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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부는날 Jul 28. 2018

아이를 낳을까 말까

아이를 낳고 난 후 이런 질문을 종종 받는다.

"아이를 낳아야 할지 말지 고민 중인데, 낳아 보니 어때요?"


물론 내 대답에 의해 그들의 중요한 결정이 좌지우지 되지는 않겠지만, 뭐랄까 모종의 책임감 같은게 느껴져서 대답을 하기가 쉽지 않다. 이런 질문에 나는 늘 농담조로 나는 나의 아이를 너무나 사랑하고 후회하지 않지만 그대는 매우 신중하게 결정했으면 좋겠다는 식으로 이야기했던 것 같다. 그런데 혼자서 가만히 생각해 보니 참 할 말이 많다. 그들에게 직접 이야기하진 못했지만. 앞으로 안 하겠지만. 그래서 여기다가 한번 써 볼까 한다.


내가 좋아하는 웹툰 작가 난다님이 최근 아이를 낳아 키우는 것에 대한 에세이를 출간했는데 제목이 '거의 정반대의 행복'이다. 내가 들어본 말 중에 아이를 낳기 전의 삶과 낳은 후의 삶의 차이를 설명하는 가장 정확한 표현인 것 같다.


거의 정반대의 행복.


아이를 낳기 전의 나는 행복했다. 지금은? 물론 행복하다. 삶의 상태를 어떻게 행복과 불행으로 뭉뚱그려 나눌 수 있겠냐만은, 정확히 말하면 자주 행복하다고 생각했고, 지금도 그렇다.


아이를 낳기 전, 내가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순간은 주로 이런 것이었다.


선선하고 화창한 날 뻥 뚫린 도로를 운전할 때, 마침 좋아하는 음악이 라디오에서 나온다거나.

카페에 앉아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도 모르게 집중해서 책을 읽을 때.

사랑하는 사람과 저녁 노을이 지는 공원을 천천히 산책할 때. 혹은 맥주집에 나란히 앉아 시답지 않은 농담을 하며 히히덕거릴 때.

퇴근 후 동네에 새로 생긴 음식점을 가보고 평가하는 것.

집을 마음에 들게 꾸며놓는 것.

주말 아침에 천천히 커피를 내리고 샌드위치 같은걸 만들어 아침을 준비하는 것.  

편한 친구 집에 놀러가 내집처럼 침대에 누워 뒹굴거릴 때도.

좋아하는 영화를 한번 더 볼 때도. 공들여 계획한 여행...


아... 얼마든지 더 쓸 수 있을 것 같지만.....(갑자기 슬퍼짐.)

생각해보면 행복한 거의 모든 순간은 자유로운 느낌과 관련되어 있었다.


이 모든 행복은 이제 없다.

물론 앞으로 이런 순간이 영영 없진 않을 것이다. 아이가 좀 더 커서 기관, 학교에 가게 되고 나도 복직을 하면 각자의 생활이 생기겠지. 그러다 더 커서 독립하게 되면 더 자유로워지겠지.


하지만 아이가 있다는건 단지 혼자 혹은 부부끼리만 있을 시간이 부족해진다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아직 경력 1년도 안된 신입엄마가 하기엔 주제넘는 이야기겠지만, 강렬한 예감이랄까. 그런 거다. 그러니까.


이 세상에

절대 불행해선 안 될 존재가 있다는 것.


그 사실이 주는 무게감이...

의식하지 않고 살다가 문득 그 무게를 의식하는 순간 아찔해진다. 그걸 이미 짊어진 이상, 홀로 있을 때 느끼는 상쾌한 자유로움은 잠깐의 일탈은 될 수 있겠지만 더이상 그 전에 느꼈던 행복의 맛은 아닌 거다.


그러니까 지금의 행복은 그 무거움과 두려움 아래서 느껴지는 안도감 같은 거랄까. 우리가 여기 이렇게 함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주는 묵직한 감동이랄까.


하지만 거의 정반대의 두 가지 행복은 뭐가 더 낫다 할 수 없다. 그냥 전혀 다른 것.


그런데 이 이야기를 조언이랍시고 할 수 없는 이유는 뭐 그래서 어쩌겠느냐 이거다. 뭐가 더 좋은지는 어차피 경험해봐야 아는건데 아이를 한번 경험삼아 낳아볼 수는 없으니까. 그냥 예측할 수 없는 미래를 향해 담담히 가 보는 수밖에.


그러니까 아이를 낳지 않기로 결정했다면 아이를 달고 다니는 피로한 부모들을 비웃으며 산뜻하고 자유롭게 살았으면 좋겠다. 부모가 되어봐야 인생을 안다거나 하는 그런 이야기는 진짜 쓸데없는 소리 같다. 인생 알아서 뭐하나 각자 행복하면 되는거지.


난 아이를 낳을지 말지 고민을 하지 않았다. 부모가 되고 싶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는데, 결혼 직후 덜컥 임신이 됐었다. 너무 당황해서 정신을 못차렸는데 그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유산이 되고 말았다. 생각보다 많이 슬펐다. 그 이후 아이는 나에게 선택의 대상이 아니라 열망의 대상이었다. 무슨 판단을 해본 적이 없었고 그냥 갖고 싶었다.


지나고나니 왜 아이를 낳지 않는 것에 대해 조금도 고려해보지 않았을까 싶다. 후회하진 않지만 조금 맹목적이긴 했던 것 같다. 그런데 한편으론 그런 맹목적인 감정만이 아이를 낳겠다는 결정의 이유가 될 것 같기도 하다. 경험해보지 않은 행복을 위해 현재의 행복을 포기한다는 게, 얼마나 비이성적인 판단인가.


그래서 결국

"아이를 낳을지 말지 고민 중인데..."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열심히 고민하길 바래요." 뭐 이런 시답잖은 대답 외엔 할 말이 없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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