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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부는날 Jun 20. 2019

나의 서울

나는 서울에 산다. 서울에 사는 사람 중 서울을 좋아한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우리는 우리의 도시에 대해서 애정보다는 부끄러움을 더 많이 느끼는 것 같다.


오래된 건축물들이 그 도시의 특색을 이루는 유럽의 도시와, 일본이나 싱가폴의 깨끗하게 정돈된 도시의 모습과 서울을 비교한다. 우리는 특색도 없고 무작위로 개발되고 있는 지저분한 도시에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닌데, 가혹한 것 같다. 사실 요즘 들어 서울이 사랑스럽다. 좀 이상한 말일 수 있는데, 나 자신 같다. 내가 나를 사랑하는 이유가 완벽해서는 아니듯이, 그냥 좀 부족하고 복잡한 모습 그대로 좋다.



아이가 생기고 나서 부터인 것 같다. 아이가 있기 전에 서울은 그냥 삶의 배경일 뿐이었지만, 아이가 생기자 이 곳에 우리 세 가족이 뿌리를 내린 듯 한 느낌이 든다. 아이가 이 세상을 생경하게 보듯이 나도 이 곳을 다시 천천히 보게 된다.  도시는 아이의 고향이다. 성장한 아이가 어디에 살게 될지 몰라도, 어린 시절을 생각하면 '지금' 서울의 모습이 떠오를 것이다.


칠이 벗겨진 아파트 입구의 계단, 집 앞 초등학교, 은행나무가 울창한 길, 요란한 기계소리를 내는 작은 공장들, 유난히 많은 래미콘차와 타워크레인, 이틀에 한번 꼴로 가는 이마트, 집 앞의 작은 빵집, 파란색과 녹색의 버스, 주말에 가는 쇼핑몰, 그 곳의 인파와 교통체증지도...



서울은 빨리 변한다.


우리가 지금 사는 집에 이사온 지 3년이 조금 지났는데 부엌 창에서 보이는 풍경이 처음과 완전히 다르다. 불과 3년 전에 찍은 사진의 낮은 동네 풍경을 보니 새삼 뭐랄까. 그립다기엔 거창하고.. 지금 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은 오래된 주택가에 있는데, 재개발구역으로 지정되어 아마 미래엔 고층 아파트 단지가 된다고 한다. 우리는 사라질 혹은 달라질 것이 분명한 장소에서 장을 보고, 산책을 하고, 밥을 먹고, 웃고, 싸우고.. 산다.


그래, 이 서울이라는 도시의 낭만은 오히려 빨리 변한다는 데에 있다. 우리가 사는 서울은 과거도 미래도 아닌 오늘의 서울일 뿐이기 때문이다. 변하지 않을 거라는 믿음에서 오는 정감이 아니라 금방 사라질 것을 알기에 느껴지는 묘한  애정이랄까. 그 변화가 누군가에겐 좋고 누군가에겐 나쁘지만 결국은 대체로 변화하는 쪽이 이기리라는 걸 알아서, 그냥 받아들이게 되는 어떤 패배주의이기도 하고. 그 허무함을 낭만으로 포장하는 것이 아니냐고 묻는다면 또 할 말은 없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나는 지금의 서울에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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