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답이 없는 공식

사랑의 손익

by 정다훈

“왜?” 남자가 이 여자를 만나면서 제일 많이 뱉은 말이다. 남중, 남고를 나오고 대학교에 들어와서도 공대인 데다 타고난 성향도 내향인이라 많은 사람과 어울리지 못했다. 소소히 잘 맞는 친구 몇 명이랑 자주 노는 그런 생활이 좋았다. 연애는 몇 번 해봤지만 일일이 신경 써야 하는 것도 많았고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이 많았다. 무엇보다 내 시간이 아까웠다. 이상하게 처음에는 궁금하기도 하고 연애에 관심이 없었던 것도 아니라 굉장히 의욕적이었지만 가면 갈수록 손해 보는 일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타인이 무언가 베풀어줄 때에는 나도 그에 합당한 대가를 건네줄 것이란 보장이 있어야 하니, 그 이상을 돌려주는 것이 남자에겐 의무적이었다. 호의를 당연시 여긴 적이 없었다. 그렇기에 남자도 남에게 함부로 나의 호의를 베풀지 않았다. 이런 의미에서 남자가 가장 좋아하는 말은 ‘Give and take’다. 뭐 아무튼 이런 식의 관계가 하나도 적용되지 않는 연인관계는 어렵기도 하지만 이해할 수가 없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생겼다. 남자에게 호의를 건네는 여자가 생겼다. 친구들과 놀다가 우연찮게 마주친 여자애 무리가 친구와 아는 사이라 갑작스레 다 같이 술을 마시고 놀게 됐다. 낯을 가리는 남자는 그 자리에서 크게 즐기기보다는 분위기만 맞춰주다 일찍 가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한데 이 계기로 몇 번을 더 만나서 놀게 될 줄은 몰랐다. 그렇게 같이 놀던 어느 날 갑자기 저번에 교환한 sns로 문자가 왔다. '오늘 같이 밥 먹자.' 마침 저녁 먹을 사람이 없어서 자취방에서 혼자 먹으려던 참에 약속이라 당연히 찬성을 했다. 그리고 약속시간에 나갔더니 다른 애들은 없고 여자애 혼자 있었다. 사실 당연히 되는 애들 다 같이 먹겠지 했었기에 '다른 애들은 아직 안 왔어?'라고 물었다.


당황한 듯한 눈빛이었지만 이내 눈웃음을 지으며 한 손으로 오른쪽 머리를 귀 뒤로 넘기면서 둘이 먹고 싶어서 불렀다며 자신이 좋아하는 곱창집으로 데려갔다. 앞에서 염색을 한지 꽤 됐는지 살짝 뿌리가 올라온 연갈색의 중단발 머리를 끝에서부터 모아 묶으며 밥 먹을 준비를 하는 듯했다. 그리고 다 같이 있을 때는 괜찮았는데 이렇게 둘이 있다고 생각하니 괜스레 다시 낯을 가렸다.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밥을 먹을랬지만 역시 신경 쓰였다. 굳이 왜 나일까? 그렇게 고민하며 언제 식사를 마친 건지도 모르는 사이 이미 여자애가 계산을 하고 있었다. 당연히 더치를 해주려 얼마가 나왔는지 물었지만 자신이 살 테니 커피나 사달라며 또 자신이 거의 맨날 가는 카페라며 나를 끌고 갔다. 아무리 생각해도 밥이랑 커피는 수지타산이 안 맞지 않나-하는 생각에 케이크도 하나 시켜줬다. 딱 보기에도 엄청 달아 보이는 초콜릿케이크는 포크로 찌르는 순간 무스가 흘러나오며 아마 먹으면 머리가 아플 정도로 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이 아이가 갑자기 셀카로 이 상황을 찍었다. 왜 찍지 하는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남자를 태그 해서 sns에 올린 것을 보고 놀랬다. "다른 애들이 우리 사귄다고 오해하면 어떡하려고."라며 웃으며 장난스레 말했더니 잠시 아무런 말이 없다가 그 달디달아 보이는 케이크를 남자의 입에 넣어주며 "그러라고 올린 거야."라는 말을 했다. 남자에게 케이크는 하나도 달지 않았다.


"왜?" 당황한 나머지 이유를 알면서도 굳이 물었고 여자가 이렇게 까지 용기 내는 데 꼭 눈앞에서 말을 들어야겠냐는 듯한 눈빛과 이 정도면 이해하고 결정을 내리라는 듯한 한숨을 쉬며 뜬금없는 말을 꺼냈다. 이전에 다 같이 술을 마실 때 이상형에 관한 얘기가 나왔을 때 남자는 긴 생머리가 잘 어울리는 고양이 상의 여자가 좋다 했었다. "머리 어느 정도까지 길러야 하려나?" 단발머리에 연갈색으로 염색해서 다니던 여자가 그때부터 머리를 기르고 염색을 안 하고 있던 것이었다. 이번에는 입 밖으로 꺼내지 않고 또 물었다. '왜?'라고. 여자는 누가 봐도 당황스러워하는 게 보였는지 지금 당장 대답할 필요는 없고 앞으로 몇 번 얘기 나누며 생각해 보라며 오늘 재밌었으니 다음엔 네가 좋아하는 식당을 데려가 달라며 도망치듯 먼저 카페를 나섰다. 남자는 고민에 빠졌다. 솔직히 이게 무슨 상황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에 아무런 생각도 못하고 있다. 그런 뒤에 또 둘이서 만나자는 듯한 뉘앙스를 풍겨왔지만 핑계가 아닌 정말 학교생활이 바빠 만날 틈을 못 잡고 있었다. 어쩌다 보니 멀리하는 것처럼 느껴졌을 것 같아 중간에 짬을 내어 같이 밥 한 끼 할 정도의 시간은 있을 것 같아서 전화를 했다. 내 전화를 이미 알고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신호음이 세 번도 울리기 전에 빠르게 반갑게 받아주던 목소리, 여자는 처음으로 남자가 먼저 연락을 보내준 것에 큰 감동을 먹은 듯하다. 만나서 한 것이라곤 학교 앞 흔한 덮밥집에서 밥을 먹은 것이 전부지만 여자는 그 마저도 굉장히 행복해했다. 남자는 어느새 더 길어진 머리를 보고 계속 기를 것인지 물었다. 여자는 머리끝을 손가락으로 말며 조금은 더 길러야 좋지 않겠냐는 말과 또 달라진 점을 모르겠냐는 질문을 던졌다. 남자는 여전히 눈치가 없었다. 무엇보다 타인의 변화에 큰 관심을 두는 편이 아니다. 그럼에도 생각하는 척은 했다. 여자는 이내 이런 사람인 걸 안다는 듯이 눈매를 보여주며 오늘은 좀 고양이 같은지 물었다. 이 또한 남자가 말했던 고양이상에 대한 이상형을 맞췄던 것 일터. 남자는 차마 어울린다는 말은 못 하고 그렇구나-하는 짧은 공감을 말을 뱉을 뿐이었다.


남자는 점점 신경이 쓰였다. 이런 생각을 계속하는 것이 자신에게 어떤 이득도 없다는 걸 알고 있지만 이상하게 계속 눈에 밟혔다. 긴 장발보다는 단발이 더 어울릴듯한, 누가 보아도 강아지를 더 닮은 아이가 어울리지 않는 화장을 하는 것조차 자신의 탓인가 하는 생각에 미안함이 맴돌았고 그 빈도만큼 여자의 얼굴을 떠올렸다. 남자는 바쁜 일과가 끝나자마자 여자를 떠올렸다. 그리고 전에 말한 약속을 지키기 위함이라며 오늘은 자신이 좋아하는 밥집과 카페를 데려가 주겠다고 말했다. 여자는 어느새 까맣게 염색을 하고 어깻죽지 밑까지 내려온 머리를 찰랑거리며 오늘은 어떻냐고 물었다. 남자는 무슨 의도였을까. 이전의 단발머리와 원래 하던 화장이 더 어울리고 예쁘다고 답했다. 여자는 뭔가 서운한 듯 토라진 듯한 표정이었지만 이내 무언가 깨달은 듯 눈을 부릅뜨고 남자를 쳐다봤다. “내가 이쁘단 뜻이죠?” 남자는 당황했다. 아무렇지 않은 듯 얼버무리려 횡설수설하며 어색한 손짓을 하다 배고프다며 앞장섰다. 여자는 누가 봐도 행복하단 미소를 띤 얼굴로 남자의 옆으로 달려와 얼굴을 앞으로 내밀어 계속 물었다. 아마 남자의 당황한 듯한 반응이 그녀에게는 무엇보다 최고의 표현이 아니었을까. 결국 남자는 못 참고 물었다. “왜? 그때 술 먹고 말한 이상형 때문에 너 스타일을 모두 바꾸는 거야? “ 남자는 순수히 궁금하다는 질문을 했고 여자는 당연한 대답을 했다. ”좋아하니까. “ 남자는 또다시 ’왜?‘라는 질문을 하고 싶었지만 순간 얼굴이 붉어지고 있음을 느껴 황급히 고개를 돌려 헛기침을 했다. 앞에서 당당히 눈을 보며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 어떻게 사랑스럽지 않겠나. 남자도 더 이상은 자신을 부정하기 힘들 것 같았다. 이미 느끼고 있었다. 순간순간 떠오르는 여자의 얼굴이 어색하지 않고 괜히 바뀐 것에 대해 신경을 쓰고 시간이 빌 때 먼저 생각나며 어느새 먼저 약속을 잡고 있는 자신에 이미 알았다. 여자는 놓치지 않았다. “그럼 단발로 자르고 올까요?”라고 물었고 남자는 이 질문의 정답은 모르지만 바라는 뜻은 알 것 같았다. “이젠 단발이 좋은 것 같기도 하고.” 여자는 만족스럽다는 듯 웃으며 한 번 폴짝 점프를 하고 달려와 손가락을 남자의 손에 넣었다. 남자가 여자를 봤을 때 여자는 뻔뻔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리며 눈짓으로 손을 가리켰다. 마치 이것도 내가 먼저 해줘야 하냐는 듯한 느낌이 든 남자는 이번 문제의 정답은 확실히 알았다. 그렇게 둘은 손을 맞잡고 갔다. 이후에 남자는 수많은 “왜?”를 했지만 여자는 그때마다 당연한 대답을 들려줬고 남자는 납득했다. 그리고 남자는 점점 셈이 서툴러졌다. 받은 것보다 주는 것을 좋아하기 시작했고 말하거나 표현하기 힘들어하던 것을 더욱 많이 했다. 받는 것에 서툴지도 않았고 주는 것에 개의치도 않았다. 점점 줄어든 “왜?”의 빈도만큼 마음은 더더욱 커져갔다. 이제 남자는 사랑한다 여자를. 여자가 주었던 사랑보다 더욱.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행운으로 시작해 불행으로 잊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