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바람부는날 Dec 06. 2018

무엇이 야만이 되는가

꼰대처럼 옛날 얘기를 좀 해보면...


내가 대학에 다닐 땐 흡연을 할 수 있는 곳이 많았다. 대부분의 카페나 주점의 테이블 위에는 재털이가 놓여있거나 주문하면 가져다 주었다. 당시의 나는 흡연자였는데 요새 사람들이 자리에 앉으면 스마트폰을 테이블 위에 자연스레 올려놓듯이 담배와 라이터를 포개어 올려 놓았었다. 프랜차이즈 카페에는 특별히 흡연실이 따로 있었다. 유리벽으로 구분된 그 공간 안에는 셀프바에 휴지를 한장 올리고 물을 적신 재털이가 높이 쌓여 있었고 눈을 뜨기 어려울 정도로 뿌옇고 매캐한 연기로 가득했다. 그러다보니 흡연실이 아닌 공간도 담배냄새에서 자유롭진 않았다.


쓰고 보니 분명 기억 속에 있는 모습인데 거짓말 같다.


간접흡연의 피해에 대한 인식이 커지면서 흡연이 금지되는 공간이 많아졌고, 언젠가부터 법으로 거의 모든 공간에서 흡연이 불가능해졌다. 나는 그렇게 되기 전에 흡연을 중단했기 때문에 불편함을 느끼지는 않았고, 지금이 확실히 좋아졌다고 생각한다. 흡연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서 비흡연의 권리를 빼앗는 건 말이 안 되니까.


만약에 지금 어떤 사람이 카페에 들어가서 재털이를 달라고 요구하거나 술집 문을 열고 들어서면서 동시에 담뱃불을 붙인다면 어떤 시선을 받게 될까. 그 사람은 10년 전엔 어땠을지 몰라도 지금은 확실히 야만인으로 보일 것이다. 아마도 주변 사람들은 대단히 불쾌한 장면을 보았다고 생각할 것이고, 가게 주인이 당장 나가달라고 요구한다면 당연한 일이라 느낄 것이다.


무엇이 야만이 되는가. 무언가에 대한 혐오가 보편성을 갖게 될 때부터 그것은 야만이 된다. 그렇다면 지금은 당연하게 받아들여지지만 미래에는 야만이 될 일이 있다면 무엇일까. 마치 흡연이 현재 그렇게 되었듯이 말이다. 일회용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우리 집은 20리터 쓰레기봉투를 보통 이삼일에 한 번 버린다. 그 안은 온갖 종류의 일회용품으로 가득 차 있다. 기저귀, 물티슈, 비닐봉지, 휴지, 각종 포장재 등.. 보통은 별 생각이 없었는데 티비에서 쓰레기섬의 모습을 본 후로 약간 불편한 마음이 생겼다. 하지만 아주 가끔, 잠깐 드는 생각일 뿐. 만약에 갑자기 집에서 물티슈와 비닐봉투, 종이기저귀(!) 등이 사라진다면... 아 상상하고 싶지 않다. 나의 일상은 일회용품에 이미 길들여져 있다.


최근 일회용품을 줄이는 움직임이 꽤 활발하다. 아무래도 잠깐 이러다 말지는 않을 것 같다. 워낙 생활과 깊숙이 관련된 일이고 사람들의 문제의식이 점점 보편적이 되어 가는 듯 하다. 일회용품 사용에 대해 전혀 할 말이 없는 나 같은 사람도 이중삼중으로 포장된 명절선물세트 같은 것을 보면 슬쩍 혐오감이 든다.


일회용품의 사용을 제한하는 움직임이 지속적으로 이어진다면 언젠가 과대포장된 제품이나 일회용품을 남용하는 행동은 야만이 되지 않을까. 만약 그렇게 된다면 미래에 지금을 회상하면 이렇게 될까.


그때는 화장품 하나를 주문하면 종이박스 안에 비닐뽁뽁이, 제품박스를 감싼 얇은 비닐, 제품상자, 그 안에 플라스틱으로 된 보존물, 화장품이 담긴 유리병. 이 모든게 함께 왔다. 50ml의 액체를 사용하기 위해 버려야 하는 것이 한 가득이었다. 그리고 그땐 물티슈를 얼마나 많이 사용했던지. 식탁 위를 한 번 슥 닦고 버려지는 것들이 또 산더미였다. 마트에 가면 고기, 해산물, 야채 뭐 하나를 사면 스티로폼, 플라스틱 용기가 딸려와서 장을 보고 나면 장바구니 안의 절반은 버려지는 쓰레기였다. 그땐 그 많은 쓰레기들이 어디로 가는지, 우리에게 어떻게 돌아올지 생각하지 못 하고 살았던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빨간 구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