알 수 없던 그들의 세계가 나에게 스며드는 중이다. 뜨거운 탕에 들어갈 때 시원하다고 하는 것, 차가운 맥주를 먹으며 피로를 날리는 것, 다음날을 위해 일찍 잠자리에 드는 것, 그리고 매사에 끼어드는 여러 생각들에 쉬이 결정을 못내리는 것에 대한 원망과 답답함이. 아마 우리에게 어린 시절이 좋아보이는 까닭은 과거의 추억에 대한 미화도 있겠지만은 명확한 것이 있던 시절이라서 아닐까. 그때의 고민은 짧았고 해답은 명쾌했다. 방법조차 간단했으며 포기도 쉬웠고 새로운 도전도 가능했다. 하지만 이제는 고민은 길고 해답은 어정쩡하며 방법은 어렵고 포기하기엔 아쉬우며 새로운 도전을 하기엔 지쳤다. 시간이 지날 수록 그 때의 포기는 핑계로 느껴지며 간단한 것을 고민한 것에 아쉬워 하지만 지금의 나를 바꾸기엔 두렵다. 하나 둘 엮이는 것이 늘어날 때 마다 이고 가기 싫어 제자리에 멈춰서고 싶어진다. 변화는 또다른 짐을 불러올 뿐이라는 생각에 제자리에서서 날개를 펴 볼 생각도 하지 않는다. 어차피 묶여있는 짐이 떨어트릴 것이다-라고 단정지으며.


 우리는 가둬졌다. 가둔것은 타인의 시선과 사회를 신경쓰는 자신이다. 내가 스스로 나를 가두어 밖으로 보여지는 모습을 바꾸지 않는다면은 나는 사회적으로 인정받을 수 없다. 개성과 주관을 중시한다고 하지만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우스워 보일 뿐이다. 관념은 버릴 수 없다. 우리가 아무리 서로간의 벽을 허물자 하여도 상사에게 반말하는 것을 상상할 수는 없는 것이다. 상사가 그것을 바라더라도 스스로가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다. 솔직함은 생각보다 어렵다.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는 것은 쉽지 않으며 자신의 성과를 자랑하는 것도 어렵다. 우리는 겸손과 배려를 배웠으며 도덕성을 심었다. 이는 자신을 반성하고 옳게 바꾸고자 하는 노력은 알려주었으나 자신을 보듬고 자랑스러워 함을 가르치지 않았다. 타인과의 관계는 생각하였으나 나 자신과의 관계는 생각지 못했다.


 날이 갈수록 마음의 병을 앓는 듯한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매사에 불편함을 느끼는 이들이 늘어가고 그것에 눈치보는 것이 당연한 것이 되어가며 점점 책임감없는 타인의 시선들에 짓눌리는 경우가 늘어간다. 견디다 못해 흔한 질병이 되어버린 우울증과 공황, 더는 참지 못해 벌어나는 분노조절장애와 급발진. 사회에 비춰지는 자신의 모습이 초라하단 생각과 억압에 의지를 잃어버리는 무기력증. 사회는 핑계라고 비춰지는 각자만의 이유들로 여러 병을 앓기 시작했다. 자살은 흔한 일이며 살인사건은 하루에 뉴스에 나오는 것만 해도 질릴 정도다. 과연 무엇에 분노하고 무엇에 좌절했을까. 우리는 알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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