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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부는날 Nov 14. 2019

아픔이 자라서 자랑이 되었다.

오빠는 모든 것이 느렸단다. 18개월에 첫걸음을 뗐다는데 아이를 키워보니 얼마나 느린 건지 이제야 실감이 된다. 말을 하도 안 해서 병원에 데려갔더니 치료가 필요하다고 했단다. 아빠의 반대로 치료는 못하고 애타게 기다리다가 드디어 말을 하기 시작했을 때, 세발자전거를 탄 채로 계단에서 굴러 떨어져 앞니가 다 부러졌다. 그래서 발음이 다 는 통에 오빠가 하는 말을 아무도 알아듣지 못했다고 한다.


오빠는 굉장히 내향적인 성격이다. 어릴 때부터 많은 친구들과 어울리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그럴 수도 있는 건데, 엄마는 이사를 자주 다니는 바람에 사회성에 문제가 생긴 것 같다며 걱정을 했다. 엄마가 나서서 친구를 만들어주려고 해 보기도 하고 담임 선생님에게 부탁을 하기도 했다. 아마 오빠는 그게 훨씬 힘들었을 것이다.


그렇게 엄마를 애타게 하던 오빠는 점점 학습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특히 수학에 비상한 재능을 보였다. 당시 초등학교의 한 선생님이 수학을 잘하는 학생들을 모아 수학경시대회 준비반을 만들었는데 거기에 합류했다. 오빠는 그 안에서도 가장 뛰어났고 대회에 나가는 족족 상을 휩쓸었다. 엄마는 이제 걱정을 넣어두고 오빠를 자랑스러워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수학경시반 수업이 있는 어느 날, 오빠가 이른 시간에 집에 와 버렸다. 수업은 어쩌고 집에 왔냐는 엄마에게 오빠는 이제 거기에 안 가기로 했다며 방문을 쾅 닫았다. 놀란 마음에 선생님에게 전화를 하니 오빠가 버르장머리 없이 행동해서 혼을 냈다며 내일 와서 용서를 구하면 다시 받아주겠다고 했다.


오빠에게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이랬다. 그날 오빠가 학급 주번이라 남아서 청소를 했단다. 끝내고 수학경시반에 가니 늦게 왔다며 혼이 났단다. 청소를 하고 왔다고 하니 선생님이 무엇이 더 우선이냐고 물었단다. 그래서 당연히 청소가 우선이라고 대답했고 그렇다면 나가라고 하길래 바로 나왔다고 했다. 다시는 돌아가지 않겠다며.


틀린 구석이 하나도 없는 말을 듣고 엄마는 할 말이 없었다. 그래도 그만두기는 너무 아까우니 잘못했다고 말씀드리면 안 되냐고 설득해보았지만 오빠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평소에 자기주장을 별로 하지 않는 아이일수록 한번 마음먹으면 대단히 강한 법이다. 엄마는 설득을 포기했지만 이 상황이 너무나도 슬펐다. 얼마나 좋은 기회인데... 엄마는 안방에서 숨죽여 울었다. 그래도 엄마가 울고 있었던 건 나도 알았으니 오빠도 당연히 알았을 것이다. 엄마는 울고 나서 마음을 접었다. 수학보다 중요한 것을 지키는 게 맞다고 결론 내렸다.


다음날 학교에서 돌아온 오빠는 엄마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했다. 수학경시반 다시 나가기로 했다고. 그 말을 듣고 엄마는 어제보다 더 많이 울었다.


이 이야기는 내 기억에도 있지만 엄마에게 하도 많이 들어서 바로 어제 있었던 것처럼 느껴지는 일이다. 엄마는 이 말을 하고 또 하면서도 그때마다 눈이 빨개졌다. 걔가 그런 애였다고, 그렇게 속 깊은 애를 내가 그렇게 걱정을 했다고. 그럴 때마다 나는 조금 억울했다. 나는 평소에 오빠보다 더 엄마 말도 잘 듣고 뭐든 열심히 했던 것 같은데 오빠는 한 방으로 그냥 이겨버리네? 이런 느낌이랄까...


그런데 억울해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오빠는 겉보다 속이 멋있는 사람이다. 어릴 때 키우던 복돌이라는 강아지가 있었는데 나는 기분 좋을 때 같이 기나 했지 정작 밥 주고 똥 치워주는 건 오빠였다. 공부를 잘하던 오빠는 지금 의사가 되었는데 겉으로 친절하진 못해도 아마 좋은 의사일 것이다.


어려선 엄마의 아픔이었지만 자라서 자랑이 된 오빠. 하지만 자랑이 된 후에도 오빠를 습관적으로 아파하던 엄마. 오빠에 대한 엄마의 사랑은 나에 대한 것과 또 다른 무엇이 있었다. 아마 오빠는 혼자서 많이 울었을 것이다. 그 안타깝고 사랑스러운 눈빛에 다 대답하지 못한 게 미안해서.


하지만 너무 아파하지 않길. 다 대답할 수 없을 만큼 너무 큰 마음이었. 그리고 사실은 다 대답. 앞니가 없는 아이가 하는 말도 엄마는 다 알아 들었듯이, 오빠가 하지 않은 말도 엄마는 다 들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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