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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부는날 Dec 03. 2019

우리가 함께였던 시간

삶이 끝나기 얼마 전, 엄마는 고비를 넘겼었다. 턱 부위에 생긴 문제로 입원과 수술을 했는데, 지독한 불면증에 시달리던 허약한 상태로 견뎌내기 어려웠던지 심장에 문제가 생겼다. 새벽에 부정맥이 왔고 당직 의사들은 엄마를 침대에 묶어 치과병동에서 옆 건물 응급실로 뛰었다. 응급처치로 심장이 돌아왔고 의식을 찾았다. 자다 깨서 전화를 받고 황망한 정신으로 달려갔을 때 다행히 엄마는 괜찮아져 있었다. 병동을 옮겨 다시 입원을 하고 수술을 했다. 마침 이례적으로 긴 추석 연휴였다. 나는 종일 엄마와 함께 있을 수 있었다.


엄마와 같이 살지 않은지도 5년 이상의 시간이 지났고, 그렇게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는 건 오랜만이었다. 엄마는 미안해하면서도 내가 옆에 있는 것을 내심 좋아했다. 팔에 꽂힌 주사와 기구들 때문에 화장실 갈 때도 도움이 필요했다. 정말로 우리는 온종일 함께 있을 수밖에 없었다. 옆에서 보니 정말 심각한 건 심장이 아니라 우울증으로 인한 불면증이었다. 복용 중인 약도 있었고 신경정신과 의사를 불러 재차 상담도 하고 새로운 처방도 받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회복을 하려면 엄마는 무조건 자야 했다. 하지만 자야 한다는 생각과 자지 못한다는 불안이 더욱 수면을 방해할 뿐이었다.


어느 날 나는 집에서 가져온 책을 꺼냈다. 이석원의 에세이집이었다. 엄마에게 읽어보라 하니 책에 집중이 되지 않는다고 거절했다.


"엄마, 내가 읽어줄 테니까 들어봐."


내가 한 줄, 한 줄 천천히 읽자 엄마는 팔을 베고 옆으로 누워 가만히 들었다. 재미있는 부분에선 희미하게 웃기도 하고, 어떤 부분에서 과거를 떠올리며 이야기하기도 했다. 그 시간이 참 좋았다. 내 목소리를 가만히 듣고 있는 아이 같은 엄마가 사랑스럽기도 하고 한편으로 가엽기도 해서 괜히 목이 매다.


어느새 엄마는 잠이 들었다. 새근새근 규칙적인 숨소리가 어찌나 반갑던지. 나는 혹여나 엄마가 깰까 봐 조심스레 책장을 덮고 잠든 엄마를 가만히 바라았다.


그렇게 따뜻한 시간이 있었다. 하지만 나는 후회 때문에 이 시간들을 돌아보기 어려웠다. 우리가 그렇게 가까웠던 며칠, 수없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던 시간, 그때 엄마가 나에게 보여준 위험한 마음의 상태와 나의 부족한 위로들... 엄마가 얼마나 괴로운 고통에 맞서고 있었는지, 해줄 수 있는 게 무엇인지 알 수 있었던 나. 내가 할 수 있었지만 하지 않았던 선택들... 그 모든 후회들이 그 시간을 떠올리지 못하게 했다.


학교로 돌아간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교사를 대상으로 한 자살예방교육을 받았다. 전엔 별생각 없이 들었던 내용이었다. 자살을 막을 수 있는 방법과 가까운 사람의 역할이 빼곡하게 적힌 유인물을 에 들고 강사의 건조한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그냥 사라져 버리고 싶었다.


이론적으로도 나는 엄마를 구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엄마는 나에게 죽고 싶은 마음을 이야기할 수 있었고, 내 목소리에 잠들 수 있었으니까. 내가 계속 곁에 있었더라면, 내가 최선을 다해 엄마를 돌보았더라면 엄마는 겨낼 수 있지 않았을까? 그 마음에 대해 더 많이 이야기했더라면? 내가 엄마에게 맞는 전문의를 찾을 수 있었다면?


하지만 나는 결국 딸일 뿐이었다. 퇴원을 하고, 엄마도 나도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엄마 이모와 아빠의 보살핌에 맡기고 나의 생활로 홀가분하게 복귀했다. 며칠 새 엄마는 잠도 늘어나고 몸 상태도 호전되면서 입맛도 좋다고 했다. 이제 엄마 걱정 안 해도 된다는 말에 그냥 안심해 버렸다. 드디어 어두운 터널을 지나 밝은 곳에 도착한 줄 알았다. 그 앞에 시커먼 낭떠러지가 있는 줄도 모르고.


 후회하지 않을 방법은 없다. 세상에 무슨 수를 써도 긍정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게 있다. 엄마의 죽음을 두고 '차라리 잘됐다.'라고 말할 수는 없으니까. 완전히 어쩔 수 없었던 것도 아니다. 그 고비를 넘기고 회복했을 수도 있다. 그 가능성이 아무리 잔인해도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나에게 이야기해 본다. 나는 진실로 엄마의 딸이지 엄마는 아니었다고. 그래, 내가 부족했고 결국 엄마를 삶으로 끌어오지 못했지만 나름대로 애쓰고 있었다. 매 순간 절실한 내가 거기 있었다.


그해 가을의 나를 가만히 쓰다듬어 본다. 비로소 그때 병실에서 나를 그렇게 쓰다듬던 엄마의 손이 기억난다. 고마움과 미안함과 걱정과 위로, 의지와 두려움이 뒤섞인 복잡한 손. 나도 엄마를 그렇게 쓰다듬었었다. 그때 우리는 그렇게 서로를 만지고 두 손을 맞잡았었다. 만약 엄마가 살아남았다면 우리가 종종 함께 떠올리며 가슴 한쪽이 복잡하게 뜨거워졌을...


감사한 시간들. 아픈 엄마와 애쓰던 내가 함께 보낸 순수한 시간들은 이 세상 단 한 사람, 나에게만 남아있다. 이 기억마저 엄마처럼 홀연히 날아가버리기 전에 내가 꼭 붙잡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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