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바람부는날 Jun 19. 2018

브런치와의 만남

브런치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 한다. 먹는 거 말고 지금 이거 말이다.


브런치를 처음 알게 된 날을 정확히 기억한다. 이제 막 봄이 시작되고, 그간 외출이 어려운 핏덩이 아기+추운 날씨 덕에 집안에 감금되어 살다가 바깥공기를 쐬니 아 이제 비로소 살 만하다 싶은 그런 때였다. 그 때쯤 아기돌봄서비스를 통해서 정기적으로 아이를 맡길 믿을만한 선생님을 만났다. 봄이 시작됨과 동시에 꿀같은 자유시간이 생겼다.


그 날은 간만에 날씨가 따뜻해서 카페 테라스에 앉아 책을 읽었다. 임경선님의 에세이였던 것 같다. 요새 나는 주로 에세이를 읽는다. 몇년 전 까지만 해도 에세이만 빼고 읽었다. 재미가 없었다. 시시콜콜 다른 사람의 일상과 생각이 도무지 궁금하지 않았다. 베스트셀러인 책을 펼쳐봐도 이런걸 왜 읽나 싶었다. 그러다 에세이를 꽤 읽기 시작한건 30대 들어서면서부터. 요새는 거의 에세이만 읽는다. 취향에 맞는 에세이는 소설보다 재미있다. 변화의 이유가 뭘까. 이젠 사는게 소설보다 재밋다고 생각해서일까. 모르겠지만 여하튼 그렇게 됐다.


그날 테라스에서 타인의 일상, 취향, 생각을 읽는게  참 재미있다는 생각을 했다. 나도 한번 써 보고 싶기도 했다. 그러다 머릿속에 놀라운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너무 놀라워서 혹시 나는 천재가 아닌가 어이가 없을 정도였다.


내가 떠올린건 일종의 플랫폼인데, 거기에 사람들이 글을 쓴다. SNS라고도 볼 수 있는데 트윗이나 페북처럼 짧고 즉각적인 글을 쓰는게 아니라 산문을 쓰는 것이다. 책의 저자와 독자의 관계처럼 작가의 개인정보가 드러나거나 직접 메시지를 주고받거나 하지는 않는다. 원한다면 본인의 정체를 숨기고 글을 쓸 수도 있다. 사람들은 작가이자 독자이고 작가 혹은 독자이기만 한 사람도 있다. 그리고 원한다면 본인의 글을 마치 책처럼 보이게 할 수도 있다. 앞에 목차가 나오고 글들을 넘겨볼 수 있도록. 좋아하는 작가의 글은 구독할 수 있다. 구독을 하면 피드에 그 작가의 새로운 글이 실시간으로 공유된다. 이 플랫폼은 100프로 참여자들에 의해서만 운영되어선 곤란하다. 에디터의 역할이 있어야 한다. 좋은 글을 선정해서 소개하고 작가를 인터뷰하는 등의 기능이 필요하다. 그러고보니 최소한의 작가 선발? 기능 같은 것이 필요할 수도 있으려나. 어쩌면 이걸 통해 신인 작가가 나올수도 있겠구나.


난 너무도 흥분한 상태로 카톡으로 남편에게 내 생각을 마구마구 던졌다. 남편 역시 내 생각을 듣더니 사업성이 있다며 다음카카오 같은 회사에 이 아이디어를 팔면 돈이 되지 않겠냐며 흥분했다. (근데 어떻게 팔지?) 그러더니 아무래도 본인이 퇴사를 하는게 좋지 않겠냐고 섣부른 제안을 하기도 했다.


아니 도대체 이런 생각을 왜 지금까지 아무도 못한거지!! 라고 개탄하다 문득 혹시라도 있지 않을까 해서 검색을 했고 그 뒤의 이야기는 뭐 예상 가능하지요. 부끄부끄.


암튼 그날 브런치를 처음 만났다.


작가 신청을 하고 일주일동안 아무 응답이 없었다. 그 일주일은 뭔가 찝찝하고 불안한 느낌 속에서 ‘하, 이게 뭐라고 내가!’ 와 ‘글을 좀 고쳐볼까? 자기소개가 좀 구린가?’ 사이를 왔다갔다 했다. 이상하게 그랬다. 왜냐면 되게 하고 싶었다. 다행히 합격통보(?)를 받았고 처음으로 올린 글이 다음 첫 화면에 노출되는 바람에 하루 몇만의 조회수를 기록하며 화려한 출발을 했다. 육아라는 보편적 주제 때문이었지만 솔직히 말하면 기분이가 아주아주아주 좋았다!


브런치를 시작하고 나서 작고 중요한 변화가 생겼다. 일단 짬짬이 글을 썼다. 주로 아기를 안고 재우면서 썼다. 아니 아기를 안고 어떻게 글을 쓰냐고? 당연히 못 쓴다. (사지가 결박되어 있는데) 머릿속으로 썼다. 머릿속에서 대강 써 놓은 것을 아기를 침대에 내려놓고 타이핑하며 썼다. 별거 아닌 것 같지만 매우 중요한 변화였다.


작은 아기를 키우는 사람의 일상 속에 아기가 아닌 것이 포함되기는 힘들다. 기껏해야 티비나 스마트폰으로 잠깐씩 도피할 뿐. 주로 나와 관련된 온갖 것들로 가득 차 있던 일상이 갑자기 아기로 가득 차 버렸을 때, 와! 너무너무 행복!하기만 한 사람은 별로 없다. 나도 그렇다.


브런치는 나에게 아주 훌륭한 도피처가 되었다. 나에 대한 글을 쓰는 건 내가 엄마이기도 하지만 나 자신이기도 하다는 그 어떤 느낌을 계속 상기시켰다. 아기가 잘 때 멍하니 티비를 보다가 깨서 앙 우는 소리가 들리면 인상 팍 쓰고 벌써 깼냐 하던 나는 브런치를 시작하고 나서 아기를 조금 더 예뻐하게 된 것 같다. 뭐랄까. 나는 너를 위해 희생하는 존재가 아니라 너를 사랑하는 나 자신이란다. 이런 식이라고 하면 너무 낭만적인가.


그런데 도대체 이 글은 어떻게 마무리 지어야 할지 모르겠네. 브런치에 글을 쓰고 있어 참 좋다. 이런 이야기다. 많이 쓰고 있진 못하지만, 언젠간 흐지부지 그만두게 되겠지만 여하튼 지금 나에게 아주 고마운 존재다. 도대체 누가 이렇게 훌륭한 것을 만들 생각을 했는지. 혹시 천잰가?




매거진의 이전글 아기를 돌보는 자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