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은 똑같은데 마음이 부산하다. 오랜만에 쓰고 싶은 것이 떠올라 자리에 앉아 휴, 숨을 고른다.
곧 3월이 복직이다. 복직과 동시에 새로운 학교로 옮기게 되었다. 다니던 학교에 가서 복직원을 비롯한 이런저런 서류를 냈다. 그때부터였나, 심장이 평소보다 미세하게 빨리 뛰고 엉덩이가 약 0.1mm 정도 떠 있다. 이 마음이 뭐더라... 그래, 첫 출근 전의 기분이다.
어린 나는 장래희망이 너무 많아 하나를 정할 수 없었지만 단 한 번도 교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은 안 했다. 앞에 나가 큰 소리로 말하는 게 싫었고, 사람에게 직접 영향을 끼쳐야 하는 일이라서 싫었다. 내가 하고 싶고, 할 수 있는 일의 정 반대에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20대 중반을 넘어갈 때쯤,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내내 선생님이라고 불리고 있었다. 가르치는 일만큼 시간 대비 큰 보상을 주는 아르바이트는 없었으니까. 그럼에도 생활비와 작업실 유지비, 재료비 등을 감당하기는 어려웠다. 대학 때 집으로부터의 독립을 조건으로 받아놓은 교사자격증이 떠올랐다. 어차피 계속 가르칠 거, 교사가 되면 안정적인 수입과 떳떳한 체면을 챙길 수 있겠구나!
서울 시내와 경기도까지 공고가 나온 모든 학교에 기간제 교사 원서를 넣었다. 울리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며 내가 큰 착각을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여기엔 간절한 마음을 품은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 이토록 시시껄렁한 태도로 기웃댈만한 곳이 아니었다. 거의 모든 학교의 최종 공고가 나오고 겸허히 마음을 접었을 때, 뜻밖에 서울의 한 사립고등학교에서 연락이 왔다.
살면서 반드시 겪어야 하는 시간이 있다면 나에겐 그 1년이 그랬다.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큰 기쁨과 좌절감이 공존하던 시간이었다. 아이들의 눈을 떠올리기만 해도 이유 없이 행복해졌다. '이렇게 좋은데 월급까지 주다니!' 진심이었다. 빨리 학교에 가고 싶어서 저절로 눈이 떠졌고, 주말엔 어서 월요일이 되었으면 했다. 꿈처럼 느껴지는 순간들이 매일 있었다. 반면 나는 자주 억울해졌다. '내 식구가 아니면 믿을 수 없다'는 학교장의 생각에 의해 유독 기간제 교사의 수가 적었다. 교직사회 속에는 어김없이 서열과 무리가 존재했고 나는 영원한 타인이었다. 그냥 타인이면 깔끔하련만, 자꾸만 나에게 실체 없는 희망을 보여주며 이용하려는 사람들이 있었다. 아무 의미 없는 업무를 하느라 보수 없는 야근을 계속해야 했고, 배려 없는 말과 행동들에 자주 상처 받았다. 그러면서도 그 희망을 외면하지 못하는 내가 절망스러웠다.
1년이 지나고, 아무런 언질도 없이 내 자리에 새로운 공고를 낸 학교를 떠났다. 꼭 필요한 빛과 어둠을 동시에 안겨준 선물 같은 시간이었다. 운동장을 가로질러 걸어 나오던 난, 1년 전의 내가 아니었다.
사람들은 내가 임용시험에 붙었다고 하면 꽤 똑똑한 사람인 줄 알지만, 그게 아니라 난 꽤 절실한 사람이었다. 계약직이 아닌 '정교사'가 되고 싶은 마음도 컸지만, 그보다 더 큰 동기는 아이들의 눈이었다. 그 눈을 오래오래 보며 살 수 있다면. "내년엔 저희 담임해주세요." "졸업하면 꼭 찾아올게요." 투명한 그 표정에 함께 웃을 수 있다면.
하지만 비로소 편안한 자리에 앉게 되자 그 절실한 마음은 자주 잊혀졌다. 결혼을 하고, 임신을 하고, 내 생활에 중요한 것들이 많아질수록 아이들의 눈을 공들여 보는 시간이 줄어들었다. 휴직 직전 비담임이었던 1년은, 부끄럽게도 아이들의 이름과 얼굴이 거의 떠오르지 않는다. 육아휴직 동안은 학교를 아예 잊고 살았다. 그러다 이제야 문득, 그때 그 마음이 두둥실 떠오른 것이다.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다. 어차피 나라는 교사는 나라는 인간을 넘어설 수 없다. 아무리 허풍을 떨어도 아이들은 내가 어떤 인간인지 다 알아본다. 이런 내가 아이들에게 필요한 존재가 될 수 있다면, 이유는 무엇일까?
사람들 앞에서 말하기를 싫어하는 나는 잘 듣는 사람이다. 한 아이의 이야기를 조용히 듣는 것을 좋아한다. 그렇게 보이지 않아도 사실 아이들은 어른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니까. 별다른 결론이 나지 않아도 그냥 옆에 앉아있었던 그 시간에 의미가 있었던 경험이 있다. 영향을 끼치는 것을 싫어한다는 것은 영향력을 두려워한다는 것이다. 나는 아이들 앞에서 '어떠해야 한다.'라는 말을 잘하지 못한다. 대신 '그럴 수도 있겠네.'라고 한다.
비록 내가 무슨 말을 하면 저 뒤에 앉은 아이가 "하나도 안 들려요!"라고 소리치고, 소란스러운 교실을 잠재울 카리스마라곤 1도 없으며, 시간이 남을 때 재미난 썰을 풀 입담조차 없는 존재감 낮은 교사지만, 그래도 아이들의 말을 조심스럽게 들어주는 사람. 내가 될 수 있는 최상의 모습 아닐까.
첫 출근 전과 같은 설렘을 꼭 안은 지금, 그때와 다른 점이 있다면 이미 나의 한계를 알고 있다는 것이다. 가장 좋은 모습의 내가 되고 싶다. 그 생각에 마음이 조금 더 두둥실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