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 처음으로 그것을 느낀 것은 메신저창 맨 위에 네가 없는 것. 항상 일어나자마자, 다른 것을 하다가 핸드폰을 드는 순간 곧장 들어가던 연락창에 더 이상 너의 문자가 없을 때. 그 메신저 창의 프로필 사진과 배경사진에 너와 관련된 사진이 아닐 때. 사진첩의 대부분을 지워버려서 용량이 남아돌 때. 더 이상 내 핸드폰에서는 너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다 간간히 집안에서 보이는 너와 함께한 추억이 묻은 갖가지 물품들. 함께 시내에 나가서 서로에게 입히며 사주던 옷들과 괜히 오락실에서 멋있는 척하려 했던 뽑기 물품들, 한편에 아직 차마 버리지 못하고 남겨둔 편지와 같이 맞춰서 샀던 커플 아이템들. 곳곳에 있는 너의 흔적이 보기 싫어 집 밖으로 뛰쳐나왔다. 걸으면 걸을수록 더욱 많이 보이는 너와의 추억. 한 걸음걸음마다 새로운 영화를 경험하는 듯 수많은 기억의 영사기가 돌아간다. 더 이상 이 주변의 식당, 카페, 편의점, 영화관 그 어떤 곳에서도 너와의 새로운 추억을 만들지 못하고 지나간 시간만 곱씹어야 한다. 그래도 애써 추억을 묻으려 했다.
주변에서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 잊은 척, 마음에 묻은 척 지내려는 나를 놀리듯 너의 기억을 꺼내려 애를 쓴다. 네가 무슨 알바를 시작했느니, 어디를 놀러 갔다니 하는 주변의 비둘기들의 외침에 발을 굴려 쫓으려 하였으나 이내 다시금 돌아오는 것은 추억의 파편들이었다. 이것저것 굴러오는 새로운 얘기들에 너와 함께 둘이서 나누던 추억들이 떠오른다. 이제는 이런 얘기를 주변을 통해서 밖에 못 듣는다는 사실이 또다시 슬픔에 빠트린다. 처음에는 마음의 잔여물이 남아 주변에 너의 소식을 묻고 다녔다. 그렇게 몰래 너의 소식을 듣고 다니는 나의 모습이 한순간 바보같이 느껴져 애써 헤어 나오려 주변인들 사이에서 마저도 너의 이야기를 묻었다.
너의 행복을 빌었다. 한때 없이 못 살만큼 사랑했던 사람으로서. 헤어지는 마당에 이런 말을 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을 가져왔지만 그 상황에 처하니 할 말이 없었다. 그저 잘 지내라는 말 한마디로 그동안의 감사와 앞으로의 안녕을 표현할 수 밖에는. 언젠가 너도 나도 새로운 사람을 만나서 또 다른 사랑을 하고 또 다른 행복을 느낄 것을 분명하다. 하나 지금만큼은 네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감정 실린 눈빛을 보낼 것이라 생각하니 내심 섭섭함이 밀려온다. 이기적이고 정말 쓸모없는 감정임을 알면서도 차마 밀어내지 못하는 것은 미련일까.
너와 함께한 시간이 후회되지 않고 만남부터 헤어짐까지 그 어느 순간하나 못났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우리는 사랑했어로 만났고 감정을 잃어 헤어졌을 뿐이다. 세상에 좋은 이별이 어디 있겠냐만은 우리의 이별은 둘 중 하나가 추하다 생각되지는 않는다. 이런 이별에 후회는 없으나 이상하게 남아 있는 감정이 미울 뿐이다. 그 어느 것 하나 모자람 없었다 생각하면서도 왜 잊지 못하고 계속해서 혼자 묻어둔 타임캡슐을 참지 못하고 열어보는가. 일단 또다시 눈을 감아 어둠 속으로 빠져든다. 보이지 않는 곳에 너를 묻어두기 위해서. 그러다 내일이 오면 빛 속에 더 이상 없으리라 빌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