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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부는날 Mar 27. 2019

가사분담에 대한 조언

조언하는 글은 내 취향이 아니지만.

이 이야기는 정말 하고 싶어서. 누군가에게는 꼭 하고 싶은 이야기라서 시작 해 본다.


예비부부가 집, 결혼식 준비, 예물예단.. 등 결혼을 위한 예민한 문제들을 얼추 해결하고 나면 이제 함께 살아야 하는 실질적 문제를 위해 합의해야 할 아주 중요한 문제가 하나 남는다.


가사분담.


요즘 세상에 '집안일은 당연히 여자가 해야 하는거 아닌가?'라는 생각을 가진 남자라면 아마 결혼을 할 수 없었을 것이므로, 예비부부들은 모두 응당 공평하게, 평등하게 가사일을 나누어 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을 것이다.


물론 우리도 그랬다.


나는 요리에 관심이 좀 있어서 혼자 살 때부터 집에서 밥 해 먹는 걸 좋아했다. 반면 남편은 10년 이상을 혼자 살았지만 요리는 전혀 하지 못했다. 그래서 흔쾌히 나는 요리를 나의 몫으로 정했고, 남편은 설겆이와 뒷정리를 맡기로 했다. 청소는 주말에 함께 했고, 화장실청소와 쓰레기를 내다 버리는 일은 남편 몫이었다.


이 정도면 아주 공평한 것 같았고, 아니 오히려 남편의 몫이 좀더 큰 것 같기도 했다. 남편은 자신의 몫을 잘 수행했다. 분리수거 날 저녁이면 퇴근하자마자 양손에 주렁주렁 분리수거 가방을 들고 나갔고, 밥 먹고 나면 접시를 들고 싱크대로 향했다. 나는 그런 그가 고마웠다.


결혼한지 5년이 되어가는 시점.. 이런 식의 가사분담에 실수가 있었다는 걸 깨닳았다.


아이가 생기고 내가 육아휴직을 하면서 당연히 그가 전담으로 하던 일들 또한 내가 하게 되었다. 아이가 있는 집에 청소를 일주일에 한번만 할 수는 없는 일이고, 먹고 치우고 먹고 치우는게 일상인데 하루종일 먹은 것을 남편이 올 때까지 식탁에 쌓아둘 수는 없는 일이다. 그의 일이 나의 일이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도 남편은 최선을 다 했다. 아침에 먼저 일어나 일찍 일어난 아이를 돌보고, 밤에 내가 아이를 재우고 나오면 하루의 흔적이 가득하던 거실과 주방을 깨끗하게 정돈해 놓았다.


하지만 내가 종종 아프거나 지쳤을 때, 그에게 시간이 있고 내가 해야 할 다른 일이 있을 때도 나의 일이 그의 일이 되지는 못했다. 왜냐하면 그는 여전히 요리를 못 하기 때문이이었다. 5년의 결혼생활 동안 그의 요리 능력은 거의 제자리였다. 당연하고 당당한 일이다. 그의 역할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애초에 이런 역할분담 자체에 문제가 있었다. 우리가 결혼 전에 청소나 요리를 못 했다면, 그건 자립이 덜 되었기 때문이다. 당연한 것이 아니다. 내가 해야 할 몫을 엄마가 대신 해 주었기 때문이다. 자취를 하는 경우에도 엄마의 반찬이 냉장고에 켜켜히 쌓여있고 종종 엄마가 집에 들러 우렁각시처럼 청소를 해 준다면 그건 독립이 아니다. 결혼 전에 독립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면, 우린 함께 독립 연습을 시작해야 했다.


집을 깨끗하게 관리하고, 식재료를 준비하고 요리해서 먹고, 옷과 침구 등을 적절하게 세탁하고, 필요한 물건을 구입하고 필요하지 않은 물건을 버리는.. 이런 일은 독립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어야 하는 일이었다.


그리고 '요리'는 가사일의 핵심이다. 요리를 하는 사람이 장을 볼 수 밖에 없다. 냉장고의 속사정을 아는 것도 요리하는 사람이다. 버려야 할 식재료도 요리를 해야 구분이 된다. 요리하는 사람은 생각하고 계획한다. 오늘 저녁에 뭐 먹을까? 라고 물으면 무엇을 먹고 싶은지보다 냉장고 안에 무엇이 있는지를 먼저 떠올린다.


가사일이 업무고 부부가 팀이라면, 요리하는 사람이 팀장이 될 확률이 높다. 팀장의 머릿 속을 팀원이 알기란 쉽지 않다. 팀원은 팀장의 잔소리와 시도때도 없는 지시가 불편하기 마련이다.


팀원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나는 주어진 일을 빠릿빠릿하게 다 했는데 왜 나를 저런 눈빛으로 보고 있는건지.. 내가 또 뭘 잘못한건지 정말 지긋지긋하다.


팀장의 입장에서는 이렇다. 누구 일이라고 정하진 않았지만 눈 앞에 해야 할 일이 산더미같은데,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지만 생각해보면 해야 할 일이 이렇게 많은데.. 왜 그 일들은 내 눈에만 보이고 내 머릿속에만 떠오르는건지 답답하기만 하다.


실제 팀장과 팀원이라면 이런 생각은 그냥 동료들이랑 술 한잔 하면서 풀어버릴 일이지만 문제는 우리는 부부다. 사랑하는 사이. 남과여. 동등한 두 사람.


내가 나의 남편에 대한 불만이 쌓여서 이 글을 쓰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남편의 변화를 보면서 이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과거에 이미 남편에게 이런 생각을 이야기했고, 그 다음날인가 왕초보요리? 뭐 이런 제목의 책이 집으로 배송됐다. 그날부터 남편은 시간이 날 때마다 책을 펼쳐놓고 된장찌개, 볶음밥, 김치찌개... 등의 기본적인 요리를 하나하나 섭렵해나갔고 의외로 꽤 맛이 있어 본인도 스스로 놀라며 즐겁게 요리력을 향상시키는 중이다. 나는 그런 그의 모습이 너무너무 좋다. 단지 일을 분담해주어서가 아니라, 내 이야기가 공격으로 느껴질 수도 있는데 조금도 방어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고 행동으로 변화를 보여주는 그가 정말 고맙다.


남편이 일주일에 한두번 정도 요리를 하기 시작하면서, 그는 냉장고 야채칸의 사정을 알게 되었다. 함께 장을 보러 가서 "아, 양파 사야된다!" 라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어느 날 아침엔 방에서 나오니 계란말이를 노오랗게 예쁘게 만들어서 아이에게 먹이고 있었다.


길게 얘기했는데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가사분담의 방식이다. 요리던 설겆이던 청소던 잘 하는 사람이 전담하는 방식은 다른 한 사람을 무능하게 만든다. 물론 똑같이 반반으로 나누기는 어렵다. 한 사람이 주도적으로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도 다른 사람의 참여가 완전히 배제되어선 안 된다는 것이다.


아빠는 60이 갓 넘어서 갑자기 아내를 잃었다. 아빠는 가사일의 모든 영역에서 배제(?)된 채 평생을 살아 온 사람이었다. 아빠의 잘못이라고 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그 세대의 보편적인 가정의 모습이기도 하고, 일과 가정의 양립따위 상상할 수 없던 젊은 시절 일터에서 치열하게 살아온 아빠의 시간을 게을렀다고 평가하기엔 너무하지 않은가. 하지만 엄마의 장례식장에서 새벽에 멍하니 함께 앉아있던 아빠는 나에게 말했다. "집에 가면, 세탁기랑 밥솥 쓰는 법 좀 알려줘."


가사일에 완전히 무능력한 채 아내를 잃은 아빠는, 엄마의 부재를 몸과 마음으로도 모자라 반찬으로, 집 안 먼지로, 세탁물로, 공과금고지서로도.. 온갖 것들로 느껴야 했다. 그런 아빠를 보는 나의 슬픔 또한, 화장실에 낀 물때로, 상한 반찬이 그대로 든 반찬통으로, 수납장에 가득한 컵라면으로.. 느껴야 했다.


가사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이란 다시 말하면, 나를 돌볼 수 있는 능력이다. 평생 함께 하기로 약속했지만 결국 평생 함께 할 수는 없는 우리. 우리는 모두 자립의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물론 홀로 되었을 때를 위해서 뿐만 아니라, 지금 행복하게 공존하기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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