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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부는날 Apr 05. 2018

좋아하는 곳

우리 동네에는 성수문화복지센터라는 건물이 있다. 요샌 아마도 동네마다 이런게 하나씩 있는 것 같다.


이 건물 7층에 도서관이 있는데, 이 곳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도서관이다. 책이 많은 것도 아니고 (그냥 중고등학교 도서관 정도 규모) 유서가 깊다거나 뭐 분위기가 좋은 것도 아니다. 그냥 깔끔한 신축 건물의 내부.



이 곳이 좋은 이유는 내가 좋아하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다. 책장 뒤 쪽의 창가에 아주 낮은 소파들을 숨겨 놓았는데, 그 소파에 앉으면 다리가 약간 세워져서 무릎에 책을 올려놓고 읽다 그냥 멍하니 앉아있기 딱 좋은 자세가 된다.


그 상태에서 눈을 들면 통유리창을 통해 성수동의 낮은 건물들에서 서울숲으로 이어지는 넓은 풍경이 눈 앞에 펼쳐진다. 멍 때리기 최적의 장소다.



난 이런게 좋다. 그러니까, 잘 만들어놓은 ‘공공의’ 공간이랄까. 그런 공간에서 발견하는 배려와 아이디어가 좋다.  손님을 끌어들이기 위한 것도 아니고 본인을 위해서도 아니고 그저 누군가를 위해 이런 센스를 발휘해놓는 것. 구석에 숨어서 책 보는 것을 좋아하는 한 공무원이 이 전망 좋은 구석을 그냥 버리기엔 아깝다고 생각했겠지.



그리고 이런 공적인 공간들에는 취향이 반영되어 있지 않아서 좋다. 앤티크 빈티지 모던 인더스트리얼 어쩌고... 주인장의 독특한 취향 혹은 트렌드를 살려 가구와 소품 하나 하나 섬세함으로 가득 찬 공간들. 좋다 좋은데, 자주 가게 되지가 않는다. 특히나 요새 우리 동네에는 취향의 과잉이라 느껴질 만큼 남다른 공간들이 많이 생겨나고 있다. 질린건지혹은 내가 원래 촌스러운 인간인건지, 아름답고자 하는 의도가 전혀 없는 사무용 가구와 실용적 인테리어가 오히려 그냥 편안하고 좋게 느껴진다.



최근에 이 건물에 대한 애정이 한 단계 더 상승했는데, 2층 카페의 테라스 자리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공연장 로비에 휑하니 있는 카페인데다 아메리카노가 4천원이나 해서 거들떠보지도 않았는데, 평일에 텀블러를 가져가면 2,100원으로 할인해준다는 걸 알았다. 날씨가 좋은 날 2,100원을 낸 커피를 받아들고 테라스에 앉아있으니 기분 탓인지 커피도 매우 훌륭한 맛이었다.



동네라는게 그냥 집이 있는 곳이었지 별 의미가 없었다. 하루 대부분을 직장에서 보내고 집으로 쏙 들어올 뿐이었으니까. 육아휴직을 하고 동네에 속한 삶의 즐거움이랄까 재미랄까 그런걸 알아간다. 그러고보니 아이한테는 여기가 고향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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