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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부는날 Jan 16. 2021

경험에 대해서

어린이의 세계(김소영) 독후감

새해 선물을 받았다. 선물을 보낸 친구는 다른 친구에게도 같은 선물을 보냈다. 얼마나 널리 읽게 하고 싶었으면! 그는 짐짓 권위적인 분위기로 우리에게 말했다. "어서들 읽고, 독후감 쓰라구."


그래서 쓰는 독후감이다.


읽은 책: 어린이의 세계. 김소영.


사실 숙제를 받지 않았더라도 뭔가 쓰려했을 듯싶다. 좋은 책들 중에는 유독 그런 책이 있다. 쓰고 싶게 하는 책. 좋은 생각이 들어있는데, 빈틈없않고 군데군데 내 자리가 남겨져 있는 책. 저자가 잘 왔다며 의자 하나를 빼주는 그런 기분 들게 하는 책.


이 책을 읽고 난 후 본능적으로 튀어나오는 독후감은 아마도 반성문이다. 어린이였고 현재 어린이와 함께 세상을 살아가며, 심지어 어린이 자녀를 둔 성인으로서 내가 지금껏 어린이를 어떤 존재로 간주해왔으며 어떻게 대해왔는지... 처음부터 끝까지 곰곰이 생각하게 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노인이 되는 과도기에 있지 않은 것처럼 어린이도 성인이 되는 과도기에 있는 것이 아니다' 라거나 '어린이의 품위를 지켜주는 어른이 되고 싶다'라거나... 이런 뜻하고 점잖은 문장들 앞에서 어찌 고개를 빳빳이 들 수가 있단 말인가.


하지만 반성문은 애써 넣어두고 다른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한다. 떤 문장 하나가 가시처럼 턱 걸려서 말이다.


서문에 저자가 어린이에 대해 글을 쓸 생각을 그간 하지 못했던 이유에 대해 쓰여있는데, 양육자가 아니기 때문에 자격이 없다고 느꼈고, 더군다나 "네가 애가 없어서 그래"라는 말을 자주 들어왔다고 한다. 아마도 이 책에 담긴 어린이에 관한 이야기들, 깨끗한 존중이 담긴 어린이에 대한 (당연하지만 희귀한) 시선을 내비쳤을 때 상대방의 반응이 저렇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네가 애를 안 키워봐서 좋은 면만 보는 거라고. 한번  낳아보면 그런 소리 쏙 들어갈 거라며. 그런 대화를 상상하니 목구멍 안 쪽이 콱 막힌 것처럼 답답하다.


내가 아이가 없는 교사였을 때 '애를 낳아 키워보면 학생들이 달라 보일 거다.', '부모가 돼야 진짜 교사가 되는 거야' 이런 말을 종종 들었다. 그런가 보다 하며 들었지만, 실은 그런 말들은 나를 쪼그라들게 했다. 미완성인 내가 아이들에게 하는 말이나 행동이 자신 있을 리가 있겠나. 나에게 그런 말을 했던 (부모이자) 교사들은 완성된 교사였는지 따져볼 생각도 못했다. 왜냐면 아이가 있는 교사의 생각은 내가 짐작할 수가 없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경험하지 못한 것을 어떻게 부정할 수 있겠는가.


나는 아이가 있는 교사가 되어 학교로 돌아갔다. 2학년 남학생반의 담임을 했다. 그런데 과연 그 전과 다르긴 달랐다. 아이들 하나하나 더 신경이 많이 쓰였고 귀하게 여겨졌다.


그러나 그런 이유는 아니었다. 나보다 한두 뼘은 더 큰 18살 남자애들이 모두 자그마한 아기였다는 사실이 상기되었다거나, 애를 키워보니 이렇게 잘 자란 아이들이 새삼 대견해 보였다거나... 런 이유는 아니었다.


2년의 육아휴직기간이 너무 답답하고 힘들어서 직장에 돌아가니 아주 살 것 같았기 때문에. 내 직장에 속한 모든 것이 다 소중해졌다. 아이들 뿐만 아니라 교무실 내 자리와 미술실, 직장동료들과의 관계 등 모든 것이 다. 그러니까 경험이 아니라 마음이 달라진 것이다.


종종 그런 이야기가 들린다. "그 선생님은 애가 없잖아. 그러니까 그러지." "아직도 몰랐어? 그 사람 미혼이잖아. 딱 티가 나는데." 교사들조차도 애 없는 교사는 이해심이 부족하고, 결혼하지 않은 교사는 히스테릭하다는 비상식적인 통념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아니 벗어날 생각이 없다. 그런데 가끔 좀 말이 안 통하는 사람을 만나면 속으로 '결혼은 했을까, 애는 있나?' 궁금해하는 나를 보고 흠칫 놀라기도 한다


경험은 중요하지만 그저 나에게 중요할 뿐. 어떤 판단의 근거로서는 아무것도, 아무것도 아데.


점점 커가는 나의 아이를 키우는 경험은 내가 청소년들을 이해하는데 당연히 도움을 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성장과 변화는 내 일이다. 그러니까 기준이 내 시작점이라는 말이다. 어떤 교사는 그런 경험 없이도 좋은 성품으로 인해, 혹은 다른 경험을 통해서 나보다 아이들을 더 잘 이해한다. 어떤 경험이 나를 변화시켰다고 해서 그 경험이 없는 사람과 내가 다르다고 생각하는 것은 시건방이다.


자녀가 없는 김소영님의 책, [어린이라는 세계]를 읽고 나서 나의 아이는 물론이고 길에서 마주치는 어린이들이 다르게 보인다. 복잡한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료들로, 친절하고 잘 웃는 이웃으로, 덜 큰 사람이 아니라 작은 사람으로.


유가 "나는 너무 작아요. 엄마만큼 커지고 싶어요."라고 했다. 전에는 밥 잘 먹고 잘 자면 엄마보다 커질 거라며, 그러니까 골고루 잘 먹고 일찍 자라는 훈계를 내포한 대답을 했던 것 같다. 오늘 유가 커지고 싶은 이유와 큰 사람으로 사는 것과 작은 사람으로 사는 것의 차이, 좋은 점과 나쁜 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잠자리에 나란히 누워 은유가 말했다. "엄마 나는 자근게 조아요."


리는 매일매일 살다 보니 어느새 이렇게까지 자랐다. 그리고 이제는 이상하게 자라지 않도록 조심야 할 때다. 이 책으로 나를 한번 돌아보았고, 좋은 쪽으로 조금 자란 듯한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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