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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학교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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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부는날 Jul 24. 2023

우리가 원하는 교권은

서이초 선생님의 죽음으로 온 나라가 떠들썩하다. 나는 추모를 하러 가거나 애도의 글을 쓰거나 국화꽃 이미지의 프로필사진도 걸어놓지 않았지만, 마음이 쓰다.


사람들은 강남의 극성 학부모들과 위아래를 모르는 문제아들을 탓한다. '교권의 추락'이라는 말은 마치 악한 이들이 쇠공을 던져 교권이란 것을 바닥으로 떨어뜨린 것만 같은 느낌을 준다. 학부모와 학생은 가해자, 교사는 피해자인 것 같다. 하지만 이런 구도 속에 쏙 빠져 있는 것은 바로 '조직'이다.


사회는 변한다. 그 안에서 계층의 의미도 변하고 위아래도 변한다. 과거에 교사가 학생과 학부모보다 위에 있었다면 현재는 그렇지 않다. 이것을 교권의 추락이라고 할 수는 없다. 사회에 만연하던 무의미한 권위주의가 힘을 잃어가는 것은 자연스럽고 바람직한 현상일 뿐. 교권의 의미를 과거의 교사가 학교에서 가졌던 (때로는 독재적인) 힘이라고 해석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그것을 되돌려주길 바라는 것이 결코 아니다.


우리의 조직이 제 역할을 하길 바란다.

어떤 직업에나 괴로운 존재가 있기 마련이다. 우리의 직업에는 악성 민원과 공격적인 아이들, 비상식적인 학부모가 언제나 함께 할 것이다. 그러나 힘든 상황에서 가장 우리를 강력하게 타격하는 것은 그들의 폭력이 아니라 날 지켜줄 존재가 전혀 없다는 사실이다. 서이초 선생님이 느꼈을 것도 아마 그런 무력함이었을 것이다.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면, 학교 안에서 우리의 상사는 딱 두 명이다. 교장과 교감, 관리자라고도 불린다. 교사를 향한 민원이 들어오거나 학급 내에서 문제가 생겼을 때 학교 내에서 우리를 제도적으로 지켜줄 수 있는 사람은 교장과 교감 뿐이다. 그러나 이 분들은 제도적으로 그런 존재가 되기 어렵다. 우리보다 훨씬 더 민원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두려워할 수 밖에 없다. 민원에 엮여서 소송이라도 당하거나 하다못해 구설에라도 오르게 되면 여태 쌓아온 승진을 위한 노력이 물거품이 될 수도 있다. 수많은 사례가 마치 괴담처럼 떠돈다. 교장 승진을 목전에 앞두고 학폭 민원에 걸려서 퇴직했다더라. 지금도 재판이 안 끝났다더라.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사의 편에 서는 훌륭한 분들이 많이 계신다. 서이초의 경우도 꼭 그랬으리라고 믿고 싶다. 그러나 나는 개인의 마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동료교사들 또한 위로의 말은 건내겠지만, 진정으로 같은 편에 서서 목소리를 내기에는 두렵다. 어차피 방어막이라고는 없는 곳에 나 하나를 필사적으로 지켜야 하는 모두 같은 존재이기 때문에. 동료를 돕다가 나까지 엮여들어가면 결국 누구도 지켜주지 않기에. 어떤 이들은 오히려 더 진한 선을 긋고 다른 얼굴을 보이기도 한다. 물에 빠진 사람을 발견해도 나의 안전이 확보되지 않으면 절대로 물에 들어가지 말라고 하지 않는가.


우리가 바라는 교권은 교실 내에서의 권위가 아니라, 조직의 울타리다. 부당한 일을 당할 때, 사람의 인정이나 선량한 마음 말고 제도적으로 우리를 지켜주길 바란다. 일단 그것이 확보되어야 구성원들은 문제 앞에서 선량한 얼굴로 서로를 바라볼 수 있다. 진정한 도움의 손길을 내밀 수 있다.


그 분의 죽음이 우리에게 유리한 변화를 만들어주길 바라도 괜찮은 것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아무런 변화도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그것 또한 죄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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