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운으로 시작해 불행으로 잊히기를

by 정다훈

인생에 봄날을 맞기엔 추운 길을 걷고 있다 생각했는데 어느새 눈앞으로 불어온 바람은 따뜻하고 꽃향기를 품고 있었다. 내가 어떻게 그녀에게 스며들 수 있었던 것인지 하나도 모르겠던 찰나에 그 바람은 어느새 손을 가진 체 나를 감싸 안았다. 그렇게 나는 행운을 얻었다. 그 후로 많은 것이 변했다. 나무에서 떨어져 길을 더럽히는 쓰레기로 보이던 벚꽃잎들은 어느새 함께 맞이하는 봄날의 따뜻한 눈으로 보였고 핸드폰에만 갇혀 있던 눈빛은 보다 넓은 앞을 내다보게 됐다. 무채색으로 가득하던 내 옷장에 무지개가 찾아오게 됐고 칙칙하던 일상에는 행운이 빛을 들이고 있었다. 단 하나의 행운이 가져다준 변화는 내가 나인지도 모르게 만들었다. 나도 행운이 되어주기 위해 노력했다. 마냥 어둡던 모습을 감추기 위해 해본 적도 없던 피부관리를 시작했고 집을 나서기 전에 괜히 머리를 한 번 더 만지작 거리고 향수를 뿌렸다. 만났을 때는 다른 이들에 비해 잘나 보이기 위한 노력보다는 눈앞에 맞추는 연습을 했다. 모두가 바라는 방향을 가리키지 않고 네가 바라는 곳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그런 와중에 내 노력이 행운처럼 느껴진 것인지 밝게 빛나던 미소를 보여주던 나의 행운은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한 사람이라는 것을 느끼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런 행운을 맞이하며 점점 불안감이 찾아왔고 집착이 생겼다. 행운을 놓치기 싫어서 혹여나 떠나갈까 걱정이 되어서 점점 얽매이게 했고 그럴수록 행운은 말라갔다. 서로는 더 이상 행운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나의 원동력으로 느껴지던 마주 잡은 손이 어느 순간부터 족쇄로 느껴지기 시작했고 너를 위해 하는 행동이 귀찮아지기 시작했으며 서로에 대한 배려보다 나를 챙기는 마음이 커져갔다. 무엇보다 바라는 것이 생기기 시작했다. 단순히 서로의 행운이길 바라던 때와는 달리 나의 행동에 따른 너의 행동이 중요해졌다. 그러다 행운이 불행이 되었다. 색을 채우기 위해 하던 노력과 시간들이 우습게 느껴질 정도로 빠르게 무채색으로 변해갔다. 빛을 본 뒤에 들어간 동굴은 더욱 어둡다 했던가 내 눈앞의 세상은 마냥 잿빛이 됐다. 바람이 불지 않는데도 이상하게 뼈가 시리도록 차가운 공기에 움츠러들었고 꽃향기를 맡던 코는 끝이 붉게 변해 나아지지 않았다. 나는 매일같이 물로 씻을 수 없는 얼룩을 번져서 기억할 수 없기를 빌며 흘렸다. 그럼에도 찾아오는 순간이 기억하기 싫어서 애써 밝아지기 위해 햇빛으로 나섰다. 많은 곳을 갔고 많은 이를 만나며 바쁘게 지내다 보면 변하지 않은 세상의 빛이 다시 드리우리라 생각했다. 하나 그럴수록 더더욱 나는 허무함을 느끼게 됐고 세상이 나에게서 모든 색을 빼앗아 간 듯이 보였다. 그래, 너는 나에게 행운으로 와서 불행을 안기고 떠나갔다. 나는 너에게 행운이었을까.


사랑이란 이름을 가진 행운은 굉장히 잔인하다. 하나로는 성립될 수 없는 행복이란 것은 하나가 빠진 순간 불행으로 가득 차게 만드는 감정이란 뜻이다. 사랑이 커지면 커질수록 그 행운의 크기가 커짐에 따라 행복과 불행이 같이 커지게 된다. 그렇게 함께 키우던 행운을 누군가 놓아버리는 순간 행복이 사라지는 것이다. 남겨진 이의 마음에 불행만을 남겨놓은 체로. 한데 떠나가는 이조차 행복을 안아 갈 수 없다. 그 사람의 마음에 남은 것은 불행을 맡기고 온 만큼의 죄책감이 드리울 것이며 그 사랑의 기억이 서서히 행운을 그립게 만든다. 그럼에도 우리는 사랑을 한다. 네가 나의 행운일 것이라, 내가 너의 행운일 것이라 믿으며 서로의 행복을 빌면서 사랑을 한다. 춥게만 느껴지던 날들을, 잿빛으로 보이던 세상을, 아무런 향기가 느껴지지 않던 거리를, 마냥 똑같이 보이는 일상을 바꿔주리라 기대하고 소망하며 사랑한다. 그렇게 쏟아낸 시간과 노력은 나중에 허무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우리의 사랑이란 이름으로 쌓아둔 것들은 새롭게 만들어낼 행운에 밑바침이 되어준다. 그리고 잊지 못할 가슴 시린 기억들은 어느새 따뜻했던 순간의 추억으로 남아있는다. 우리는 마음에 따뜻함을 위해 사랑을 하고 그 소중함을 위해 이별을 경험한다. 그렇게 얻어낸 경험은 내 마음의 색을, 빛을, 온도를 바꾼다. 행운이 되어라. 행운을 찾지 말고 스스로가 그렇게 되어라. 불행을 주고 떠난 이를 원망하지 말고 남겨놓고 온 것에 큰 죄책감을 가지지 말자. 서로의 행운이 지나와 불행으로 느껴졌을 정도의 마음이었을 뿐이다. 보다 큰 행운이 되어 주기 위해 노력하란 뜻이지 면죄를 뜻하는 바가 아니다. 사랑하자, 뜨겁게 보단 따뜻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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