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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부는날 Nov 05. 2019

유희 일대기 (3)

여기서부터는 내가 기억하는 엄마에 대한 이야기다.


언젠가부터 엄마는 늘 꽃을 그리고 있었다. 엄마의 화구들은 제 자리를 못 찾고 베란다, 거실 구석, 식탁 위를 헤매고 다녔지만, 종이 위의 꽃은 끊임없이 만발했다. 노랑의, 분홍의, 보라의 꽃들이 종이 위에 물을 머금고 피어나가는 동안 빠와 나는 어린이에서 청소년으로, 마침내 미숙한 성인 될 준비를 했다.


엄마는 소위 헬리콥터맘처럼 우리를 관리하진 않았지만 아이들 뒷바라지가 자신의 가장 중요한 임무라고 여겼다. 나는 밥상에 늘 열 가지 정도의 반찬이 있는 게 당연한 줄 알았고 내 방을 스스로 청소할 줄도 몰랐다. 엄마는 오빠에 이어 나까지 대학에 가고 나면 이제 마음 놓고 그림만 그리며 자유롭게 살리라고 했다. 그런데 생각 같지 않았다.


엄마는 이상하게 버려진 기분이 되었다. 아이들은 제 갈길 찾아 씩씩하게 가고 있는데 남겨진 엄마는 제 자리를 잃어버렸다. 사람들은 남매가 원하던 대학에 척척 들어가니 얼마나 좋으냐고 했다. 그래서 또 복 받은 여자가 되어버린 엄마는 그 이상한 외로움을 털어놓을 곳도 없었다.


사느라 그간 소홀했던 신앙에 의지했다. 교회에서 또래의 사람들을 만나 솔직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엄마는 조금씩 괜찮아졌다. 행복해졌다기보다는 어쩔 수 없는 쓸쓸함을 받아들였던 것 같다. 엄마의 쓸쓸함은 작은 꽃들을 피웠다. 화려했던 엄마의 꽃들은 소박하고 연약해졌다. 그래서 더 아름다워졌다.


엄마는 아빠의 고향인 춘천으로 터를 옮겼다. 그 바람에 아이들을 진짜로 독립시키고 나니 한번 더 앓았다.  엄마는 자신의 뿌리가 없는 그곳에 뿌리내린 들꽃과 풀들을 친구 삼았다. 엄마의 꽃들은 더 가늘고 여리어졌지만 허약하지는 않았다. 나는 그 꽃들이 정말로 엄마를 닮았다고 생각했다. 엄마는 꼭 자신을 닮은 꽃을 그리면서 진짜 자신을 애타게 찾고 있었다.


그즈음에 엄마는 이렇게 썼다.


아이들은 다 자랐다.

혼자 힘으로 날아 본단다.


칠흑 같은 심연은 바닥 없이 깊다.

자꾸만 아래로 아래로 내려앉는다.

서서히 바스러져 간다

몸이 그리고 영혼까지...

다시 예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 같다.


등산에서 돌아온 남편이 진달래 한 꼭지를 내민다.

미처 피지 않은 꽃봉오리가 처녀의 젖꼭지 같다.

유리병에 꽂으니 금세 엷은 꽃잎을 피워낸다.


한참을 바라보다

진달래를 손 끝에 피웠다.

그리고 손바닥에 빛깔을 입혔다.

갑자기 볼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린다.


엄마라는 이름으로 살아온 날들

이젠 잊었던 내 이름을 찾아야 한단다.

그래야 살아갈 수 있다고 그림이 말한다.


빈 집에서 한참을 울었다.


그리고 털고 일어섰다.



 

엄마의 그림들



엄마는 털고 어섰다. 마음을 회복하자 금세 춘천 생활에 적응했다. 사람들은 밝고 순수한 엄마를 좋아했고 바쁠 정도로 친구가 많아졌다. 그즈음 나는 직장을 얻고 결혼을 했다. 늘 걱정되던 딸의 생활이 안정되자 비로소 엄마의 마음이 놓였다. 하지만 품으로부터 한 걸음 더 멀어지는 날 보며 허전해지는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엄마는 평생소원이던 집을 짓기로 했다. 아빠와 단둘이 남은 생을 편히 보낼 마지막 집. 드디어 엄마를 이 곳에 뿌리내리게 할 집. 엄마를 닮은 그림을 마음껏 그릴 수 있고 좋아하는 꽃을 가꿀 정원이 있는 집. 엇이든 열심히 하지 않는 방법을 모르는 엄마는 열과 성을 다했고 그해 봄,  꿈꾸던 집을 지어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무리한 까닭인지 알 수 없는 통증이 시작되었고 불면의 밤이 이어졌다. 허약해진 몸으로 입원과 수술을 견뎌낸 엄마는 가을이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짙푸른 가을 하늘로 영영 돌아갔다.  


여기까지가 나의 엄마, 김유희 일생 대한 나의 서술이다.





엄마의 일생에 대해 쓰고 싶다는 생각을 줄곧 했으면서도 쉽게 손대기 어려웠다. 하나의 이유는 김유희를 엄마로서만 보고 살아온 내가 분명 그 삶을 제대로 이해하고 쓸 수 없기 때문이었고, 또 하나의 이유는 결국 마지막에 대해 써야 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오해로 가득한 글이 되더라도, 아니 어쩌면 오해 그 자체가 되더라도 나만이 쓸 수 있 생각에 무턱대고 시작했다. 그리고 마지막 즈음 엄마의 고통에 이르렀을 때 나는 막막해졌다. 짙은 안갯속에서 길을 잃은 듯했다. 엄마의 존재를 짓누르던 그 고통. 몸과 마음이 동시에 아팠던 그때의 엄마. 나는 엄마를, 그 고통을 절대로 온전히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기억하기 위해 쓴다. 나의 세계를 만든 사람. 내 사랑의 원천이자 영원한 사랑의 대상. 영원히 이해할 수 없지만, 나는 이미 온전히 이해받은 한 사람. 아름다웠던 사람. 나의 엄마 김유희.


이제 고통 없는 곳에서 편안하기를.

우리 꼭 다시 만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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