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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부는날 Oct 26. 2018

빨간 구두

지난 추석에 오랜만에 서울에 올라오신 시어머니가 쇼핑을 하신대서 따라나섰다. 나는 뭔가 살 계획이 없었으므로 그야말로 그림의 떡 보듯이 아름다운 물건들을 감상했는데, 진열장에 얌전히 놓인 빨간 스웨이드 구두가 눈에 띠었다. "아, 예쁘다." 하고 혼잣말을 했다. 옆에 있던 남편이 "그러게." 했던 것 같다.


며칠 뒤 내 이름으로 택배가 왔는데 뜯어보니 그 신발이었다. 남편에게 전화를 했더니 그동안 수고했다고, 고맙다고 했다. 눈물이 핑 돌았다. 첫번째는 남편의 마음이 참 고마워서였고, 두번째는 그게 다른 것이 아니라 구두였기 때문이었다.


지난 2년간 구두를 사기는 커녕 신지도 않았다. 임신을 한데다 오래 서 있어야 하는 직업 탓에 늘 기능성신발을 신고 직장을 다녔고, 출산 후엔 늘 아이와 함께 외출을 하게 되니 그럴 수 밖에 없었다.


새 빨간 구두는 2센티 정도의 낮은 굽에 사이즈는 맞춘 듯 딱 맞아서 생각보다 편하다. 옷도 그렇지만 신발은 정말 자신에게 맞는 이상형이 따로 있다. 살이 별로 없고 길죽한 내 발모양에 잘 어울려서 걸으면서 자꾸 아래를 내려다보게 된다. 신발 한 켤레가 주는 행복이라니. 소확행이라 하기엔 가격이 좀 비싸긴 하지만.


구두를 신은 여자에게는 긴장감이 느껴진다. 그 긴장감이  위태롭지 않고 자연스럽게 느껴지면 보기에 좋다. 엄마가 그랬다.


엄마는 두 아이를 낳아 키웠는데도 내가 중학생이 될 때까지 운동화같은 걸 전혀 신지 않았다. 바지도 입지 않았다. 주로 무릎 아래로 내려오는 H라인, 혹은 A라인 스커트에 3센티 정도 굽의 구두를 신었다. 그런데 엄마가 특이한 것은 아니었다. 그때 여성들의 단정한? 스타일이라고 하면 대부분 스커트에 구두였다. 아무튼 그런 엄마의 스타일은 90년대 말쯤이었나 미국 여행을 다녀온 뒤로 변했다. 그곳에 가보니 일상 속의 여자들은 대부분 운동화나 로퍼 같은 편안한 신발을 신고 있었는데 참 보기가 좋더라고 했다. 그 후 엄마는 바지도 입고 운동화도 즐겨 신었다.


지금은 스커트에 운동화를 신는 것이 자연스러워 보이지만 십몇년 전만 해도 아주 흔한 스타일은 아니었다. 내가 대학을 다녔던 2000년대 중반 여대생들은 학교를 갈 때 뾰족한 힐을 많이 신었다. 나도 그랬다. 별다른 약속이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발에서 얼마나 피가 많이 났는지 모른다. 요즘은 안 그런 것 같다. 거리의 사람들을 보면 뾰족하고 높은 힐을 신은 사람이 흔치 않다.


왜 달라졌을까. 그리고 90년대 말 엄마가 본 우리나라와 미국 여성의 신발은 왜 달랐을까.
 그 이유에 대해 문화평론가처럼 멋지게 설명할 자신은 없지만 좋은 변화임에 틀림 없다. 선택지가 많은 사회가 살기 좋은 곳이니까. 억압라는 단어는 좀 세지만 그런 비슷한 것이 약화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오랜만에 구두를 선물받고 드는 설레는 감정, 젊은 엄마의 모습과 함께 떠오르는 커피색 스타킹과 구두의 이미지... 같은 것을 떠올려보면, 사회학적 의미의 여성성과 개인적 의미의 여성성은 미묘한 관계에 있다는 생각도 든다.


내 어릴 적 사진 중에, 이제 갓 걸음마를 뗀 것 같은 내가 엄마의 하이힐에 발을 넣고 신이 나 웃고 있는 장면이 있다. 아마 그 아기에게 그 신발은 그냥 신발이 아니었을거다. 그 마음이 여전한가보다. 신발장에 놓인 빨간 구두를 보고 또 보는 내 마음이 바로 그 마음 아니겠는지.






같이 쓰는 오늘이라는 매거진에 함께 하게 되었고 첫 글을 올렸습니다. '오늘'이라는 키워드에 대해... 모든 글은 오늘의 글이니 무엇이든 써도 된다고 제 멋대로 해석하고 참여하려 합니다. 제안해주신 작가님, 함께 하는 작가님, 읽어주신 당신, 감사하고 반갑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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