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바람부는날 Oct 28. 2019

닭에게 물린 날

나의 가장 오래된 기억은 딱 그 순간이다. 닭에게 손가락을 콱 물린 날. 그 기억이 어찌나 선명한지 앞의 정황과 주변의 풍경, 하늘의 색까지도 사진처럼 선명하다. 언젠가 내가 이 사건을 기억한다 말했을 때 부모님은 깜짝 놀라셨다. 그때 내 나이 겨우 세 살이었단다.


하늘이 붉은 저녁이었다. 엄마, 오빠, 나 이렇게 셋이서 구불구불한 시골길을 걸어 너른 마당이 있는 어떤 건물 앞에 도착했다.  3층 정도 높이의 가로가 긴 건물의 외관은 상아색에 약간 광택이 났던 것 같고, 마당은 학교 운동장처럼 흙바닥이었다. 정문으로 들어가 오른쪽에 닭장이 있었다. 나는 닭을 보는걸 재미있어했고 그런 나를 보고 엄마가 재미있어했다. 쳐다만 보다 철망 사이로 손가락을 쏙 넣어봤는데 그때 고 놈의 닭이 내 손가락을 콱 물어버린 것이다. 내 기억은 거기까지. 아주 대단하게 울었다.


내가 떠올린 장면은 대부분 실제와 일치한다 했다. 우리가 갔던 건물은 당시 아빠가 일하는 곳이었다. (호기심에 포탈에 검색을 해보니 그 건물 사진이 나온다. 세상에, 진짜 맞네!) 워낙 변두리 지역이라 그런지 직장 근처 양옥집이 관사로 나왔는데, 아이들 걸음으로도 충분히 걸어갈 만한 거리였다고 한다. 아마 엄마는 저녁 준비를 해놓고 아빠의 퇴근시간 즈음에 아이들 손을 잡고 마중을 갔겠지. 그곳에 왜 닭장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빠가 나올 때까지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기에 딱 좋았을 것이다.


세 살 아이의 엄마인 지금, 닭에게 물린 공포보다 다 같이 어린 우리 가족의 한 장면이 남아있다는 사실이 더 신비롭게 느껴진다. 특히 두 아이 손을 잡고 남편의 직장에 마중을 가는, 지금의 나보다 어린 엄마의 모습이. 말을 걸어보고 싶다, 힘들지 않냐고. 아마 단지 아빠만을 한 마중은 아니었을 것이다. 답답해서, 좀 걷고 싶어서, 돌아올 땐 한쪽 손이라도 좀 자유롭고 싶어서, 마중을 구실로 동네 한 바퀴  돌았을 것이다.


아무런 연고도 없는 곳에서 두 아이를 키우며 남편 뒷바라지를 하는 일이 어린 엄마에게 쉬웠을까. 더군다나 말 나오기 좋은 남편 직업에 말 잘 도는 시골 동네에서. 고향에서처럼 마음대로 누비고 닐 수 없었겠지. 자기도 모르게 옷매무새를 만지고 과장해서 인사를 하지 않았을까. 오로지 엄마만 바라보는 두 아이는 어땠을까. 사랑하지만 버거운 순간도 있었겠지.  만약 그랬다면 그런 엄마의 마음은 누가 알아주었을까.


엄마는 우리를 키우는 일이 행복했다고만 했다. 엄마가 되기 전엔 당연하게 들었던 말인데, 이젠 다시 물어보고 싶다. 은유를 함께 보며 닭에게 물린 날 얘기를 하다 넌지시 물어볼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엄마, 그때 힘들지 않았어?




이전 06화 엄마의 동물친구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