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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부는날 Aug 22. 2018

엄마와 집

엄마는 세상을 떠나기 전, 반년 가까운 시간을 집 짓는 일에 몰입했다. 엄마 인생의 마지막 집을 짓겠다고 했다. 이 집에서 끝까지 늙어갈 거라고. 노부부의 마지막 집은 어떠해야 하는지 큰 것부터 작은 것까지 고민하고 나에게 매일 조잘조잘 설명했다.


한 명이 먼저 떠난 후 큰 집에 홀로 남아있으면 쓸쓸할거라고 했다. 그래서 집은 20평대의 작은 집이었고. 손주들이 놀러오면 물놀이도 하고 뛰어놀아야 하니 마당은 좁지 않아야 했다. 꽃과 나무, 채소들이 무럭무럭 자라도록 해가 잘 들어야 했고, 노년의 삶이 어둡지 않도록 집은 정남향이면 좋겠다고 했다. 엄마가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작업실이 별도로 있었으면 했고, 아빠가 좋아하는 텃밭도 있어야 했다. 엄마는 거실에서 커다란 티비가 왕왕대고 있는 걸 싫어했다. 그래서 거실엔 가족들이 모여 앉을 수 있는 테이블이 있길 원했고 엄마 홀로 조용히 쉴 수 있는 작은 방이 있었으면 했다. 이 외에도 엄마의 계획은 아주 구체적이었고 그걸 하나 하나 실현하는 일에 온 몸과 마음을 쏟고 있었다.


엄마가 집 짓는 일에 너무 무리하는 것 같아 나를 비롯한 가족과 주변 사람들은 걱정했지만 그 무엇도 엄마의 에너지를 식힐 수 없었다. 엄마는 마치 평생 이것을 위해 살아온 사람 같았다. 드디어 내 꿈을 이루는 것 같다고. 실제로 그렇게 이야기했다. 정확히 말하면 짓는게 아니라 리모델링이었다. 작은 농가주택을 사서 개조하는 일이었지만 옆에서 보기에 그게 짓는것보다 더 쉬운 일은 아닌 것 같았다. 어떻게 저렇게 할까.. 싶은 일을 엄마는 결국 매우 잘 해냈다.


집은 봄에 완성되었다. 마을과도 잘 어울리면서 따뜻하고 정감가는 집이었다. 엄마의 모든 계획은 세심하게 실현되었다. 물론 조금씩 맘에 차지 않는 부분도 있었지만 살면서 고쳐나가면 된다고 했다. 나는 그 집이 보자마자 맘에 들었다. 원래부터 우리집인 것 같았고 행복의 기운이 느껴지는 공간이었다.


엄마는 봄부터 산 그 집에서 가을에 떠났다. 아빠는 혼자 살기에 쓸쓸하지 않을만큼 아담한 그 집에서 홀로 살고 있다. 소담한 마당에 맘에 드는 꽃과 나무를 사다 심고 잡초를 뽑고 잔디를 깎으며 하얗고 발랄한 강아지와 산책하며, 엄마가 상상한 일상과 비슷한 일들을 하며 홀로 살아가고 있다.


처음엔, 엄마가 없는 그 집이 뼈에 사무치게 슬펐다. 그 집에 혼자 남겨진 아빠를 생각하면 가슴에 실제로 통증이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 왜 이런 집을 만들어놔서 사람을 이렇게 힘들게 하나 원망스러울 정도였다. 왜냐면 그 집은 엄마를 떠올리게 하는 정도가 아니라 그냥 엄마 그 자체였다. 그 집에 가면 엄마가 세상에 없다는 사실이 거짓말 같았다. 


조금 시간이 흐르고 나는 아이를 낳았고, 올해 봄이었나 아이를 안고 햇살이 가득 담긴 마당 한켠에 앉아 집을 보며 생각했다.
엄마는 참말로 엄마다운 것을 남겨놓았다.

이렇게 소박한 것도, 밝은 것도, 따뜻한 것도. 다 안으려는 모양도, 자로 잰듯 깔끔하지 않고 약간 어설픈 것도, 하고 싶은게 너무 많은 것도, 사람을 약간 귀찮게 하는 것도.

그리고 무엇보다 '집'이라는게. 엄마가 마지막으로 남겨둔 것이 다른게 아니라 '집'이라는게 너무나도 엄마답다.


엄마는 분명히 그 집에 나와 내 아이가 있는 모습을 상상했을거다. 그늘아래 넓다란 평상을 만들면서도 생각했을거고 빛 잘드는 곳에 갖가지 꽃과 나무를 심어 화단을 만들면서도 생각했을거다. 엄마가 만나보았으면 너무 깜찍해서 까무라치는 시늉이라도 했을 나의 아이는 곧 이 마당을 아장아장 걷고 강아지와 장난하겠지.

엄마는 곁에 없지만 엄마의 집은 아빠와 우리들에게 오랫동안 터를 내주며 행복하라 이야기할 것이다. 그게 엄마도 미처 몰랐던 엄마의 계획이었을까.

그리움은 불행이 아니다. 우리의 그리움은 밝고 따뜻하다. 엄마의 집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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