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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부는날 Dec 10. 2019

비밀의 베란다

그냥 세탁소 건물이다. 위에 창문이 몇 개 있긴 한데 거기에 누군가 살고 있으리라고는 잘 짐작이 안 되는. 피터팬을 통해 만난 주인아주머니를 따라 세탁소 옆 작고 어두운 현관으로 들어갈 때만 해도 계약서를 쓸 생각은 없었다.


계단을 오르자 6개의 문이 보였다. 5개는 현관문이고 1개는 공용세탁실. 아주머니는 5개 중 유일하게 반대쪽에 있는 문을 열었다. 유일하게 반대쪽에 있다는 은 유일하게 빛이 들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세탁소 위 존재감 없는 4개의 창문들에도 속하지 않는 숨겨진 방. 테트리스처럼 있을 건 다 들어차 있는 컴컴한 방에서, 아주머니는 다른 것보다 창문이 있다는 사실을 유난히 강조했다. 분명 있긴 있었다. 창문을 열어도 바깥이 아닌, 희한한 창문이.


그 집을 고른 첫 번째 이유는 독보적으로 싼 월세였다. 이 대목에서 어려운 시절 회상하는 표정 지으면 사기 치는 거다. 우리 집은 학교에서 버스로 30 걸리는 서울 한복판의 40평대 아파트였다. 어릴 적부터 '독립'이 장래희망이었던 내가 스무 살부터 부모님을 조르고 졸라 3년 만에 드디어 얻어낸, 매우 비겁하게 가난한 자취생활이었다. 아무리 싸도 어디 한구석 마음에 드는 곳이 있었으니 기어 들어갈 수 있었을 거다. 두 번째 이유는 바로 그 이상한 창문이었다. 일부러 캐릭터 블라인드까지 달아서 가려놓은 그 창문을 여니 창문과 같은 높이의 작은 공간이 있었다. 그곳으로 고개를 내밀어 위를 올려다보면 높은 시멘트 벽과 나뭇가지들 사이로 가까스로 하늘이 보였다. 그 건물은 가파른 언덕에 파묻힌 형태로 지어져 있어서 앞에서 보면 2층 건물이지만 뒤에서 보면 (볼 수 없지만) 지하벙커 같은 형태였다. 그러니까 그런 건물의 안쪽에 위치한 나의 방은 바깥에서는 그 존재를 도저히 상상할 수 없었다.


베란다라고 해야 하나? 창문 밖의 그 공간에는 걸터앉기 딱 좋은 턱이 있었다. 나는 마치 탈출하듯 창문을 비집고 나가서 그 턱에 쪼그려 앉아있길 좋아했다. 필연적으로 흡연이 본격화되었다. 이름도 가물가물한 누군가 때문에 울기도 하고 기타를 끌어안고 말 안 되는 노래 불렀다. 방음이 안 되는 방의 창문을 닫고 거기에 나가(혹은 들어가) 있으면 무슨 짓을 해도 들키지 않을 것 같은 편안한 마음이 되었다. 나는 거기서 내 생애 가장 비효율적인 방식으로 시간을 흘려보냈다. 낭비하고 또 낭비해도 도무지 낭비할 것이 부족해서 갈증이 나던 시절이었다.


얼마 전 우연히 그 골목을 지나갔는데 세탁소 건물은 온데간데없고 그 자리에 꽤 모던한 모양새에 보안이 철저해 보이는 원룸 건물이 들어서 있었다. 모든 것이 과거에 묻혀버린 듯한 기분이 잠시 들었지만, 가만 보니 가파른 언덕은 그대로다. 그렇지, 갑자기 산을 깎을 수는 없지. 2019년의 어떤 아이도 피터팬에서 만난 아주머니를 따라 외관이 멋진 건물에 따라 들어가, 빛은 들지 않고 공기만 어떻게 조금 통하는 방에 들어가 있을지 모른다. 많은 것이 변하는 것 같아 보여도 완전히 변하지는 않으니까. 금의 나처럼.


머물던 공간이 그 사람의 성분에 미치는 영향은 어느 정도일까. 이상한 베란다에 쪼그려 앉아있던 시간은 나에게 무엇을 남겼을까. 나의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그 시간으로부터 온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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