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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부는날 Oct 30. 2019

엄마의 동물친구들

아빠가 서울에서의 일이 버거워지자 엄마는 아빠의 고향인 춘천에 가서 살자고 아빠를 설득했다. 어쩌면 엄마에게 더 어려운 일이었을 테지만 특유의 낙천성으로 일을 밀어붙여 우리 남매는 서울에, 부모님은 춘천에 살게 되었다. 내가 친정이 춘천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그곳이 고향인 줄 알지만, 실은 한 번도 살아본 적 없는 곳이다.


어린 시절을 공유한 친구들이 많은 춘천에서 아빠는 활기를 찾았다. 하지만 엄마는 자신 있던 모습과 달리 조금 힘들어했다. 가까웠던 사람들, 아이들과 떨어져 있다는 느낌이 엄마를 외롭게 했다. 춘천이란 도시는 어딘지 모르게 슬픈 정서가 깔려있다. 그래서 아름다운 곳이지만, 그런 분위기가 엄마를 더 가라앉게 하기도 했다.


어느 날 걱정을 안고 집에 갔는데 엄마가 평소보다 밝은 목소리로 친구를 소개해 줄 테니 나가잔다. 긴 꽃무늬 치마를 살랑거리며 시골 흙길을 나풀나풀 신나서 걸어간다. 걸음이 하도 빨라서 저만치 뒤에서 따라가는데, 눈으로 보고도 믿지 못할 광경이 펼쳐 쳤다.


저어기 멀리 언덕배기 풀숲에서 고양이 한 마리가 튀어나와 엄마를 향해 달려오더니 등을 깔고 누워서 교태를 부리는 것이다. 어제도 봤다는데 몇 년 만에 만난 듯 둘이서 한참 애정행각을 하더니, 엄마가 일어나자 고양이가 엄마 뒤를 졸졸 쫓는다. 걷다가 어떤 지점에서 약속이나 한 듯 고양이는 걸음을 멈추고, 엄마는 "내일 또 보자!"하고 인사를 한다. 아마 거기까지가 그 녀석의 영역인 듯했다.


좀 걷다 보니 이번에는 웬 강아지가 꼬리를 휘날리며 달려온다.


"여기 할머니네 집 개야. 근데 할머니가 그래. 낯선 사람 보면 엄청 짖는데, 나만 이렇게 좋아한다네. 할머니가 맨날 아줌마 따라가라고 하는데, 절대 따라오지는 않아. 얘는 할머니 보디가드야."


이어서 동네방네 묶여있는 개들까지 순회하며 한참 인사를 하고서야 돌아왔다. 엄마는 개운한 표정이었다. 도저히 줄 곳이 없어 그득그득 찬 사랑을 풀어주고 나니 속이 뻥 뚫린 듯한.


다음에 춘천에 갔을 때는 그 고양이녀석이 아예 우리 집에 살림을 차렸다. 낮에는 집에서 잠도 자고 놀기도 하다 밤에는 어딘가로 나간단다. 엄마는 포대기처럼 치마폭에 고양이를 감싸 안고 음정이 이상한 자장가를 불렀다.


"너네 어릴 땐 내 노래 듣고 음치 될까 봐 한 번도 자장가 안 불렀잖아. 얼마나 불러주고 싶던지."


그 녀석은 진짜 아기처럼 눈을 슬슬 감으며 그르릉 그르릉 소리를 냈다. 나는 호랑이를 닮은 사랑스러운 녀석에게 랑이라는 이름을 지어줬다.


엄마와 랑이


엄마는 랑이에게 그동안 쌓아둔 사랑을 쏟으며 마음을 회복했다. 랑이는 그 사랑 속에서 새끼도 잔뜩 낳고 행복하게 지내다 어느 날 훌쩍 떠났다. 새끼에게 보금자리를 물려준 것이다. 가끔 멀리서 지켜보다가 새끼들이 엄마를 발견하고 다가가려 하면 호랑이처럼 으르렁 거리고는 달아났단다. 그런 랑이를 보며 엄마는 걔가 진짜 엄마라며 눈물을 글썽이곤 했다.


하지만 나에게 진짜 엄마는 엄마뿐이었다. 세상 약한 것들을 보면 마음을 홀랑 빼앗겨버리는, 어떻게든 사랑하지 않고는 하루도 살 수 없었던 사람. 그런 엄마가 나에게 준 사랑이 어떠했는지, 내가 어떤 마음 안에서 철없이 자랐는지....  글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다.


엄마는 슬픈 것도 두배로 슬프고 기쁜 것도 두배로 기쁜 사람이었다. 엄마와 달리 무덤덤한 성격인 나는 그런 엄마를 보며 또 호들갑이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러나 알게 모르게 난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게 보고 슬픈 것을 슬프게 보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나의 유일한 엄마. 엄마로 인해 나는 오늘도 웃고 울고 쓴다. 내 안에 생생하게 살아있는 엄마가 날 보고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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